문서의 첫 줄
금요일 밤, 식탁 위에 노트북이 놓였다. 평소라면 세션을 하는 요일이었다. 이번 주는 세션 대신 문서를 열었다. 도경이 새 파일을 만들고 제목 칸에 커서를 두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제목이 뭐가 좋겠어."
"사냥이라고 쓰면 가벼워." 현아가 말했다. "각본. 그냥 각본."
그는 「각본」이라고 쳤다. 저장 위치는 두 사람만 들어가는 폴더. 클라우드 동기화. 버전 기록.
첫 줄에 도경이 날짜를 썼다. 그 다음 줄에 문장을 하나 넣었다.
이 문서는 합의되지 않은 문장을 담지 않는다. 한쪽이 쓴 것은 초안이다. 두 사람이 옆에 OK를 적으면 조항이 된다.
현아가 그 줄을 읽고 옆에 OK를 적었다. 첫 조항이 문서의 문법이었다.
"장소부터." 도경이 말했다.
현아가 의자에 다리를 접고 앉았다. 편집할 때의 자세. 원고를 대할 때와 같은 등이었다.
"길거리는 안 돼. 주차장도 공용은 안 돼. 목격자 리스크. 그리고 나는 실제로 끌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연기로 끌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독채." 도경이 받아 적었다. "우리가 예약하고, 사전에 답사하고, 출입구와 신호와 이웃 거리를 확인한 곳."
"양평." 현아가 말했다. "너무 유명하지 않은 쪽. 숲이 있고, 주차장이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 그 삼십 미터를 장면의 입구로 쓰면 돼. 공유지가 아닌 대지의 안."
도경이 검색을 열었다. 두 사람이 화면을 같이 봤다. 별점과 후기와 지도의 위성 사진. 위성 사진에서 현아는 지붕과 주차장 사이의 나무를 세었다.
"이 집." 그녀가 손가락으로 찍었다. "주차 세 대. 왼쪽이 산. 오른쪽 이웃은 백 미터 이상. 리뷰에 하룻밤이 유난히 조용하다고 되어 있어."
"다음 주에 전화해서 빈 날 확인하고, 한 달 안에 낮에 답사하자." 도경이 적었다. "답사 전에 예약금 넣지 않기. 답사 항목 — 문짝, 창호, 휴대폰 신호, 비상구, 구급함, 칼 위치, 가스, 보일러."
현아가 OK를 적었다.
두 번째 장. 시간.
"장면은 여섯 시간을 넘지 않는다." 도경이 말했다.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을 전날 확정. 종료 시각이 되면 장면은 내용과 무관하게 끝난다. 알람을 두 개. 내 폰, 네 폰."
"여섯 시간이면 충분해." 현아가 말했다. "충분하다는 건 길다는 뜻이기도 해. 처음이니까 네 시간으로 줄여도 돼."
"네 시간. 연장하려면 중간에 브레이크를 열고 둘 다 구두로 동의." 도경이 고쳤다. "연장 한 번만. 최대 여섯."
OK.
세 번째 장. 외부 안전망.
"지훈이." 도경이 말했다. "내가 말할게. 세부 내용은 안 알려. 주말에 연락 안 되면 일요일 저녁 일곱 시에 이 번호로 전화하라고만. 우리 둘 번호, 펜션 주소, 관리인 번호."
현아가 잠시 생각을 했다. 지훈은 도경의 대학 동기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큰 틀에서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세부는 모를 것이다. 모르는 채로 시계가 되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지훈이 괜찮아." 그녀가 말했다. "나는 서연이한테는 안 할게. 바닐라 친구에게 이 구조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 설명하지 않고 부탁하는 건 더 무책임하고."
OK.
네 번째 장. 시작하지 않는 조건.
도경이 이 장을 오래 쳤다.
어느 한쪽의 컨디션이 삼 점 이하. 최근 일주일 수면 평균 오 시간 미만. 술. 해열제 이외의 진통제. 생리 첫날과 둘째 날 — 현아가 원하면 예외, 원하지 않으면 연기. 직장 마감 삼 일 이내. 가족 연락이 불안정한 주. 날씨 특보.
현아가 생리 줄을 읽고 말했다.
"예외 넣지 마. 첫날 둘째 날은 그냥 연기. 몸이 이미 일을 하고 있는데 추가로 납치까지 하고 싶진 않아."
도경이 예외를 지웠다. 지우는 키가 작게 들렸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현아가 하품을 했다. 도경이 노트북을 저장하고 덮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가 말했다. "각본은 밤에 몰아서 쓰지 마. 실수해."
"너는 업무 문서도 그렇게 말하냐."
"업무 문서보다 이게 더 위험하거든."
현아가 그의 손목을 잡아 자기 목덜미에 댔다. 댄 채로 말했다.
"오늘은 세션 안 해. 대신 이 정도로만."
도경이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맞추는 힘이 평소 세션의 입이 아니었다. 식탁 위의 각본을 덮은 사람의 입이었다. 현아의 등이 천천히 풀어졌다. 풀어지는 등이 곧 오늘의 애프터케어였다. 플레이는 없었지만 돌봄은 있었다. 돌봄만 있는 금요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 현아가 천장에 대고 말했다.
"첫 줄이 생겼어."
"첫 줄은 문법이야." 도경이 어둠 속에서 대답했다. "문법이 있어야 다음에 문장을 쓰지."
현아가 그의 손바닥을 자기 배에 올렸다. 올린 손이 따뜻했다. 따뜻한 손 아래에서 그녀는 납치의 장면을 잠시 떠올렸다가, 떠올린 장면을 각본 폴더 속으로 되돌려 보냈다. 지금은 식탁의 단계였다. 식탁의 단계를 건너뛰면 숲은 위험해진다. 그녀는 그 순서를 지키기로 다시 한 번 동의했다. 동의는 소리 나지 않았다. 손바닥의 열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