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걸음
시프트가 끝나갈 무렵, 슬링 쪽에서 이상한 정적이 왔다. 정적이 이상하다는 것을 민재가 먼저 느꼈다. 임팩트 존의 소리는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슬링만 숨을 참고 있었다.
하늘이 반대편 루트에 있었다. 민재는 두 걸음을 남기고 멈췄다. 교육의 문장이 발바닥에 붙었다. 너무 가까우면 침입, 너무 멀면 방치.
슬링에 남자가 누워 있었다. 손목이 가죽 커프로 고정되고, 다리가 벌어져 무릎 뒤가 스트랩에 걸려 있었다. 여자가 그 사이에 서서, 장갑 낀 손으로 그의 것을 잡고 있었다. 잡고만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의 숨이 짧았다. 짧은 숨이 쾌락인지 패닉인지, 두 걸음 거리에서는 얼굴이 반만 보였다.
민재가 기둥 쪽으로 각도를 바꿨다. 얼굴이 들어왔다. 눈이 감겨 있고, 이마에 땀이 있고, 이가 드러나 있었다. 이 드러난 입이 웃는 입인지 참는 입인지 잠깐 헷갈렸다. 그는 그 헷갈림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두 걸음.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두 분, 컬러 확인해도 될까요."
여자가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모니터를 보는 눈이 방어적이지 않았다. 짧은 확인의 눈.
남자가 먼저 말했다. 목구멍이 잠긴 소리.
"초…록. 엣지만. 말하지 마, 가면 안 되니까."
여자가 민재에게 눈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민재는 두 걸음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루트로 돌아갔다. 돌아간 다리가 약간 후들거렸다. 개입이 아니라 확인. 확인이 장면을 깨지 않았다. 남자의 신음이 바로 이어졌다. 이어지는 신음이 방치가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하늘이 애프터케어 쪽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민재가 다가가자 하늘이 물컵을 하나 건넸다.
"그 거리, 좋았어. 첫 확인을 그 각도로 하는 신입 드물어. 보통은 매트에 발을 올리거나, 아예 못 묻고 지나쳐."
"얼굴이 반만 보여서요. 각도를 바꿨습니다."
"그 문장 기억해. 각도를 바꾸는 게 모니터의 손이야. 손은 장면에 안 넣고, 눈만 넣거든."
민재는 물을 마셨다. 손목의 팔찌가 컵에 다시 부딪혔다. 같은 소리. 다른 의미. 첫 바퀴의 플라스틱이 아니라, 확인 후의 플라스틱.
열 시가 조금 넘자 클로즈드 커튼 앞에서 하늘이 노크했다. 두 번, 쉼, 한 번. 안에서 한 번. 초록. 하늘이 민재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강혁이랑 도윤은 소리 안 내는 플레이야. 정적 자체가 합의야. 저 정적을 슬링 쪽이랑 헷갈리지 마. 슬링은 숨이 짧아졌고, 저쪽은 숨이 고르거든. 고른 정적은 초록일 때가 많아."
민재는 커튼을 보지 않고도 그 고른 숨을 상상했다. 상상하지 않으려 했으나, 모니터의 일은 상상의 일부가 감각이 되는 일이었다. 감각을 도구로 쓰는 일.
임팩트 존을 지날 때, 패들을 든 남자가 민재를 보고 손을 잠시 들었다. 묻는 동작. 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 없다는 저음. 남자가 다시 패들을 내렸다. 여자의 엉덩이가 이미 붉었다. 붉음은 아직 보랏빛이 아니었다. 보랏빛이 되기 전의 색을 민재는 교육 사진에서 보았다. 사진은 차가웠고, 이 붉음은 숨이 붙어 있었다.
시프트 교대 시간이 왔다. 서하가 검은 팔찌를 찬 채로 다가와 민재의 손목을 보았다. 보는 것이 점검이었다.
"첫 시프트. 사고 없음. 확인 한 번. 하늘이 거리 좋다고 했어. 팔찌 풀어요. 이제 흰 거. 남아서 봐도 되고, 가도 됩니다. 남는다면 던전 안에서는 손 주머니. 발기는 주머니가 해결 못 하니까, 필요하면 탈의실."
민재는 검은 팔찌를 떼어 하늘에게 돌려주었다. 벨크로가 열리는 소리가 잠기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흰 팔찌가 다시 올라갔다. 같은 방, 다른 자리.
그는 남았다. 가는 편이 숨이 편할 것 같았으나, 남고 싶었다. 남는 이유가 욕망만은 아니었다. 방이 어떻게 닫히는지 보고 싶었다. 여는 법만 배운 밤이 닫는 법을 보여 주지 않으면, 교육이 반쪽일 것 같았다.
애프터케어 코너에 수아가 담요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지훈이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주물렀다. 로프 자국이 손목에 분홍 무늬로 남아 있었다. 수아가 초콜릿을 깨물며 웃었다. 낮의 웃음에 가까운 웃음. 장면이 끝난 사람의 얼굴은 의외로 평범했다. 평범이 민재를 안심시켰다.
서하가 입구 쪽 의자에 앉아 로그를 적고 있었다. 시간, 확인 횟수, 의료 없음. 민재의 이름이 그 줄에 올라갈 것이었다. 이름 없는 손이 아니라, 당번의 손으로.
두 걸음. 민재는 그 거리를 집까지 들고 갔다. 지하철 칸에서도 그는 사람들 사이에 두 걸음을 상상했다. 너무 가까우면 침입. 너무 멀면 방치. 그 사이가 사람이 사람을 지키는 폭이었다.
신림 골목의 편의점 앞에서 그는 물을 하나 더 샀다. 오른쪽에 컵을 두는 버릇이 이미 손에 붙어 있었다. 받는 손의 위치. 작은 이유가 쌓여 방이 되고, 방이 쌓여 시즌이 될 것이었다.
집 현관에서 흰 팔찌를 가방에 넣으며 민재는 중얼거렸다. 컬러. 그 단어가 이제는 신호등만이 아니었다. 묻는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