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싸며
태양에게.
떠나는 날 아침, 나는 가방을 세 번 싸웠습니다. 한 번은 너무 많이, 한 번은 너무 적게, 마지막은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검은 가방. 약속한 대로였어요. 그 안에 넣은 것들 — 이틀치 옷, 세면도구, 충전기, 노란 머리끈 여분, 피임 도구, 작은 노트, 그리고 당신의 글 일부를 옮겨 적은 종이 한 장. 「글이 먼저고, 손은 나중이다.」 그 문장이 가방 안쪽에서 바스락거렸어요.
피임 도구를 넣으면서 나는 혼자 웃었습니다. 첫날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해놓고, 가방은 미래를 챙기고 있었거든요. 미래가 가방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무엇을 입을까가 반나절을 잡아먹었어요. 너무 예쁜 옷은 당신이 말한 「확인」처럼 보일 것 같았습니다. 너무 편한 옷은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결국 흰 블라우스와 짙은 색 스커트. 무릎이 살짝 보이는 길이. 무릎을 의식하고 고른 것이 들킬까 봐, 나는 스타킹을 신었습니다. 스타킹은 방패였어요. 얇은 방패.
노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거울을 봤습니다. 회사원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밤에 편지를 쓰는 사람의 얼굴이었어요. 눈이 조금 부어 있었습니다. 잠을 설쳤거든요.
당신은 오전에 쪽지를 보냈습니다.
「밥 먹었어?」
「토스트요. 목이 안 넘어가서 반만.」
「억지로 삼켜. 열차는 길다.」
「알겠습니다.」
「유진. 오늘 나는 너에게 명령하지 않아. 그 문장도 부탁이야.」
부탁. 돔이 부탁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이 나를 약하게 만들었어요. 약해진 채로 신발을 신었습니다.
오후, 나는 회사를 반차 내고 나왔습니다. 책상 위에 「부산」이라고 쓴 메모를 남기지 않았어요. 남기고 싶었지만. 이 길을 아직 누구에게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명하면 소설이 되고, 소설이 되면 실제가 희미해질 것 같았어요.
서울의 저녁이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보라로 식기 전에 나는 편의점에 들러 물을 샀습니다. 당신은 물을 들고 온다고 했으니, 나도 물을 들고 가고 싶었어요. 대칭. 하찮은 대칭이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습니다.
해 질 무렵, 당신은 사진 한 장을 보냈습니다. 부산역 시계. 아직 오후. 「미리 와봤어. 연습.」이라는 한 줄. 그 사진 속 시계를 보고 나는 웃었어요. 당신이 조마조마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시계 안에 있었습니다. 돔이 연습을 하러 역에 가 있는 모습. 그 모습이 글 속의 그보다 더 좋았습니다.
「연습이라니. 나도 가방을 세 번 쌌어요.」
「세 번이면 충분해. 무리하지 마. 천천히.」
반년 전의 문장이 다시 왔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가방 지퍼를 마지막 한 번 닫았습니다.
출발 세 시간 전,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어요.
태양에게.
나는 지금 조마조마합니다.
글 속의 그가 실제의 그와 다를까 봐.
다른 게 나쁜 게 아니라, 다른 그를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봐.
그래도 갑니다.
마지막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첫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이미 세션 같아요.
명령 대신 대화를 하겠다고 했으니,
나는 내 입을 가져갑니다.
입만 가져가는 게 아니에요.
무릎도, 목도, 아직 당신이 모르는 손바닥도.
가방 안에 다 넣었습니다.
잘 도착하게 해주세요.
아니, 잘 도착하겠습니다.
유진.
그 쪽을 찢어 가방 안 지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부치지 않을 편지. 부치지 않아도 이미 당신 것이었어요.
현관에서 나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봤습니다. 이 집이 이틀 뒤의 나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어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습니다. 나가는 문이 더 중요했거든요.
계단을 내려가며 휴대전화를 확인했어요.
「타고 있어?」
「아직 집이에요. 지금 나갑니다.」
「조심히. 나는 여기 있어.」
여기. 부산역의 여기. 아직 오후가 남은 여기. 나는 그 여기를 향해 검은 가방을 들고 골목을 나섰습니다.
여름 저녁의 서울이 뜨거웠어요. 땀이 손바닥에 고였습니다. 약속한 땀. 나는 그 땀을 닦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걸었습니다.
태양. 가방은 생각보다 가벼웠습니다. 무거운 것은 가방이 아니라, 반년을 닫고 가는 일이었어요. 닫는 것이 아니라 들고 가는 일. 그 차이를 현관에서 겨우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