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냄비
된장찌개 냄비가 두 번째 끓어오를 때 현관이 열렸다. 혜수는 국자를 놓고 시계를 보지 않았다. 일곱 시 이십 분이면 정민이었다. 십오 년 동안 그 시각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야근이 있는 날에는 미리 문자가 왔고, 문자가 없으면 그는 언제나 그 시간에 신발을 벗었다.
"나 왔어."
"손 씻고. 밥 차려놨어."
정민은 화장실로 가서 물을 틀었다. 비누 냄새가 부엌까지 밀려왔다. 혜수는 밥공기를 식탁에 놓고, 김치 접시를 옮기고, 그의 수저를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놓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잡이였다. 그런 것을 틀리지 않는 일이 결혼의 대부분이었다.
두 사람은 뉴스를 틀어놓고 먹었다. 화면 속에서 누군가 부동산 얘기를 하고 있었고, 혜수는 "우리 단지는 안 빠졌지" 하고 말했으며, 정민은 "응" 하고 대답했다. 그 "응"에는 정보가 없었다. 정보가 없어도 되는 대답이었다. 혜수는 반찬 하나를 그의 밥 위로 올려주었고, 그는 그것을 집어 먹었다. 고맙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오던 시절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설거지는 정민 몫이었다. 결혼 삼 년차부터 그렇게 나뉘었다. 혜수가 저녁을 하면 그가 싱크대 앞에 섰다. 그는 고무장갑을 끼는 사람이었다. 설거지 전에 물 온도를 손등으로 확인하고, 밥공기를 먼저 씻고, 기름기 있는 것을 나중에 씻었다. 혜수는 그 순서를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것이 편했다.
수아가 영상통화를 걸어온 것은 여덟 시 반이었다. 기숙사 뒤에서, 머리가 젖은 채로.
"엄마, 나 이번 주말 안 내려가. 조모임 있어."
"밥은 먹고 다니니."
"먹고 다녀. 아빠는?"
정민이 화면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빠 잘 있어. 공부 열심히 하고."
"알아. 끊을게."
화면이 꺼진 뒤 거실이 조금 넓어졌다. 수아는 스무 살이었고, 서울의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고, 내려오는 주말이 한 달에 한 번이 된 지 오래였다. 빈 방은 그대로 수아 방이었지만, 이불은 개어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먼지가 앉았다. 혜수는 일주일에 한 번 그 먼지를 닦았다.
열 시에 정민이 소파에서 뉴스를 보다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코를 골지는 않았다. 다만 입이 조금 벌어졌고, 안경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혜수는 리모컨을 집어 소리를 낮추고, 그의 안경을 빼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안경테에 그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마흔일곱의 얼굴이었다. 정수리가 얇아진 지 오 년째였고, 그는 그것을 빗으로 가리려 하지 않았다. 가리려 하지 않는 것이 혜수는 좋았다. 젊은 날의 정민은 더 말이 많고, 더 자주 웃었지만, 지금 이 얼굴이 더 그의 얼굴 같았다. 혜수는 그 얼굴을 십오 년 동안 아침마다 보았고, 이제는 보지 않아도 그릴 수 있었다.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상적인 말이었고, 일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본 얼굴이었다.
욕실에서 이를 닦으며 혜수는 거울을 보았다. 마흔여섯. 귀밑으로 흰머리가 세 올 나 있었다. 뽑지 않기로 한 지 일 년째였다. 뽑으면 더 난다고 누가 말했고, 혜수는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뽑는 수고를 그만두었다. 손등에는 아직 검버섯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괜찮은 날이었다.
침대에서 정민이 등을 보이며 누워 있었다. 혜수는 그의 등 뒤에 붙어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의 등 넓이는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그녀는 그 등에 이마를 대고, 그의 잠든 호흡을 세었다. 열둘, 열셋.
정민은 잠든 척하고 있었다. 잠든 척하는 일은 최근 몇 달 사이 늘어난 버릇이었다. 혜수의 이마가 등에 닿는 온도를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온도 안에서 그는 말하고 싶은 문장을 삼켰다. 삼킨 문장은 뱃속에서 돌이 되지 않고,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목구멍에 걸린 채로 그는 정말 잠이 들었다.
새벽 세 시에 정민이 눈을 떴다.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누웠다. 혜수는 입을 약간 벌린 채 자고 있었고, 이불이 허리까지 내려가 있었다. 잠옷 아래로 허리의 선이 보였다. 그는 그 선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지 않았다. 쓰다듬으면 그녀가 깰 것이고, 깨면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대신 그는 그녀 목덜미를 보았다. 베개에 눌려 접힌 피부, 짧은 단발이 쓸고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 무언가가 걸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걸이 같은 것. 아니, 목걸이가 아니었다. 그는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밀어낸 자리가 더 선명해졌다.
정민은 돌아누워 천장을 보았다. 아파트 천장에는 소방 스프링클러가 하나 박혀 있었다. 동탄의 이 집, 이십 층, 팔십사 제곱. 분양받을 때 수아가 초등학생이었고, 지금은 대학생이었다. 그 사이에 천장 스프링클러는 한 번도 터지지 않았다. 터지지 않는 것들이 이 집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뒤로 그 문장이 남았다.
당신 것이 되고 싶다.
그 문장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로, 정민은 마흔일곱의 수요일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