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는 점, 남는 점
바늘은 아직 모름, 이라고 은호는 적어 둔 적이 있었다. 리안은 그 칸을 열지 않았다. 대신 왁스를 꺼냈다.
"모름의 옆에 있는 것부터. 온도. 점은 남되 구멍은 내지 않습니다."
저온 캔들. 검정과 자주. 은호는 벤치에 반듯이 누워, 손목만 머리 위로 묶인 상태였다. 다리는 자유. 원하면 닫을 수 있었다. 닫지 않는 것이 그날의 복종이었다.
리안은 그의 가슴 한가운데에 첫 방울을 떨어뜨렸다. 열이 점이 되어 굳기 전에 살을 깨물었다. 은호는 숨을 참았다가 내쉬었다. 둘째 방울은 젖꼭지 옆, 셋째는 정면. 젖꼭지 위의 왁스가 식을 때 피부가 함께 조여졌다. 리안은 떨어뜨리는 높이를 바꿨다. 높을수록 식어 약하고, 낮을수록 날카롭다. 그녀는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고 은호의 얼굴에 읽게 했다.
하복부로 내려간 왁스가 치모를 적셨다. 귀두 가까이 올 때 은호가 무릎을 살짝 모았다. 리안은 멈추고 물었다.
"노랑입니까, 부끄러움입니까."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세이프워드가 아닙니다. 닫을 거면 닫으세요. 닫지 않을 거면 무릎을 벌리고 숫자를 준비하세요."
은호는 무릎을 벌렸다. 왁스가 귀두 옆 얇은 피부에 떨어졌다. 짧고 흰 통증. 페니스가 배 위로 펄떡였다. 리안은 그 위를 치지 않았다. 대신 음낭과 허벅지 주름, 이미 케인 자국이 연한 자리에 방울을 이었다. 열과 오래된 둔통이 겹쳤다.
그녀는 장갑을 끼고 굳은 왁스를 손가락으로 뜯어냈다. 뜯기는 순간의 당김이 떨어지는 순간보다 컸다. 젖꼭지에서 왁스가 떨어질 때 은호가 신음을 냈다. 리안은 그 열린 입을 손가락으로 막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 두 개를 넣었다. 은호는 그것을 빨았다. 자발적이라기보다, 입을 쓸 곳이 필요해서였다.
"삽입은 오늘 나입니다."
리안은 옷을 부분만 벗었다. 스커트를 걷고 속옷을 내렸다. 콘돔을 은호의 페니스에 씌우는 손이 사무적이었다. 그녀는 그의 배 위에 올라 왁스 자국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앉았다. 온도와 습도와 조임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은호는 묶인 손목 때문에 허리를 제대로 밀지 못했다. 리안이 속도를 가져갔다. 그녀의 안쪽이 그를 훑을 때마다 가슴의 왁스 자국이 쓰렸다. 리안은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두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다른 손으로 은호의 목 옆—목 줄기가 아니라 빗장뼈 아래—을 눌렀다.
"나를 보지 말고 점수를 보지 마세요. 지금 몸 어디에 점이 있는지 세세요."
은호는 세었다. 가슴 넷, 배 둘, 귀두 옆 하나, 음낭 둘. 세는 동안 사정이 올라왔다. 리안이 허리를 멈추고 그를 안에 가둔 채 말했다.
"아직."
그녀는 자기 절정만 먼저 가져갔다. 안쪽이 경련하며 은호를 물었다. 은호는 그 조임을 사정의 허락으로 착각했다. 착각은 즉시 부서졌다. 리안이 몸을 들어 그를 빼고, 콘돔 채로 뿌리를 손가락으로 쥐어 막았다. 은호가 매트에서 허리를 꼬았다. 왁스 자국이 마찰에 다시 살아났다.
"지금은 내 점수입니다." 리안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당신은 팔 점을 주고 싶겠죠. 나는 그 팔이 열 때문이 아니라 거절 때문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녀는 다시 앉아 움직임을 짧게 반복한 뒤, 은호의 손목 버클을 풀었다.
"손으로 끝내세요. 내가 봅니다."
은호는 콘돔 위에서 자신을 훑었다. 시선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하는 자위는 세션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사정이 콘돔 끝을 불룩하게 채웠다. 리안은 그것을 빼서 묶고, 그의 가슴에 남은 왁스 조각을 마지막 하나까지 떼어 냈다.
사후 케어. 알로에. 물. 담요. 리안은 그의 머리맡에 앉았으나 쓰다듬지 않았다. 은호가 먼저 말했다.
"칠. 떨어질 때가 아니라 뜯길 때가 컸습니다. 거절은... 팔에 가깝습니다. 합치면 모르겠습니다."
"합치지 마세요. 칠과 팔을 나란히 두세요."
그날의 수첩은 두 줄이었다.
왁스 7 — 점이 뜯길 때.
거절 8 — 안에 있다가 막힐 때.
은호는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칸이 늘어날수록 통제가 정밀해지는 줄 알았다. 실제로는 구멍이 늘고 있었다. 리안이 그 구멍으로 손을 넣고 있는 기분이었다. 기분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정확한 감각이었다. 그는 그 정확함을 두려워하면서도, 다음 목요일을 이미 비워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