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편 밤
하윤이 그 집을 나온 건 새벽 세 시였다.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생각보다 작아서, 그녀는 잠시 문고리를 잡은 채로 서 있었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택시를 잡는 손끝이 떨렸다.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면서도 그녀는 백미러 너머로 창밖을 보았다. 골목은 비어 있었고,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 하윤은 그제야 자신이 신발을 한쪽만 제대로 신은 것을 알았다. 오른쪽 발뒤꿈치가 구두 밖으로 나와 있었다. 고치지 않았다. 지금은 신발을 고치는 손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었다.
원룸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안에는 충전기와 여벌 속옷, 그리고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예전에 적어 둔 안전어가 있었다. 빨간색. 그 단어 하나. 종이의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여러 번 꺼내 보았다는 뜻이었다. 여러 번 꺼냈고, 여러 번 말했고, 말한 것이 멈추게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하윤은 그 종이를 접어 서랍 맨 아래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현관문보다 컸다.
첫 주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자더라도 몸이 먼저 깼다. 목덜미에 손이 닿는 감각, 이름을 낮게 부르는 목소리, 문이 잠기는 소리.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는데 심장이 먼저 달렸다. 하윤은 화장실 불을 켜 두고 잤다. 불을 끄면 어둠이 너무 정직하게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
커뮤니티에는 나가지 않았다. 단톡방의 알림을 껐다. 서연이 세 번 전화했을 때, 두 번은 받지 않았고 한 번은 "좀 쉬고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짧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걱정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는 걸, 하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말 외에 꺼낼 문장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수치심이 아니었다. 수치심은 익숙했다. 익숙한 감정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 있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경계였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의 남자가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조금만 커도 어깨가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뒤로 서면 층수 버튼을 세 번 확인했다. 친구의 포옹도, 친절한 점원의 손짓도, 전부 같은 회로를 지나 경고로 바뀌었다.
하윤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무릎을 보았다. 멍은 이미 옅어지고 있었다. 살갗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된다. 문제는 살갗이 아니었다. 문제는 무릎을 꿇는 자세 자체가, 이제는 신뢰가 아니라 무력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다시는."
하윤이 혼잣말로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고, 문장은 짧았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겠다. 그 문장을 입 밖에 내자 가슴 한가운데가 잠시 비는 느낌이 들었다. 비어 있는 자리가 곧 안전일 수도 있고, 곧 추위일 수도 있었다. 하윤은 그 구분을 아직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창문을 열어 겨울 끝의 바람을 들였다. 원룸이 좁아서 바람은 금방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하윤은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꿇지 않고, 세우고. 그 작은 차이가 그날 밤 그녀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잠들기 전에 그녀는 휴대폰을 켜 날짜를 확인했다. 이별한 지 사흘. 사흘은 아직 아무 서사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하윤은 화면을 끄고, 불을 켠 채로, 무릎을 편 채 누웠다.
어디에도 그를 부르는 이름은 없었다. 그게 지금은 유일한 안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