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는 사람

두 번째 모임에서 하윤은 외투를 벗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서연은 그 변화를 말로 만들지 않았다. 말로 만들면 변화가 숙제가 된다. 하윤은 숙제가 되는 회복을 이미 너무 많이 해 보았다.

시원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가에서 두 자리. 오늘은 워크숍 안내를 더 자세히 했다. 체크인 문장을 종이에 적어 보는 시간.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 오늘은 말하기 싫은 것. 세 칸이었다.

하윤은 펜을 잡고 세 번째 칸만 채웠다.

오늘은 말하기 싫은 것: 거의 전부.

그리고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원하는 것 칸에 한 줄을 더 썼다.

조용히 앉아 있고 싶다.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제출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시원은 처음부터 말했다. 적은 것은 가져가셔도 됩니다. 보여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는 행위 자체가 오늘 할 일의 전부여도 됩니다.

모임이 끝난 뒤, 하윤이 가방을 챙기는 동안 시원이 같은 줄에 섰다. 출구로 가는 줄. 그는 하윤의 옆을 보지 않고 앞을 보았다.

"지난번에 물 쏟으셨죠. 오늘은 안 쏟으셔서 다행입니다."

너무 가벼운 말이어서 하윤이 짧게 웃었다. 웃음이 나오자 스스로 놀랐다. 웃음이 배신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낯설었다.

"기억하시네요."

"쏟아진 물은 기억에 남습니다. 이름은 아직 모릅니다."

하윤은 잠시 망설였다. 이름을 주는 것은 작은 문이다. 작은 문도 문이다.

"하윤이에요."

"시원입니다. 이미 들으셨을 수도 있고요."

밖으로 나오자 날이 흐려 있었다. 시원은 하윤의 걷는 속도를 맞췄다. 맞추되, 같은 방향으로 가자고 말하지는 않았다. 정류장 앞에서 자연스럽게 멈출 수 있는 거리.

하윤이 먼저 물었다. 묻는 자신이 신기했다.

"워크숍, 어렵나요."

"아니요. 어려운 걸 하려고 만든 자리가 아닙니다. 안전어를 다시 적어 보고, 애프터케어를 순서로 나눠 보는 정도입니다. 실습은 없습니다. 손도 안 잡습니다."

손도 안 잡습니다, 라는 문장이 하윤의 어깨를 내려놓았다.

"왜 그런 워크숍을 해요."

시원은 횡단보도 신호를 보다가 대답했다.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요. 그리고 필요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서요. 제가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닙니다. 예전에 상대의 침묵을 동의로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나중에 말해 주었고, 저는 그때 배웠습니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그 문장을 몸으로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윤은 그의 옆얼굴을 보았다. 자랑도 참회도 아닌 톤이었다. 사실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톤.

버스가 오고 있었다. 하윤은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저, 세션은 안 해요. 앞으로도."

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에 설득이 묻어 있지 않았다.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걸 이렇게 쉽게 말하네요."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하지 않는 세션은 없는 편이 맞습니다. 모임의 사람끼리 밥을 먹을 수는 있겠죠. 밥은 세션이 아니니까요."

버스 문이 열렸다. 하윤은 발걸음을 옮기다가 멈췄다.

"밥이요."

"다음에 모임 끝나고, 괜찮으시면. 거절하셔도 아무 일도 없습니다."

하윤은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았다. 시원은 보도에서 손을 흔들지 않았다. 흔들지 않는 작별이 깨끗했다.

원룸에서 하윤은 외투를 벗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밥은 세션이 아니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동안 그녀는 친밀한 모든 것을 세션의 입구로 읽는 버릇이 있었다. 밥, 차, 귀가 배웅, 고개 끄덕임. 전부 다음 단계의 예고처럼. 시원의 문장은 그 버릇을 잠시 멈추게 했다.

하윤은 일기장에 썼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게 거절이 아니라 방식인 사람.

그녀는 그 문장 옆에 물음표를 붙였다가, 지웠다. 지금은 물음표보다 관찰이 필요했다. 관찰은 희망보다 안전했다.

그날 밤 화장실 불을 아직 켜 둔 채로, 하윤은 무릎을 편 채 누웠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잠이 오지는 않았다. 다만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처음으로 공포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