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가 손보다 먼저
칠월 첫 주, 아틀리에 칠이 워크숍을 열었다. 제목은 짧았다. 협상. 참가비 대신 담요 기부. 민재는 모니터가 아니라 수강생으로 앉았다. 흰 팔찌. 낮의 조명. 매트 위에 사람들이 원을 그렸다.
서하가 가운데 앉지 않았다. 가장자리. 진행은 채원이 맡았다. 삼십대 중반, 돔므, 목소리가 낮고 문장이 짧았다. 민재는 그 이름을 명부에만 본 적이 있었다. 시즌 파티에 가끔 오고, 장면을 열면 닫는 속도가 정확하다는 평.
"오늘은 몸을 안 씁니다. 입만. 손이 근질거려도 무릎 위에. 말하기가 손보다 먼저인 방을 한 시간 동안 만들 거예요."
짝을 나누었다. 민재의 맞은편에 시온이 앉았다. 삼십. 스위치. 웃을 때 눈이 가늘어지는 사람. 월중 나이트에서 하준과 패들을 주고받았던, 그 탑 쪽의 얼굴이었다. 민재가 하준의 담요를 지키던 밤의 반대편.
채원이 규칙을 붙였다. 하고 싶은 것 하나, 하기 싫은 것 하나, 모르겠어서 보류인 것 하나. 세 문장. 세 문장이 끝나기 전에 상대의 몸을 상상으로 만지지 말 것.
시온이 먼저 말했다.
"하고 싶은 것. 눌린 채로 삽입. 하기 싫은 것. 얼굴에 침. 보류. 목줄. 목줄은 예쁘지만 아직 숨의 위치를 모르겠어요."
민재의 차례였다. 입이 말랐다. 모니터의 입은 컬러만 물었지, 자기 문장을 꺼낸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 아직 한쪽이 아닙니다. 무릎도, 손도, 둘 다 궁금합니다. 하기 싫은 것. 합의 없는 수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 깎이는 것. 보류. 통증. 타격은 보고 배웠지만, 제 허벅지가 그걸 원하는지는 모릅니다."
시온이 고개를 기울였다.
"모니터 민재 씨죠. 하준이 당신 이야기를 했어요. 나가지 않고 앉아 준 사람."
"당번이었습니다."
"당번도 사람이에요. 사람 문장 고마워요. 보류를 보류라고 말한 게 제일 좋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보류를 거절로 포장하거나, 거절을 보류로 숨기거든요."
채원이 원을 돌며 짝마다 한 문장씩 끼워 넣었다. 민재 앞에 멈추어 물었다.
"민재 씨. 모니터가 자기 협상을 하면 방이 더 안전해질까요, 더 위험해질까요."
질문이 시험 같았다. 서하가 가장자리에서 시계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것이 기다려 주는 신호였다.
"더 안전해질 것 같습니다. 자기 문장이 없는 사람은 남의 문장을 번역하다 자기 환상을 섞습니다. 섞기 전에 제 문장을 갖고 싶어요."
채원이 짧게 웃었다. 웃음이 채점 같았다.
"통과. 다만 문장을 가졌다고 당번에 그 문장을 들고 들어가지 마세요. 들고 들어가면 컬러 확인이 제안이 됩니다. 제안하는 모니터는 이미 참가자예요."
두 번째 연습은 거절이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한쪽이 아니 라고 답하고, 그 아니 이후에 관계가 죽지 않게 한 문장을 더하는 일.
시온이 말했다.
"오늘 너를 묶고 싶어."
민재가 연습대로 대답했다.
"아니요. 오늘은 줄이 싫습니다. 다만 이 대화는 계속하고 싶습니다."
시온의 얼굴이 진짜로 풀렸다. 연습인데도 풀렸다.
"그 다만이 중요하죠. 아니요만 있으면 문이 닫히고, 다만이 있으면 다른 문이 열려요."
역할을 바꿨다. 민재가 말했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문장이 낯설었다.
"오늘 네가 내 무릎에 앉았으면 좋겠어."
시온이 눈을 맞추고 대답했다.
"아니요. 무릎 앉기는 보류예요. 다만, 옆에는 앉을 수 있어요."
옆. 그 한 글자가 민재의 귀 뒤에서 남았다. 거절이 추위가 아니었다. 각도의 조정. 수아가 가슴 줄을 빼 달라던 밤과 같은 족보.
워크숍이 끝날 무렵 채원이 종이 한 장을 돌렸다. 아틀리에 칠 협상 체크리스트. 의료, 세이프워드, 오픈/클로즈드, 삽입 여부, 체액, 애프터케어 동반자, 드롭 시 연락. 칸이 많았다. 많은 칸이 흥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흥을 오래가게 하는 뼈라는 설명이 아래에 적혀 있었다.
서하가 민재가 가방에 종이를 넣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저 종이, 당번 로그랑 헷갈리지 마요. 저건 민재 씨의 밤이 올 때 쓰는 거예요. 지금은 접어 두어요."
민재는 접었다. 접힌 사각형이 예비 팔찌 옆에 들어갔다. 두 개의 사각형. 지키는 밤과 참여할 밤. 아직 같은 가방 안에서만 만났다.
골목에서 시온이 손을 흔들었다.
"다음 파티에서 봐요. 당번 아닐 때, 말 걸어도 돼요?"
"흰 팔찌일 때만요. 검은 팔찌면 컬러 말고는 안 됩니다."
시온이 웃었다.
"그 구분 하는 사람이 제일 섹시해요. 연습 아닌 말로요."
민재의 귀가 뜨거워졌다. 뜨거운 귀를 가방 끈으로 가리지 않았다. 가리면 다시 숨기는 손이 된다. 인정하고 신림으로 가는 지하철에 탔다.
차 안에서 그는 세 문장을 다시 세었다.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보류. 보류가 가장 정직했다. 정직한 보류를 가진 채로 시즌의 남은 달을 걷기로 했다. 말하기가 손보다 먼저. 서하의 시계와 같은 뼈.
집 책상 위에 체크리스트를 펼쳤다 접었다. 펼치는 밤이 올 것을, 처음으로 달력의 일이 아니라 몸의 일로 느꼈다. 몸의 일은 아직 미래였다. 미래가 문장으로 먼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