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를 받기 전에
합정 골목의 낮 카페는 파티가 아니었다. 창가에 햇빛이 있었고, 테이블마다 물컵이 있었고, 이름표에는 닉네임만 적혀 있었다. 민재는 그 이름표를 가슴에 붙인 채로 삼십 분을 앉아 있었다. 커피는 미지근해졌고, 대화는 옆 테이블에서만 흘렀다.
여기가 먼치였다. 옷 입은 사람들, 낮의 말, 세션 없는 자리. 커뮤니티가 신입을 처음 들여보내는 문이었다. 민재는 그 문을 세 달 동안 온라인으로만 들여다보다가, 오늘 처음으로 몸으로 들어왔다.
서른이었다. 기획팀에서 표를 만들고, 퇴근하면 게시판을 읽었다. 세이프워드, 애프터케어, 던전 모니터. 그 단어들이 일상의 문서보다 더 정확하게 느껴지는 밤이 있었다. 정확해서 두려웠고, 두려워서 더 읽었다.
맞은편에서 여자가 다가왔다. 이름표에 서하. 짧은 머리, 검은 시계, 목소리에 서두름이 없었다.
"오늘 처음이죠."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이 너무 커서 스스로 작아졌다.
"민재입니다. 닉도 민재로 썼습니다."
"한서하. 아틀리에 칠 모니터 당번 짜는 사람이에요. 여기 앉아요. 커피 식었으면 버려도 됩니다."
민재는 컵을 놓지 않았다. 들고 있는 일이 손의 알리바이였다.
서하가 그를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지 않는 시선이 오히려 편했다. 심문하지 않는 사람. 자리를 내주는 사람.
"먼치만 세 번 오신 분도 있고, 글만 일 년 읽다 오는 분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오늘은 낮입니다. 낮에는 아무도 무릎 꿇지 않아요."
"저는 아직 파티에 안 갔습니다."
"알아요. 신청서에 그렇게 쓰셨더군요. 참가 경험 없음. 모니터 봉사 희망. 드문 순서예요. 보통은 먼저 놀고, 나중에 지킵니다."
민재의 귀가 뜨거워졌다. 드문 순서라는 말이 질책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해명이 필요했다.
"놀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아직 이름을 못 정했습니다. 위에서 하고 싶은지, 아래에서 하고 싶은지.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먼저 규칙을 지키는 쪽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안전하게."
서하가 시계를 보지 않고도 시간을 아는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안전하게, 가 구경의 변명이 되면 안 됩니다. 모니터는 구경꾼이 아니에요. 방에 들어가서 남의 신음을 듣고, 얼굴색을 읽고, 필요할 때 장면을 끊는 일이에요. 끊는 손을 가질 준비가 돼야 합니다. 그 손이 자기 욕망보다 먼저 움직여야 하고요."
민재가 컵을 내려놓았다.
"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제 장면이 없으니까요."
서하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 따뜻하지 않았다. 정확했다.
"그 문장, 지금은 맞아요. 시즌이 지나면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 문장으로 충분해요. 다음 주 토요일, 문래. 낮 두 시. 모니터 교육. 검은 팔찌는 그때 받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민재예요."
"참가비는요."
"모니터는 없습니다. 대신 당번이 생깁니다. 월 파티 한 번, 월중 나이트 한 번. 빠지면 미리 말해. 말은 규칙의 일부니까."
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는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민재는 남은 커피를 보지 않았다. 창밖으로 합정의 토요일이 흘렀고, 이름표의 민재라는 세 글자가 아직 어색했다.
그는 신청서의 마지막 칸을 떠올렸다. 왜 모니터를 하려 합니까.
그때 그는 이렇게 썼다. 만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만지기 전에 보는 법을 알고 싶어서. 커뮤니티가 사람을 어떻게 붙드는지 알고 싶어서. 내가 어느 쪽에 서고 싶은지, 서기 전에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서.
서하가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민재 씨. 오늘 여기서 한 말은 낮의 말입니다. 밤에 가서 잊어버리지 마세요. 모니터의 첫 일은 기억하는 거예요. 누가 무슨 색을 말했는지. 누가 물을 마셨는지. 누가 담요를 거부했는지."
"기억하겠습니다."
"아직은 약속하지 마요. 교육 날, 몸으로 해봐요."
문이 닫혔다. 민재는 이름표를 떼어 지갑에 넣었다. 스티커 접착면이 손가락에 남았다. 그 끈적임이 이상하게 솔직했다. 붙었다가 떨어지는 일의 예고처럼.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는 게시판을 열지 않았다. 오늘은 글을 읽는 밤이 아니었다. 글을 쓰기 전의 밤도 아니었다. 다만 팔찌를 받기 전의 오후. 커피가 식은 테이블과, 시계를 차지 않은 자기 손목과, 아직 검지 않은 그 자리.
차 안에서 민재는 눈을 감고 자기 손을 보았다. 끊을 수 있는 손. 아직은 아무 장면의 주인이 아닌 손. 그 손이 다음 주 토요일에 검은 줄을 두르게 될 것이었다.
그는 그 상상을 끝까지 밀지 않았다. 미는 것은 참가자의 일이고, 지금은 지키는 쪽의 입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입구에 서는 일도 용기였다. 그는 그 용기를 크게 포장하지 않았다. 포장하면 거짓이 될 것 같았다.
신림 하차. 저녁 공기가 차가웠다. 민재는 손목을 한 번 쓸어보았다. 맨살. 아직 아무 약속도 감기지 않은 피부.
그래도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