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단어

단어를 고르는 밤은 세션이 아니었다. 식탁, 노트, 미지근한 보리차. 현아가 노트의 왼쪽 페이지에 후보를 적고, 도경이 오른쪽에 탈락 이유를 적었다.

파인애플. 전 세계가 쓴다. 탈락.

토마토. 냉장고에 있다. 장면에서 말이 나올 수 있다. 탈락.

빨간색. 신호등과 겹친다. 탈락.

현아. 자기 이름은 사냥감이 부를 수 있다. 살려달라는 말 속에 이름이 섞인다. 탈락.

도경아. 현아가 이 줄을 오래 봤다.

"이건." 그녀가 말했다. "내가 너를 부를 때 장면이 이미 깨지긴 해. 그런데 깨지는 강도가 부족할 수 있어. 도경아는 평소에도 내가 하잖아. 평소의 단어는 비상구가 못 돼."

도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탈락을 적었다.

열 개의 후보가 줄로 그어졌다. 줄이 그어진 페이지가 지저분해졌다. 지저분한 페이지가 오히려 정직해 보였다.

"조건." 도경이 새 페이지를 열었다. "한 음절이면 너무 짧아. 비명과 섞여. 세 음절 이상. 장면에 등장할 이유 없음. 우리가 둘 다 스트레스 속에서도 발음할 수 있음. 발음이 입술만으로 되지 않아도 됨. 이가 맞물린 상태에서도 성대가 만들 수 있는 단모음이 들어 있을 것."

현아가 그 조건을 읽고 펜을 돌렸다.

"우리 고유의 장소."

도경이 눈을 들었다.

현아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처음 본 곳. 납치의 반대편. 소리가 금지된 방. 거기서는 아무도 사냥하지 않잖아."

도경의 얼굴이 천천히 열렸다. 열리는 속도가 기억의 속도였다.

이층 열람실. 고시 시즌이 아닌 여름. 선풍기 두 개. 현아가 항상 같은 자리를 예약했고, 도경이 그 옆자리를 삼 주 동안 비워 두었다가 네 번째 주에 앉았다. 앉아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연필이 굴러 현아의 발밑으로 갔고, 현아가 주워 주었고, 고맙다는 말도 속삭임이었다. 속삭임이 그 방의 최대 음량이었다.

"도서관." 도경이 말했다.

현아가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다. 굴리는 동안 식탁의 불이 안정적으로 켜져 있었다.

"도서관." 그녀가 반복했다. "세 음절. 장면에서 사냥감이 도서관을 부를 일은 없어. 살려달라는 문장에 안 들어가. 장소 이름도 아니고, 욕도 아니고, 색깔도 아니야."

"우리가 서로를 고른 방이야." 도경이 낮게 말했다. "거기는 손을 올리지 않잖아. 책을 올리고, 연필을 올리고, 시간을 올리지. 그 단어를 말하면 나는 그 방으로 돌아가. 열람실의 나로. 사냥을 모르는 나로."

현아의 눈이 붉어졌다. 붉어지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숨길 자리가 아니었다.

"이 단어는 장면을 죽여." 그녀가 말했다. "죽이고 우리를 그 책상으로 돌려보내. 그게 맞아. 네 번째가 그런 자리여야 해."

도경이 문서에 새 장을 만들었다. 제목은 「네 번째」.

단어: 도서관.

기능: 즉시 전부 정지. 역할 해제. 조명 점등. 구속 해제. 이름 호명. 물. 접촉은 상대가 요청할 때만. 장면은 당일 재개하지 않음. 재개는 다음 날이 아니라, 다음 합의에서만.

현아가 그 문장을 읽고 한 줄을 보탰다.

이 단어를 쓰는 사람은 실패자가 아니다. 이 단어를 듣는 사람도 실패자가 아니다. 이 단어는 설계의 일부다.

도경이 그 옆에 OK를 적었다. 적는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음 줄을 이었다.

비언어. 입이 막혔을 때. 양손 주먹을 동시에 펴 손바닥을 상대에게 보일 것. 한 손만 가능하면 한 손. 손도 안 되면 발을 바닥에서 세 번 굴릴 것. 세 번의 발은 레드가 아니라 도서관과 동급.

"연습." 현아가 말했다.

두 사람은 식탁에 앉은 채로 단어를 세 번 말했다. 첫 번째는 작았다. 두 번째는 보통이었다. 세 번째는 현아가 눈을 감고, 일부러 숨을 빠르게 만든 뒤에 말했다. 빠른 숨 속의 도서관. 발음이 무너지지 않았다.

도경이 눈을 감고 같은 일을 했다. 사냥꾼의 호흡을 흉내 내다가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말하는 순간 그의 어깨가 내려갔다. 내려가는 어깨를 현아가 보았다.

"저거." 그녀가 말했다. "저 어깨를 당일에도 해. 단어가 나오면 너는 저 어깨가 되면 돼. 다른 연기는 필요 없어."

도경이 현아의 손을 테이블 위에서 잡았다. 잡는 힘이 세지 않았다. 세지 않은 힘이 도서관의 힘이었다.

"이 단어를 안 쓰게 되더라도." 그가 말했다. "고른 일은 이미 한 일이야. 고른 밤에 우리는 이미 그 장면을 한 겹 안전하게 만들었어."

현아가 일어나 그의 무릎에 앉았다. 앉는 무게가 평소의 플레이가 아니었다. 식탁 의자가 살짝 울렸다. 그녀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맞춘 입술로 단어를 한 번 더 흘렸다.

"도서관."

도경이 그 입술을 받아 짧게 물었다. 무는 힘이 정거장이었다. 정거장에서 두 사람은 더 가지 않았다. 더 가지 않는 밤이 이 단어의 첫 번째 쓰임새 같았다. 장면을 시작하지 않고도 장면을 보호하는 밤.

노트북 화면의 커서가 마지막 줄 끝에서 깜빡였다. 깜빡임이 열람실의 형광등처럼 일정했다. 현아는 그 일정함을 보며, 삼 년 동안 혼자 들고 있던 판타지의 가장자리에 마침내 난간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난간의 이름이 도서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