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온도
두 번째 만남은 세션이 아니었다. 같은 룸, 같은 테이블. 리안은 도구를 치워 두고 물 두 잔만 올려 놓았다. 은호는 수첩을 가방 안에 둔 채 앉았다. 꺼내지 않는 것이 일종의 방어처럼 느껴졌다.
"지난번 8점. 다시 묻지는 않겠습니다. 오늘은 그 앞에 있는 것들을 적읍시다."
리안은 태블릿이 아니라 종이를 꺼냈다. 세로로 세 칸. 해도 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아직 모르는 것.
은호는 자신의 리밋을 이미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리안은 입으로 다시 말하게 했다. 목소리는 건조했다. 채찍, 케인, 패들, 플로거. 클립과 클램프. 로프. 구강. 삽입. 얼음. 왁스는 가능하나 등 아래로는 사양. 바늘은 아직 모름. 언어적 굴욕은 몸과 수행에 한정. 인격과 직업을 건드리면 빨강. 그는 말을 마친 뒤 물을 마셨다.
리안이 적으며 물었다.
"사정 통제는."
"가능합니다. 여러 차례 거부당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선호." 그녀가 그 단어를 반복했다. "선호와 필요는 다릅니다. 거부당하는 게 흥분인가, 거부당해야 버틸 수 있는 구조인가."
은호는 잠시 침묵했다.
"둘 다입니다. 구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구분합시다. 흥분은 초록, 구조는 노랑으로 표시하세요. 내가 사정을 막을 때마다 속으로 색깔을 고르면 됩니다. 말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당신이 알고 있으세요."
그녀는 자신의 리밋도 읽었다. 상대가 의식을 잃을 정도의 충격, 상대가 점수를 부풀리거나 낮추며 자신을 조종하려 할 때, 사후 케어를 거부한 채로 바로 귀가하는 것. 은호는 마지막 항목에서 손가락을 테이블에 고정했다.
"사후 케어를 길게 하는 편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이가 아니라 존재를 리밋에 넣었습니다. 담요와 물, 십 분. 그 십 분을 건너뛰면 다음 세션은 없습니다."
협상은 온도가 있었다. 차갑지 않았고, 다정하지도 않았다. 정확한 온도. 은호는 그 정확함이 통증보다 먼저 몸을 조이는 것을 느꼈다.
합의가 끝나자 리안은 종이를 사진으로 찍어 양쪽 메일에 넣었다. 그리고 물었다.
"오늘 세션을 할까요. 안 해도 됩니다. 협상만으로도 점수를 매기고 싶다면, 그것도 기록하세요."
은호는 가방 속의 수첩을 생각했다. 협상에 점수를 주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점수는 살이 맞을 때만 발생했다. 그러나 지금은 갈비뼈 아래가 이미 긴장되어 있었다.
"합니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벤치. 배 깔고. 오늘은 플로거만. 삽입은 없습니다. 손은 사용합니다."
가죽 스트랩이 은호의 손목과 발목를 벤치에 고정했다. 가슴이 차가운 가죽 면에 눌렸다. 리안은 그의 엉덩이와 등, 허벅지를 손으로 먼저 쓸었다. 워밍이 아니라 지도 확인에 가까웠다. 어디가 아직 지난 자국을 가졌는지, 어디가 비어 있는지.
플로거의 첫 타격은 넓었다. 등이 한꺼번에 달아올랐다. 리안은 박자를 일정하게 가져가다가, 은호의 숨이 그 박자에 맞춰지자 박자를 부러뜨렸다. 느닷없는 한 대, 긴 침묵, 같은 자리에 겹친 세 대. 은호는 세고 싶은 충동을 목구멍에 가두었다. 대신 리안이 시킨 대로 사정 통제의 색깔을 골랐다.
그녀의 손이 밑으로 들어와 그의 페니스를 벤치 아래로 빼내 쥐었다. 플로거가 엉덩이를 칠 때마다 손이 함께 조여졌다. 은호의 허리가 들썩였다. 사정이 가까워지자 리안은 귀두를 손가락으로 집어 멈추게 했다. 통증과 쾌감이 같은 줄에서 꼬였다.
은호는 속으로 노랑을 골랐다. 이것은 흥분만이 아니었다. 막히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구조였다.
리안은 그 멈춤을 세 번 반복했다. 네 번째에 은호가 짧게 신음했다.
"노랑."
손이 즉시 떠났다. 플로거는 등 위쪽, 덜 예민한 자리로 옮겼다. 강도는 유지하되 위치만 바꿨다. 은호는 그 전환을 감각으로 알아차렸다. 세이프워드가 벌이 아니라 설계 변경으로 처리되는 순간이었다.
십여 분 더. 등은 균일한 열로 덮였고, 엉덩이는 박동했다. 리안은 스트랩을 풀고 은호를 일으켜 앉혔다. 담요. 물. 그녀는 타이머를 꺼내지 않고 그냥 십 분을 지켰다. 말이 없었다. 은호의 등이 담요 안에서 식는 속도만 방에 존재했다.
옷을 입을 때 리안이 말했다.
"오늘 점수는 내일 적으세요. 지금은 적지 말 것."
은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유는."
"적는 손이 너무 빠르면, 왜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여덟 시간을 주세요."
집 현관에 도착해서도 은호는 수첩을 열지 않았다. 허벅지가 아니라 등 쪽이 욱신거렸다. 그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에 8과 6과 7을 번갈아 띄워 보았다. 숫자가 고정되지 않았다. 여덟 시간이 지나 새벽이 되었을 때, 그는 수첩을 열고 적었다.
날짜. 플로거, 손, 사정 통제. 6점.
그리고 처음으로, 지웠던 버릇을 아주 작게 되살렸다. 점수 옆, 연한 글씨로.
『막힌 것이 맞아서.』
펜을 내려놓은 뒤 그는 그 문장을 검지로 가렸다. 리안이 물을 것 같았다. 왜 6점이냐고. 은호는 그 질문이 오는 방향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알고 있다는 사실이 통증과 별개의 긴장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