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태양에게.
반년은 천천히 왔습니다. 달력을 세지 않았는데도, 계절이 두 번 바뀌면 사람은 알게 돼요. 우리가 처음 글을 주고받던 겨울이 봄을 지나 초여름이 되었습니다. 서울은 습해지고, 당신은 부산의 장마를 말해주었어요.
「창문이 소금으로 흐려. 해운대는 비 오는 날이 더 시끄러워. 파도 소리 때문에 네 쪽지를 더 가까이 들고 읽게 돼.」
네 쪽지. 그 호칭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웠습니다. 나는 더 이상 「태양님」이라고 쓰지 않았어요. 태양. 그 두 글자면 충분했습니다.
네 번째 달과 다섯 번째 달 사이에,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거의 다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화요일에 야근이 많고, 당신은 수요일에 원고를 마감한다는 것. 나는 아메리카노를 너무 많이 마시고, 당신은 따뜻한 보리차를 마신다는 것. 나는 잠버릇으로 이불을 차고, 당신은 새벽에 한 번 깨어 바다를 본다는 것.
얼굴은 아직이었어요. 목소리는 한 번, 단 한 번 들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밤, 당신이 「삼십 초만. 말 없이. 숨만.」이라고 하더니 음성 파일을 보냈습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손이 차가웠어요.
숨이 들렸습니다. 낮고, 고르고, 조금 거친 들숨. 바다인지 빗소리인지 모를 배경. 그 삼십 초가 내 척추를 타고 내려갔어요. 나는 그 파일을 열 번도 더 들었습니다. 열한 번째에 손이 다리 사이로 들어가, 당신의 숨에 맞춰 원을 그렸습니다. 오는 순간 입술을 깨물어 피 맛을 봤어요.
다음 날 나는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당신은 「허락 없이 왔구나.」라고 했습니다. 혼내는 톤이 아니었어요. 확인하는 톤이었습니다.
「혼내야 하나요.」
「아니. 숨이 닿아서 온 거면, 그건 벌이 아니라 반응이야. 다만 다음엔 말하고 와. 혼자가 아니니까.」
혼자가 아니니까. 반년의 문장 가운데 가장 오래 남은 말이었어요.
여섯 번째 달, 커뮤니티에서는 우리가 이미 오래된 이름처럼 보였습니다. 당신의 글 아래에 내가 댓글을 달면, 누가 「둘 어디 선 거 아냐」 하고 농담을 했어요. 나는 웃어 넘겼습니다. 선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이었어요. 선 것보다 가깝고, 만난 적보다 깊고, 손도 안 잡고 이미 손목의 맥박을 아는 사이.
당신은 어느 날 이렇게 썼습니다.
「유진. 반년이야. 나는 네 손을 아직 못 잡아봤어. 이상하지. 네 안의 깊이는 손가락으로 상상할 수 있는데, 손바닥은 모르잖아.」
「이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이상이 안전해요.」
「안전해서 멈출 거야?」
그 질문이 며칠을 가시처럼 남았습니다. 안전해서 멈추는 일. 나는 그 문장을 싫어하면서도 이해했어요. 글 속의 당신은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실제의 당신은 모를 일이었어요. 목소리가 낮다는 것만 알고, 손이 넓다는 것만 알고, 해운대에 산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키가 얼마인지, 웃으면 눈이 어떻게 접히는지, 커피를 받을 때 손가락이 어떻게 접히는지. 그런 것들이 공백이었어요.
공백이 무서웠습니다. 공백이 채워지면 글이 깨질까 봐.
다섯 번째 달이 끝날 무렵, 나는 처음으로 솔직한 두려움을 적었어요.
「태양. 나는 글 속의 그가 실제의 그와 다를까 봐 조마조마합니다. 다른 게 나쁜 게 아니라, 내가 글에 반한 건 아닐까 봐.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문장을 사랑한 건 아닐까 봐.」
답이 늦게 왔습니다. 늦은 만큼 고른 호흡이 느껴졌어요.
「나도 조마조마해. 그래서 더 만나고 싶어. 글이 먼저였잖아. 손은 나중이고. 나중이 영원히 안 오면, 글이 거짓이 돼. 나는 거짓으로 남기 싫어.」
그 밤 나는 창문을 열고 습한 서울의 공기를 들이마셨습니다. 반년. 백팔십 일에 가까운 밤들. 쪽지와 명령과 노랑과 초록과 숨 파일 하나. 그것들이 쌓여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나는 답했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아직 용기는 덜 났지만. 말하고 싶어졌어요.」
「용기 날 때까지 기다릴게. 재촉 안 해. 다만 나는 이미 정해뒀어. 만나면, 첫날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손도. 입도. 명령도. 이야기만. 그래도 만날래?」
그래도.
그 두 글자가 반년의 마침표처럼 찍혔습니다. 나는 이불 속에서 그 문장을 세 번 읽었어요. 한 번은 안심 때문에, 한 번은 아쉬움 때문에, 마지막은 그 아쉬움이 이미 욕망이라는 걸 알아채서.
「그래도 만날게요. 언제가 되면.」
언제가. 아직 날짜는 없었어요. 그러나 반년은 이미 우리를 그 문장 앞까지 데려다 놓았습니다.
태양. 반년은 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매일 밤이 편지였고, 그 편지들이 쌓여 몸이 된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