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의 법
을지로 3가, 옛 활자공장 2층. 저녁 네 시 십칠 분. 주방에 불이 다 들어와 있었다.
윤서는 패스 앞에 섰다. 스테인리스가 아직 미지근했다. 점심 서비스를 닫은 지 두 시간. 철판의 기름은 걷혔고, 살라만더 아래는 비어 있었다. 그래도 패스는 패스였다. 이 선의 안쪽에서 접시는 완성되고, 이 선의 바깥에서 접시는 손님의 것이 되었다.
"미장플라스."
짧은 말이었다. 주방 전체가 한 박자 늦게, 그러나 정확히 움직였다.
수셰프 강민이 스테이션을 돌았다. 소스 쪽 스파출러, 피시 쪽 핀셋, 가드망제의 빙수기 온도. 그는 메모하지 않았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고, 입으로는 짧게만 받았다.
"소스, 가능합니다."
"피시, 농어 여덟. 참숭어 여섯."
"가드망제, 냉 스타터 이상 없습니다."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은 칭찬이 아니었다. 통과였다.
활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디너만 열었다. 카운터 여섯, 홀 아홉 테이블. 열두 코스. 가격은 이십팔만 원. 페어링은 별도. 을지로의 인쇄골목 안쪽에서, 이 집은 목소리를 낮춘 채로 예약이 찼다.
강민이 패스 끝에 놓인 트레이를 밀어 올렸다. 오늘은 첫 코스가 바뀌는 날이었다. 능이버섯 콘소메 위에 올리던 생송로를 빼고, 초석잠 칩과 풋마늘 오일을 올린다. 윤서가 새벽 세 시에 적어 둔 레시피였다. 강민은 그것을 아침 여덟 시에 읽고, 아홉 시에 브루노아즈를 다시 짰다.
"셰프. 콘소메 염도, 어제보다 반 그램 올렸습니다. 능이 향이 약해서요."
윤서가 스푼을 받아 입에 넣었다. 삼 초. 그녀는 맛을 오래 굴리지 않았다.
"됐습니다. 첫 테이블에 그 염도로."
"예, 셰프."
낮의 「예, 셰프」는 짧고 건조했다. 복명. 복창. 브리가드의 뼈대. 그 세 음절이 다른 뜻을 갖는 시간은, 아직 멀었다.
재훈이 소스 팬을 중불에 올렸다. 한우 트리밍으로 뽑은 주스가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졸아들고 있었다. 하늘은 참숭어를 콩피할 기름 온도를 재고 있었다. 팔십사 도. 그 이상이면 살이 풀어지고, 그 이하면 중심이 선다. 수아는 냉 플레이트의 허브를 하나씩 집어 올리고, 동혁은 보리 리소토용 스톡을 계량했다. 파티시에 민지는 디저트 쪽 마키노에서 이미 세 번째 배치를 뽑고 있었다.
윤서는 주방을 보지 않고도 주방을 봤다. 소리로 봤다. 팬이 맞는 소리, 티켓기가 아직 안 울리는 소리, 강민의 발소리가 패스와 소스 사이를 왕복하는 소리.
강민은 윤서의 왼손이었다. 정확히는, 윤서가 패스에서 손을 떼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손이었다. 헤드셰프가 접시를 닦고 소스를 숟가락으로 긋는 동안, 수셰프는 나머지 일곱 명을 하나의 호흡으로 묶었다.
"동혁. 리소토 알덴테, 어제 한 테이블이 죽처럼 나갔어. 스톡 한 국자 덜."
"알겠습니다."
강민의 낮 목소리는 낮았다. 그러나 코미 준호가 한 박자 늦자, 그 낮은 목소리가 칼처럼 짧아졌다.
"준호. 허브 지금. 패스가 기다려."
"네!"
윤서는 그 장면을 곁눈으로만 봤다. 수셰프가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헤드셰프가 개입할 자리가 아니었다.
여섯 시 정각. 첫 티켓이 나왔다. 카운터 1, 두 명. 알레르기 없음. 페어링 있음.
윤서가 티켓을 패스 위에 붙였다.
"카운터 원. 아미즈부터."
강민이 돌아서서 스테이션을 열었다.
"아미즈, 파이어."
불이 붙었다. 실제 불이 아니라, 그 말 안의 불. 주방이 한 온도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윤서와 강민의 시선이 패스 위에서 스쳤다. 일 초도 안 되었다. 낮에는 그 이상 붙들지 않는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