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한 줄
수요일 오후 두 시, 백화점은 한산했다. 혜수는 반차를 내고 정민의 회사 근처에서 그와 만났다. 정민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놓은 채였다. 두 사람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삼 층 보석 코너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 않는 말이 이미 약속이었다.
코너는 밝았다. 조명이 유리 아래 은과 금을 모두 같은 온도로 보이게 했다. 점원이 다가오자 혜수가 먼저 말했다.
"남자 은목걸이 좀 보여주세요. 너무 굵은 거 말고. 매일 차고 다닐 수 있는 거요."
점원이 트레이를 꺼냈다. 체인 종류가 다섯이었다. 정민의 손이 트레이 가장자리에 멈췄다. 혜수는 그 손을 보았고, 점원에게 말했다.
"이 세 개만 꺼내서 만져보게 해주세요."
세 줄이 검은 벨벳 위에 놓였다. 첫 번째는 너무 가늘었다. 끊어질 것 같았다. 세 번째는 고리가 커서 눈에 띄었다. 가운데 줄은 손가락 두께의 절반쯤, 고리가 작고 촘촘했다. 혜수가 그것을 집어 정민의 목 앞에 대보았다. 대보는 일이 점원 앞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선물을 고르는 일로 보였다. 점원은 미소를 유지했다. 그 미소 뒤에서 이 줄의 진짜 이름을 알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이거." 혜수가 말했다.
"길이 조절되는 제품입니다. 사십오에서 오십 센티." 점원이 잠금장치를 보여주었다. 집게 고리가 아니라, 작은 원형 고리와 막대가 맞물리는 방식이었다. 손가락으로 열 수 있었고, 한 번 잠그면 잘 풀리지 않았다.
탈의실 같은 작은 거울 앞으로 정민이 갔다. 혜수가 뒤에서 목걸이를 그의 목에 걸었다. 차갑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은이 목덜미의 체온을 빼앗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혜수는 고리를 잠그지 않은 채로 길이를 보았다. 쇄골 아래로 두 손가락 정도. 단추를 잠그면 가려지고, 풀면 보일 길이였다.
"어때."
정민이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마흔일곱의 목, 얇아진 정수리, 그 아래 은 한 줄. 그는 오래 말없이 있다가 아주 작게 말했다.
"이거예요."
계산은 혜수가 했다. 십오만 원. 결혼반지보다 쌌다. 싼 줄이 더 맞았다. 비싼 물건이어야 무게가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게는 채우는 손에 있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목걸이는 작은 상자 속에 있었다. 혜수가 무릎 위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정민은 운전대를 잡고 전방만 보았다. 신호 대기 중에 그의 목덜미가 비어 있는 것이 혜수 눈에는 선명했다. 비어 있는 자리가 이미 자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은 간단히 먹었다. 밥과 김치와 계란찜. 설거지를 정민이 끝냈을 때 해가 완전히 져 있었다. 혜수는 상자를 식탁에 올려놓고 그를 불렀다.
"거실로 와."
정민이 고무장갑을 싱크대에 걸어놓고 나왔다. 양말을 신은 채였다. 혜수는 "양말 벗어"라고 했다. 그 한 문장이 첫 번째 지시였다. 지시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는 그냥 말이었는데, 붙고 나니 공기가 달라졌다. 정민은 소파 가장자리에 앉아 양말을 벗었다. 벗은 발을 가지런히 모았다.
혜수는 상자를 열었다. 은이 식탁등 아래서 한 번 빛났다. 그녀는 그것을 손에 걸고, 정민의 앞에 섰다. 서 있는 자신이 너무 커 보여 잠깐 주저했다. 주저하는 동안 정민이 천천히, 무릎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루였다. 무릎 아래 장판의 무늬가 그의 체중을 받았다. 정민은 허리를 곧게 하고, 손을 허벅지 위에 포개고, 혜수의 손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을 들지 않고 손만 보았다. 수요일에 약속한 대로였다.
혜수의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을 그가 보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숨기지는 않았다. 그녀는 은줄을 그의 목 뒤로 넘겼다. 목덜미의 짧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걸렸다. 고리를 막고, 막대를 끼우고, 찰깍 소리가 났다. 아주 작았다. 작은 소리가 이 집을 한 바퀴 돌았다.
"일어서지 마." 혜수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조금만 그대로 있어."
정민이 그대로 있었다. 은이 그의 맥박 위에서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혜수는 그 줄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줄과 피부와 손, 세 개가 한 온도로 맞을 때까지 그녀는 서 있었다.
"내 거야?" 물어보는 문장이 나왔다. 선언이 되어야 할 자리가 질문이 되었다. 혜수는 그 질문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첫날은 질문이어도 됐다.
정민이 눈을 감고 대답했다.
"당신 거예요."
혜수는 그의 정수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쓰다듬는 일이 어색했다. 어색한 채로 세 번을 했다. 세 번째에 정민의 어깨가 내려갔다. 내려간 어깨가 허락처럼 보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혜수가 말했다. "차고 자. 내일 아침에도 풀지 마. 풀 사람은 나야."
"네."
그 한 글자가 평소의 "응"과 달랐다. 혜수는 그 차이를 주워 담아 가슴에 넣었다. 그녀는 무릎 꿇은 사람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잡은 손은 남편의 손이었다. 목에 걸린 은은 다른 이름이었다. 두 이름이 한 몸에 있는 저녁이었다.
수박, 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나올 일이 없었다. 다만 그 단어가 냉장고 안에 차게 있는 것이 혜수는 안심이 되었다. 안심 위에서 그녀는 그의 목덜미를 한 번 더 보았다. 은 한 줄. 목줄이 아니었다. 목줄보다 정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