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 나온 사람
하윤이 신촌 카페 앞에 선 것은 모임 시작 십 분 전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사람들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과 낯선 얼굴이 섞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명찰 대신 작은 스티커가 놓여 있었다. 이름과 대명사, 그리고 오늘 대화에 괜찮은 주제. 이 모임은 원래부터 그렇게 굴러갔다. 세션을 잡으러 오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가 사람으로 먼저 보이기 위한 자리.
하윤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서도 골목에서 시간을 끌었다. 들어가기 직전에 서연에게 문자가 왔다.
도착했어. 창가 쪽. 네가 앉고 싶은 자리가 있으면 그쪽으로 옮길게.
하윤은 답하지 않고 문을 밀었다. 벨이 가볍게 울렸다. 몇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았다. 오래 머물지 않는 시선이 얼마나 고마운지, 하윤은 그제야 알았다.
서연이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하윤은 창가 쪽 빈자리에 앉았다. 외투를 벗지 않았다. 외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핑계였다.
"물 마실래, 차 마실래."
"물."
물이 오자 하윤은 컵을 감쌌다. 손바닥에 냉기가 남아 있었다. 모임은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새로 온 사람의 소개, 다음 달 안전 워크숍 공지, 누가 읽은 책 이야기. 하윤은 말없이 들었다. 듣는 것은 아직 괜찮았다. 말하는 것이 아직 무거웠다.
시원을 처음 본 것은 그때였다.
그는 창가에서 두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검은 니트, 짧은 머리, 목소리가 크지 않은 사람. 운영진이 안전 워크숍 진행을 부탁하자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되는 사람만 오시면 됩니다. 숙제 같은 거 없어요. 체크인 문장이랑 애프터케어 순서만 같이 적어 보려고요."
애프터케어라는 단어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하윤의 손가락이 컵 겉면에서 멈췄다. 그 단어는 그녀에게 포스터 속의 말이었다. 원칙으로 적혀 있고, 실제로는 자주 생략되던 말. 시원은 그 단어를 마치 약속의 이름처럼 담담하게 발음했다.
서연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시원. 작년에 여기 왔어. 세션 자랑 한 번도 안 하는 타입이야."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션 자랑을 안 한다는 소개가, 지금은 가장 믿을 만한 소개처럼 들렸다.
모임이 끝날 무렵,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하윤도 일어나려다 물컵을 건드렸다. 물이 접시 위로 흘렀다. 하윤이 냅킨을 찾기도 전에 시원이 자기 앞의 휴지를 밀어 주었다. 손끝이 닿지 않게, 휴지만 테이블 한가운데로.
"여기요."
"감사합니다."
시원은 웃지 않았다. 친절을 과하게 포장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하윤의 이름을 묻지 않았고, 명찰 스티커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가방 끈을 집어 들었다.
카페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었다. 서연이 하윤의 어깨를 건드리지 않은 채 물었다.
"괜찮아. 온 거."
"모르겠어. 온 것까지는 한 거야."
"그거면 돼. 오늘은 그거면 돼."
하윤은 횡단보도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시원이 카페 유리 안쪽에서 테이블을 닦고 있는 운영진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종이 뭉치. 워크숍 유인물처럼 보였다. 그는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도 누구에게도 오래 붙어 있지 않았다.
하윤은 그 거리를 보았다. 붙지 않는 거리. 밀지 않는 거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창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외투 깃이 올라간 채로, 입술이 마른 채로. 하윤은 주머니 속의 손을 쥐었다 폈다. 오늘 그녀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번호를 주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이 휴지를 밀어 주었고, 그 손짓이 이상하리만큼 정확했다. 너무 가깝지 않았고, 너무 멀지도 않았다.
원룸에 돌아와 체인을 걸면서 하윤은 생각했다. 다시는, 이라는 문장은 아직 유효하다. 유효한 문장을 들고도 모임에 나올 수는 있다. 두 가지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그날 밤 그녀는 일기장에 짧게 썼다.
휴지를 밀어 준 사람이 있었다.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 점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