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진짜가 될 때

구멍은 글자로만 두지 않기로 했다. 글자로 본 구멍은 이해이고, 몸으로 본 구멍은 증거니까.

다음 금요일, 현아가 평소의 세션 옷을 입었다. 무릎까지 오는 셔츠, 속옷 없음. 도경이 로프를 가져왔다. 가져오기 전에 식탁에서 한 문장을 읽었다.

오늘은 납치가 아니다. 평소의 세션이다. 다만 저항 대사를 시험한다. 목적 — 신호등이 대사와 겹치는지 확인.

현아가 OK를 말했다. 말로. 문서에도.

침실에서 도경이 현아의 손목을 앞으로 묶었다. 앞으로. 뒤로가 아닌 것은 그녀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로 말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눈을 가리지 않았다. 눈이 보여야 증거가 모인다.

평소의 입구. 무릎. 입. 도경이 벨트를 풀고 현아의 아래턱을 받쳤다. 현아가 그를 물었다. 깊게. 침이 턱을 타고 내려 로프에 스며들었다. 도경의 숨이 짧아졌다. 짧아진 숨을 그는 계산된 속도로 되돌렸다.

"이제 시험." 그가 허리를 멈추고 말했다. 사냥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진행자의 목소리였다. "지금부터 삼 분. 너는 저항 대사. 나는 평소의 강도로 계속. 색깔은 평소 규칙."

"응."

삼 분이 시작되었다.

도경이 현아를 매트에 눕히고 다리를 벌렸다. 현아가 다리를 모았다. 모으는 힘과 벌리는 힘이 실제로 맞부딪혔다. 맞부딪히는 힘이 작지 않았다. 도경이 무릎으로 허벅지 바깥을 눌렀다. 안쪽은 건드리지 않았다. 윤활을 바르고, 손가락 두 개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아가 말했다.

"하지마."

도경이 허리를 움직였다. 들어가는 깊이, 평소의 깊이. 현아의 안쪽이 그를 물었다. 무는 몸이 거부의 문장과 동시에 존재했다.

"놔. 빼. 제발."

도경의 이마에 줄이 섰다. 줄은 흥분이 아니었다. 청취의 부하였다. 그는 현아의 눈을 봤다. 눈은 젖어 있었고, 젖은 눈이 그를 보고 있었다. 보는 눈이 도망의 눈이 아니었다. 그런데 입은 도망을 말하고 있었다.

"레드." 현아가 말했다.

도경이 멈췄다. 완전히. 허리가 중간에 얼었다. 로프에 손이 갔다.

현아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연기야. 아직 삼 분 안 됐어. 다시 들어가."

도경이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가지 않은 채로 현아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나는 못 해." 그가 낮게 말했다. "네가 레드라고 했어. 연기의 레드와 진짜의 레드를 내가 삼 초 안에 구분하라고 하면, 나는 구분하지 않고 멈추는 쪽을 고를 거야. 고를 수밖에 없어. 그런데 네가 연기의 레드를 쓰고 다시 들어가라고 하면, 다음 레드를 내가 어떻게 믿어."

현아의 눈이 천천히 맑아졌다. 맑아지는 동안 안쪽이 아직 그를 잡고 있었다. 잡는 몸과 맑아지는 눈이 같은 시각에 놓여 있었다.

"증거가 나왔네." 그녀가 속삭였다.

도경이 천천히 빠졌다. 빠지는 감각이 평소의 종료와 달랐다. 오르가즘도, 사정도, 없었다. 시험의 종료였다. 그는 로프를 풀고 현아의 손목을 문질렀다. 문지르는 엄지가 세게 떨렸다.

"신호등 세 개로는 이 장면을 못 버틴다." 도경이 매트 위에 앉아 말했다. "그린은 유지. 옐로우는 유지. 옐로우는 사냥감이 잘 안 쓰는 단어야. 레드는 오염됐어. 네가 방금 연기로 썼고, 나는 진짜로 받았어. 그 수신이 맞았어. 맞기 때문에, 레드를 대본에 넣을 수 없어. 대본에서 빼도, 네가 겁에 질린 척하다가 무의식적으로 레드를 뱉으면 나는 또 멈춰. 멈추는 건 괜찮아. 문제는 그 다음이야. 멈춘 뒤에 이게 연기였는지 묻고, 다시 들어가는 절차를 장면 한복판에서 하면, 장면이 아니라 회의가 돼. 회의가 나쁜 건 아니야. 다만 네가 원하는 납치는 회의 속에서 성립하지 않아."

현아가 담요를 끌어 올렸다. 올린 담요 안에서 심장이 아직 빠르다.

"그래서."

"그래서 네 번째가 필요해." 도경이 안경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레드의 자리를 비워 두고, 레드는 쓰지 않기로 하자. 이 장면에서만큼은. 대신 연기가 절대 아닌 단어. 사냥감이 입 밖에 낼 이유가 없는 단어. 그 단어가 나오면 장면 자체를 폐기해. 강도 조절이 아니라. 종료. 역할 해제. 불 켜기. 이름 부르기. 그 단어는 대본의 밖에 있어야 해."

현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아직 윤활의 끈적이가 있었다. 끈적이는 손으로 잡는 합의가 이상하게 정확했다.

"네 번째." 그녀가 반복했다. "장면을 죽이는 단어."

"죽이는 게 맞아." 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리는 단어이기도 하고. 장면을 죽여야 우리가 살아."

현아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댄 채로 짧게 웃었다. 웃음이 떨렸다.

"삼 분도 안 되는 시험이었어."

"삼 분이면 충분했어." 도경이 그녀의 뒷머리를 쓸었다. "구멍이 몸으로 보였으니까. 글자로 볼 때보다 컸어."

그날 밤은 삽입을 다시 하지 않았다. 대신 샤워를 같이 하고, 현아의 손목에 로션을 발랐다. 바르는 동안 도경이 물었다.

"옐로우는 남겨둘까."

"남겨. 옐로우는 속도야. 네 번째는 존재야. 속도랑 존재는 다른 층이니까 둘 다 필요해."

도경이 손목에 입을 맞추었다. 맞춘 자리가 로프의 분홍 위에 겹쳤다. 겹친 입술이 그날 밤의 유일한 플레이였다. 플레이라기보다 서명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