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대사
여덟 주째, 양평의 독채를 낮에 보고 왔다. 관리인이 보일러를 켜 주고 자리를 피했다. 도경이 문턱을 재고, 창호를 열고, 신호를 확인하고, 부엌 칼꽂이를 사진 찍었다. 현아는 침실 천장을 오래 봤다. 천장은 나무였다. 집의 천장은 흰색이었다. 나무 천장이 각본의 금지와 겹쳤다. 낯선 천장.
"여기 천장이 트리거야." 현아가 침대에 누워 말했다. "그래도 이 집이 맞아. 트리거를 제로로 만들 수는 없어. 있는 줄 알고 쓰면 돼."
도경이 침대 왼쪽 협탁을 두드렸다.
"커터 여기. 목걸이 여유 길이, 네가 손목 묶인 채로 입으로 줄을 물 수 있는지 집에서 테스트하자."
답사의 항목이 모두 초록으로 바뀌었다. 예약금을 그날 넣었다. 날짜는 석 달의 마지막 주 토요일.
집에 돌아와 그들은 대사의 장을 열었다. 현아가 이 장을 맡았다. 문장의 사람.
"사냥꾼은 말이 적어야 해." 그녀가 말했다. "설명을 하면 도경이 나와. 도경은 설명하는 사람이니까. 사냥꾼은 지시만 해. 짧은 문장. 동사로 시작."
도경이 연습 삼아 말했다.
"서."
"입어." 현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평소의 너야. 평소의 너는 나를 세워. 사냥꾼은 세우지 않아. 끌어내려."
"무릎."
"더 낮게. 그리고 이름 없이."
도경이 목을 가다듬었다.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불이 켜진 거실에서 사냥꾼의 목을 만드는 일이 우습고, 우습지 않았다.
"입 다물어."
현아의 눈꺼풀이 한 번 내렸다. 내린 눈꺼풀이 곧 평가였다.
"그거. 그 높이야. 다만 입 다물어는 장면에서 내가 색깔을 말해야 할 때와 충돌해. 입 다물어를 쓰되, 내가 입을 열면 너는 듣게. 듣는 게 지시보다 위에 있어."
도경이 적었다. 지시 < 청취.
현아가 사냥감의 대사를 읽었다. 그녀가 미리 써 둔 것이었다.
놔. 하지마. 데려가지 마. 사람 불러. 제발. 아파. 그만.
목록의 마지막에 레드가 있었다. 현아가 그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문제가 있어."
도경이 화면을 보았다.
"사냥감은 레드라고 소리칠 수 있어." 현아가 천천히 말했다. "영화에서도 그러고, 실제 저항에서도 그래. 그만, 안 돼, 레드. 그 단어들이 대사가 되면, 안전어가 대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
도경의 등이 펴졌다. 펴지는 속도가 빨랐다.
"지금 그 말 다시 해봐."
"신호등이 이 장면의 언어와 겹쳐." 현아가 종이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린은 괜찮아. 그린은 사냥감이 안 쓰니까. 옐로우는 애매해. 노란불이라는 말이 저항의 비명 속에선 안 나오지만, 노랑은 나와. 레드는 겹쳐. 완전히 겹쳐. 내가 레드라고 외치면 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게 돼. 연기인지, 진짜인지. 고르는 순간에 이미 늦은 거야."
도경이 안경을 벗었다. 벗은 손으로 미간을 눌렀다.
"그래서 평소 세션에서는 문제가 안 됐어." 그가 말했다. "평소에 너는 레드를 연기로 안 쓰니까. 이 각본은 거부가 대본이야. 대본이 안전어를 먹어."
현아가 그를 봤다. 도경의 얼굴이 평소 업무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위협이 발견되었을 때의 얼굴. 발견을 숨기지 않는 얼굴.
"오늘은 이 장을 여기서 닫자." 그가 말했다. "대사를 더 쓰기 전에 신호등부터 다시 설계해야 해. 설계 없이 대사를 쓰면 대사가 안전을 침범해."
현아가 노트북을 덮었다. 덮는 소리가 작았다.
"한 주 더 걸려도 돼." 그녀가 말했다. "날짜는 미룰 수 있어. 날짜보다 이 구멍이 커."
그날 밤 그들은 평소의 짧은 세션을 했다. 로프 없이, 눈가리개 없이. 도경이 현아를 무릎 위에 앉히고 손가락으로 천천히 열었다. 두 개, 세 개. 현아의 안쪽이 손가락의 마디를 순서대로 읽었다. 읽는 동안 그녀는 그린이라고 말했다. 그린이 평소처럼 깨끗했다. 깨끗한 그린이 오히려 다음 주의 문제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도경이 손가락을 굽혀 안쪽의 거친 자리를 눌렀다. 현아의 허리가 접혔다. 접힌 허리로 그녀는 그의 어깨에 이를 살짝 심었다. 심고, 풀고, 숨을 내쉬었다. 내쉬는 숨 끝에 짧게 왔다. 오는 동안 도경의 다른 손이 그녀의 뒷목을 받쳤다. 받치는 손은 사냥꾼의 손이 아니었다.
끝난 뒤에 현아가 그의 귓가에 말했다.
"오늘은 레드가 필요 없었어."
"오늘은 대본이 없었어." 도경이 대답했다. "대본이 없는 레드와 대본이 있는 레드는 다른 단어야. 그걸 다음 주에 풀자."
현아가 그의 가슴에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뒤로 양평의 나무 천장이 잠시 스쳤다. 스치고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 식탁의 노트북이 남았다. 닫힌 노트북 안에 구멍 난 장이 들어 있었다. 구멍을 메우기 전에는 숲으로 가지 않기로, 두 사람은 이미 동의한 셈이었다. 동의는 각본의 OK란에 아직 적히지 않았다. 적히지 않아도 유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