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납치인가
다음 일요일에도 식탁이었다. 일주일 동안 도경은 예스도 노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링크를 세 개 보냈고, 현아는 그 중 두 개를 끝까지 읽었다. 세 번째는 의학 논문이라 초록만 읽었다. 읽은 흔적을 서로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는 주간이 필요했다.
현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에도 커피가 식기 전이었다.
"왜인지 물어봐도 돼. 안 물어봐서 내가 먼저 말할게."
도경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듣고 있어."
현아는 창문을 한 번 봤다. 남향이었다. 오전의 빛이 식탁 끝까지 왔다. 빛이 있는 자리에서 어두운 말을 하는 것이 맞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두운 방에서 하면 말이 제 색깔보다 진해지니까.
"나는 무력해지고 싶은 게 아니야. 무력한 척하고 싶은 거야. 그 차이가 전부야."
도경이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하지 않는 것이 계속하라는 신호였다.
"평소의 플레이는 내가 이미 네 앞에 무릎 꿇고 시작하잖아. 동의가 장면의 입구에 있어. 나는 그 입구를 지나고 나서의 무력을 아는 사람이야. 알고 나서 원하는 건, 입구 자체를 연기로 지워보는 거야.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네가 가져가는 것처럼."
그녀는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감싼 손에서 열이 되돌아왔다.
"어릴 때 이사를 많이 다녔어. 너는 알잖아. 아버지 일 때문에. 어느 방에 누워도 천장이 낯설었고, 낯선 천장이 무섭다기보다 그냥 잘못 놓인 느낌이었어. 내가 그 방에 있으려고 한 적이 없는데 몸이 거기 있는 느낌."
"그걸 다시 하고 싶다고?" 도경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낮아진 것은 비난이 아니었다. 정확한 위치를 묻는 톤이었다.
"다시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현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 느낌을, 이번에는 내가 고른 사람의 손 안에서 다시 배열하고 싶은 거야. 잘못 놓인 게 아니라 일부러 놓인 것. 천장이 낯선 방에 네가 있어. 나가라고 소리쳐도 너는 나를 알고 있어. 그 역설이 나를 흥분시켜. 창피한 줄 알아. 창피해서 삼 년을 안 말한 거야."
도경이 안경을 벗었다. 벗은 안경을 테이블에 접어 놓았다. 세계가 조금 물러났다. 물러난 자리에서 그는 현아의 얼굴을 더 정확히 보려 했다.
"나는 네가 소리치는 걸 듣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 그가 말했다. "연기의 소리인지 진짜의 소리인지, 내가 구분하지 못할까 봐. 구분하지 못한 채로 계속할까 봐. 그게 더 두려워. 잘해서 네가 무너지는 것."
현아가 그 문장을 반복하지 않았다. 반복하면 가벼워진다. 대신 손을 테이블 가운데로 밀어 그의 손등에 올렸다.
"그래서 지금 이 대화를 하는 거야. 잘해서 무너지게 하지 않으려고. 무너지지 않을 장치를 먼저 만들려고."
"장치가 충분할 수 있어?"
"충분하다는 확신을 지금 달라는 게 아니야." 현아가 말했다. "확신이 생길 때까지 설계하자는 거야. 설계가 안 되면 안 하는 거고. 안 하는 결말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 팔 년 동안 안 하고도 잘 살았잖아."
도경이 짧게 웃었다. 웃음 속에 피로가 있었다. 피로는 거절이 아니었다. 진지함의 무게였다.
"내가 그 역할을 하면, 나는 너를 사냥하는 사람이 돼." 그가 천천히 말했다. "평소에 나는 너를 묶고, 때리고, 삽입하고, 멈춰. 그 모든 일의 주어가 돌봄이었어. 사냥의 주어는 돌봄이 아니잖아. 겉으로."
"겉으로만." 현아가 받았다. "속은 더 두꺼운 돌봄이어야 해. 그게 이 플레이의 구조야. 겉이 어두울수록 속이 두꺼워야 해. 속이 얇으면 나는 이걸 너에게 맡기지 않아."
침묵이 삼 분 갔다. 삼 분 동안 아래층에서 아이 피아노 소리가 올라왔다. 서투른 음계. 음계가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도경이 그 반복을 듣다가 말했다.
"석 달."
현아가 눈을 깜빡였다.
"뭐."
"설계에 석 달을 쓰자." 도경이 안경을 다시 썼다. "장소, 대사, 한계, 신호, 리허설. 석 달 안에 어느 한 장이라도 빈칸이면 안 해. 빈칸이 없으면 그때 다시 물어봐. 해도 되냐고. 지금 이 순간에는 아직 물어보지 마."
현아의 목이 조여 왔다. 조여 오는 것이 울음인지 고마움인지 그녀는 바로 구분하지 못했다. 구분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 달." 그녀가 반복했다. "빈칸 없이."
"빈칸 없이." 도경이 말했다. "그리고 현아야. 왜인지를 말해줘서 고마워. 이유 없이 원하는 것도 유효해. 그래도 이유를 들으니, 내가 무엇을 보호해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해."
현아가 그의 손등을 한 번 눌렀다. 누르는 힘이 세지 않았다.
"보호해야 하는 건 나만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너도. 사냥꾼 역할이 너를 잡아먹지 않게. 그것도 각본에 넣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