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과 빨강과 노랑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토요일 낮에도 쇳내를 품었다. 삼 층, 검은 문, 벨은 없고 번호 자물쇠만 있었다. 민재가 문자를 받은 숫자를 누르자 잠금이 풀렸다. 복도에 신발을 벗는 선이 노란 테이프로 그어져 있었다.
아틀리에 칠. 낮에는 스튜디오처럼 보였다. 높은 천장, 철제 보, 한쪽 벽에 걸린 담요들. 세인트앤드류 크로스가 커버에 싸여 있었고, 슬링은 접혀 있었다. 밤의 기구들이 낮의 옷을 입은 자리.
서하가 중앙 매트 위에 서 있었다. 검은 티, 똑같은 시계. 옆에 하늘이 앉아 있었다. 모니터 이 년 차, 말수가 적고 눈이 빨랐다.
"오늘 신입 둘. 민재, 그리고 지연. 지연은 참가 경험 있고, 민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은 더 천천히 갑니다. 천천히가 호의가 아니라 안전입니다."
지연이 짧게 목례했다. 삼십대 초반, 짧은 손톱, 이미 몸에 방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민재는 그 차이가 부끄럽지 않았다. 차이가 적혀 있는 방이 오히려 숨이 트였다.
서하가 탁자 위에 세 가지를 올렸다. 초록 카드, 노랑 카드, 빨강 카드.
"세이프워드는 말이에요. 말은 장면보다 윗줄입니다. 아틀리에 칠은 신호등. 초록, 계속. 노랑, 줄이거나 바꿔. 빨강, 즉시 정지. 정지 다음에 협상 재개 없음. 그 장면은 끝난 거예요. 끝난 뒤에 물을 주고, 담요를 주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 다시 손 대지 마요."
하늘이 카드를 민재 쪽으로 밀었다.
"모니터는 이 세 단어를 사람의 얼굴에서 읽습니다. 말이 안 나와도 얼굴이 노랑일 수 있어요. 숨이 빨강일 수 있고. 손가락 끝이 하얘지면 로프는 이미 지각입니다."
서하가 민재를 매트 가운데로 불렀다.
"지금부터 연습. 하늘이 탑, 내가 바텀. 민재는 모니터. 지연은 관찰 후 교대. 장면은 가짜지만 말은 진짜로 해요."
하늘이 서하의 손목을 잡았다. 잡는 세기가 천천히 올라갔다. 서하의 얼굴은 평온했다. 평온 아래로 숨이 바뀌는 지점이 있었다. 민재는 그 지점을 놓치지 않으려 눈을 크게 떴다.
"컬러."
하늘이 물었다. 서하가 말했다.
"초록."
다시 세기. 서하의 눈썹이 한 번 움직였다.
민재가 한 걸음 다가갔다. 다가가는 거리가 어려웠다. 너무 가까우면 침입이고, 너무 멀면 방치였다.
"컬러 확인해도 될까요."
서하가 눈을 떴다. 장면 밖의 눈으로.
"좋아요. 그 문장. 장면 안으로 명령하지 않고, 바깥에서 묻는 문장. 다시."
민재가 삼 초를 두고 물었다.
"두 분, 컬러요."
하늘이 멈추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서하가 대답했다.
"노랑. 손목 각도만."
하늘이 각도를 바꿨다. 서하의 숨이 다시 길어졌다.
"초록."
서하가 손을 놓으라는 신호로 바닥을 두 번 쳤다. 장면이 접혔다. 낮의 매트가 다시 매트가 되었다.
"민재 씨. 지금은 잘했어요. 그런데 실제 파티에서는 노랑이 이렇게 깨끗하게 안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노랑 대신 웃어요. 어떤 사람은 죄송하다고 해요.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면 일단 멈추고 보세요. 사과는 세이프워드가 아니지만, 세이프워드를 삼킨 입에서 자주 나옵니다."
지연이 교대했다. 민재는 매트 밖으로 나와 벽에 등을 붙였다. 등 뒤에 담요의 냄새가 있었다. 세제와 약간의 가죽.
서하가 칠판에 적었다. 당번 루트. 입구, 로프 존, 임팩트 존, 슬링, 애프터케어 코너, 화장실 앞. 칠 분마다 한 바퀴. 한 지점에 머무르지 말 것. 성기를 보지 말 것. 얼굴을 볼 것. 묶인 손의 색을 볼 것. 바닥의 물과 콘돔 포장을 치울 것. 치우는 일도 모니터의 일이다.
"검은 팔찌는 권력이 아닙니다. 자리예요. 그 자리에 있는 동안 당신은 참가자가 아니에요. 발기하면 인정하고, 인정한 채로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숨기려고 방을 나가면 그때 모니터가 비어요. 비는 방이 사고입니다."
민재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서하는 그 뜨거움을 기다려 주었다. 기다려 주는 동안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질문 있어요?"
"장면이 닫힌 방이면요. 문 닫고 플레이하는 커플."
"아틀리에 칠은 완전 폐쇄 룸이 하나예요. 그 방은 당번 두 명이 십오 분에 한 번 노크합니다. 노크 코드가 있어요. 두 번, 쉼, 한 번. 안에서 초록이면 한 번. 노랑이면 두 번. 응답 없으면 문을 엽니다. 열기 전에 크게 말해요. 모니터입니다, 문 엽니다. 수치심보다 호흡이 우선입니다."
하늘이 구급 키트를 열어 보였다. 가위, 붕대, 생리식염수, 포도당 젤리, 여분 담요, 생수. 로프 전용 둥근 가위가 따로 있었다.
"로프는 자르는 게 실례가 아니에요. 혈색이 안 보이면 자릅니다. 리거 중에 화내는 사람 있으면 내가 상대합니다. 신입은 자르기만 해요."
실습이 두 시간 이어졌다. 민재는 노크를 연습하고, 담요를 접는 법을 배우고, 물컵을 오른쪽에 두는 이유를 들었다. 오른손잡이가 받아 마시는 손이 오른쪽이라서. 작은 이유가 쌓여 방이 되었다.
끝날 무렵 서하가 검은 천 팔찌를 꺼냈다. 벨크로. 안쪽에 작은 글씨. AT7-DM.
"교육 통과. 다음 주 토요일 파티, 민재는 하늘이랑 두 번째 시프트. 아홉 시부터 열 시 반. 그 전엔 흰 팔찌로 구경해도 됩니다. 구경할 때도 얼굴만. 발기는 아까 말한 대로."
민재가 팔찌를 받았다. 아직 손목에 감기지 않은 검은 줄. 가벼웠다. 가벼운 것이 더 묵직했다.
지연이 먼저 나갔다. 하늘이 키트를 닫으며 민재에게 말했다.
"첫날 잘하려고 하지 마. 잘하려는 모니터가 개입 타이밍을 놓쳐. 그냥 걸어. 보는 척하지 말고 봐."
서하가 문을 열어 주었다. 골목의 쇳내가 다시 들어왔다. 낮의 문래는 아직 파티가 아니었다. 그러나 민재의 가방 속에 검은 팔찌가 있었다.
지하철에서 그는 초록, 노랑, 빨강을 입 안에서 굴렸다. 세 음절이 세 개의 문이었다. 문은 잠그는 것이 아니라 여는 쪽에 가까웠다. 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방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야 그는 팔찌를 서랍에 넣지 않고 책상 위에 두었다. 눈에 보이게. 보이는 곳에 두는 일이 첫 번째 당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