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케어라는 말
워크숍은 일요일 오후, 모임이 열리는 카페의 뒷칸에서 시작했다. 문이 닫히자 바깥 소음이 줄었고, 테이블 위에는 유인물과 펜, 물컵만 놓였다. 참가자는 일곱 명이었다. 하윤은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시원은 진행을 맡았지만, 상석처럼 보이는 자리에는 앉지 않았다. 화이트보드 옆에 서서, 먼저 시간을 나누었다.
"오늘은 세션을 하지 않습니다. 장면을 연습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순서를 적는 일입니다. 애프터케어를 기분으로 두지 않고, 순서로 두기."
하윤은 유인물의 빈칸을 보았다. 세션 직후, 한 시간 뒤, 다음 날 아침, 삼 일 뒤. 네 칸이었다. 그녀는 펜을 쥐고도 쓰지 못했다. 적을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애프터케어는 말이 아니라 공백이었다. 끝나면 물이 오기도 했고, 오지 않기도 했다. 담요가 덮이기도 했고, 덮이지 않은 채 그가 먼저 잠들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의 메시지는 종종 "어제 예뻤어"였지, "지금 몸은 어때"가 아니었다.
옆자리의 사람이 물었다.
"애프터케어가 꼭 포옹이어야 하나요."
시원이 고개를 저었다.
"포옹은 도구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포옹이 침범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혼자가 회복입니다. 중요한 건 상대가 고른 순서입니다. 제가 주고 싶은 돌봄이 아니라요."
하윤의 펜이 움직였다. 세션 직후 칸에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물. 말. 혼자 있어도 되는 허가. 혼자 두라는 명령은 말고.
한 시간 뒤 칸에는 짧게 적었다.
몸 어디가 남는지 묻기. 묻지 않고 만지지 않기.
다음 날 아침 칸은 오래 비워 두었다가, 겨우 한 줄을 채웠다.
잘 잤는지보다, 악몽이 있었는지.
삼 일 뒤 칸에는 쓰지 못했다. 삼 일 뒤라는 시간 자체가 그녀에게는 개념이 아니었다. 예전의 관계는 그날의 열기로 다음 날을 덮어 버렸다. 덮인 다음 날은 질문할 자리가 없었다.
쉬는 시간에 시원이 하윤의 테이블로 오지 않았다. 진행자가 참가자를 따로 붙잡는 일은, 그 자체로 위계가 된다. 하윤은 그 거리를 알아채고 이상하게 고마웠다. 대신 시원은 보드에 문장을 하나 더 적었다.
애프터케어는 보상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다. 약속의 뒷면이다.
하윤은 그 문장을 휴대폰 메모에 옮겨 적었다. 보상처럼 주어지던 다정함은, 다정함이 아니라 미끼가 되기 쉽다. 구원처럼 주어지던 돌봄은, 돌봄이 아니라 빚이 되기 쉽다. 약속의 뒷면이라면, 앞면에서 합의한 사람이 끝까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워크숍이 끝난 뒤 서연이 하윤의 어깨 근처에서 물었다. 닿지는 않았다.
"어땠어."
"적는 건 할 수 있었어. 실행은 아직."
"실행은 오늘 안 해도 돼. 적힌 종이가 있으면, 나중에 몸이 말을 잊어도 종이가 대신 말하거든."
집 가는 길에 시원에게 짧은 문자가 왔다.
오늘 나오신 것, 잘 보았습니다. 유인물은 가져가셔도 됩니다. 빈칸이 남아 있어도 실패한 게 아닙니다.
하윤은 정류장 의자에 앉아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빈칸이 실패가 아니라는 말. 그녀는 그동안 빈칸을 너무 많이 실패로 번역해 왔다. 말하지 못한 것, 참지 못한 것, 떠나지 못한 것, 너무 늦게 떠난 것. 전부 빈칸이었고, 전부 점수처럼 매겨졌다.
답장은 늦게, 짧게 보냈다.
빈칸 남겨 두었어요. 그래도 종이는 가져왔어요.
시원의 답은 한 줄이었다.
그거면 오늘 충분한 순서입니다.
원룸에서 하윤은 유인물을 일기장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애프터케어라는 말이 처음으로, 포스터의 글자가 아니라 손의 순서로 만져졌다. 순서는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실행되지 않은 순서도, 적혀 있으면 방향이 된다.
그날 하윤은 물을 컵에 따라 자신의 옆에 두었다. 세션은 없었다. 세션이 없어도 물을 두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걸, 워크숍은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