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23시 14분

태양에게.

서울역은 밤이 되면 다른 도시가 됩니다. 낮의 서두름이 빠지고, 남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정말 가야 하는 사람들만 남아요. 나는 그 흐름 속에 검은 가방을 들고 섰습니다.

전광판에 부산행이 떠 있었습니다. 스물세 시 십사 분. 무궁화호. 지연 없음. 그 네 글자가 내 목을 조였어요. 지연이 있으면 도망갈 핑계가 있었을 텐데. 당신은 핑계를 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개찰구 앞에서 쪽지를 보냈습니다.

「서울역이에요. 표를 찍기 직전입니다.」
「찍어. 나는 이미 역 앞이야. 아직 들어가면 너무 일러서, 바깥에서 물 마시고 있어.」
「물이요.」
「차갑다. 너 주려고 하나 더 샀어. 식으면 안 되는데.」

식으면 안 되는 물. 그 문장이 이상하게 다정했습니다. 나는 표를 찍고 들어갔어요.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일부러 느리게 고쳤습니다. 천천히. 당신의 첫 댓글이 발바닥에 남아 있었거든요.

승강장은 형광등이 지나쳐 하얬습니다.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어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둘, 캐리어를 끈 아주머니, 넥타이를 푼 남자. 나는 그 중에 가장 조마조마한 얼굴이었을 겁니다.

벤치에 앉아 노란 머리끈을 다시 묶었습니다. 손이 미끄러웠어요. 땀. 약속한 땀이 이미 와 있었습니다.

당신은 사진을 또 보냈습니다. 부산역 대합실의 빈 의자. 「연습 이 회차.」라는 짧은 말. 나는 그 의자에 당신이 앉을 자리를 상상했어요. 흰 셔츠. 낡은 시계. 물 두 병. 그 상상이 너무 선명해서, 선명함이 무서웠습니다.

「태양. 지금 심장이 너무 빨라요.」
「세어봐. 십 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아직 빨라요.」
「그래도 세었잖아. 그걸로 돼. 명령 아니야. 같이 세는 거야.」

같이 세는 것. 나는 그 문장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열차가 들어왔습니다. 무궁화호는 KTX처럼 날카롭지 않아요. 둔하고, 길고, 밤의 철길을 천천히 삼키는 차. 나는 그 둔함이 고마웠습니다. 빠른 차는 마음을 두고 몸만 데려가거든요.

지정석은 창가였습니다. 사 호차 십칠 번. 창 너머로 승강장의 사람들이 작아졌어요. 가방을 선반에 올리는데 팔이 떨렸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무거워 보이네」 하고 말했고, 나는 「아니요, 가벼워요」라고 답했습니다. 가벼운 가방. 무거운 반년.

열차가 출발하기 삼 분 전, 당신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타면 알려줘. 터널 들어가면 신호가 들쭉날쭉할 거야. 없어도 나는 여기 있어. 유진. 와.」

와. 그 한 글자가 다시 왔습니다. 나는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안전벨트가 없는 열차에서 스스로의 무릎을 벨트로 삼았습니다. 손을 무릎 위에 얹었어요. 반년 전 당신이 시킨 그 자세. 시킨 것이 아닌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탔습니다. 사 호차 창가. 노란 머리끈 했어요.」
「잘했어. 이제 오기만 해. 나는 아무 말도 안 붙일게. 가고 싶으면 가고, 쓰고 싶으면 쓰고. 침묵도 초록이야.」

침묵도 초록이야.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출발 안내 방송이 흘렀습니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아주 작게 몸을 밀었어요. 서울역의 기둥이 창밖으로 미끄러졌습니다.

나는 창에 이마를 대지 않았습니다. 대면 너무 영화 같을 것 같아서. 대신 손을 유리 가까이 가져갔어요. 유리의 냉기가 손바닥에 옮았습니다. 당신의 물도 차갑다고 했지. 그 대칭을 생각하며 나는 숨을 내쉬었어요.

휴대전화 시계가 23:14를 가리켰다가, 23:15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열차는 이미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김밥을 펼쳤어요. 김 냄새가 사 호차를 조금 채웠습니다. 나는 토스트를 반만 먹어서인지, 배가 공허했습니다. 공허를 김밥 냄새로 달래며, 나는 노트에 한 줄을 적었어요.

지금 서울을 떠납니다.
실제의 그에게로.
글 속의 그를 내려놓고 가는 건지,
글 속의 그를 들고 가는 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열차는 이미 떠났고,
나는 그 위에 앉아 있습니다.

노트를 덮고 창밖을 봤습니다. 한강의 불이 짧게 스치고 지나갔어요. 밤의 도시가 점점 성기게 흩어졌습니다.

태양. 서울역 23시 14분은 출발 시각이 아니었습니다. 반년을 닫는 시각이었어요. 닫힌 것이 문이라면, 그 문 너머에 당신이 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