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게 하는 일
정확하지 않은 통증은 타격이 아니었다.
은호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을 때 리안은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도구는 테이블 위에 나와 있지 않았다. 그는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리안은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옷 벗고 가운데 서 있어요. 손 머리 위. 말할 필요 없습니다."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룸의 벽시계는 떼어져 있었다. 은호는 자신의 호흡으로 분을 가늠했다. 오 분. 십 분. 발바닥이 매트의 냉기를 통과해 저려 오기 시작했다. 팔이 무거워졌다. 리안은 책을 읽었다. 정말로 읽는 것인지, 읽는 시늉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발기가 왔다. 이유 없는 발기. 기다림이 피부를 얇게 만들었고, 얇아진 피부 아래로 피가 몰렸다. 리안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내려오면 처음부터입니다."
은호는 팔을 내리지 않았다. 어깨가 떨렸다. 리안이 일어선 것은 한참 뒤였다. 그녀는 그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땀을 확인하고, 젖꼭지를 집게손가락과 엄지로 비틀었다. 짧고 정확한 통증. 그러나 곧 손을 떼고 다시 의자로 돌아갔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다시."
기다림이 재개됐다. 은호는 처음으로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시간에 들어갔다는 생각을 했다. 타격은 시작과 끝이 있다. 기다림은 칸이 없다. 칸이 없으면 수첩이 무력해진다. 그 무력함이 허벅지 안쪽을 따라 올라와 고환을 조였다.
리안이 두 번째로 다가왔을 때, 그녀는 얼음조각을 그의 귀두에 올렸다. 은호가 숨을 들이켰다. 얼음이 녹아 방울이 되어 음낭을 타고 내려갔다. 그녀는 녹을 때까지 붙들고 있다가, 녹은 물로 그의 항문을 적시고 손가락 하나를 넣었다. 차가운 침입. 전립선을 찾기도 전에 손가락은 빠졌다.
"아직."
은호는 팔이 내려가는 것을 이빨로 막듯 버텼다. 시야가 좁아졌다. 리안이 세 번째로 왔을 때 그녀는 그의 입술에 물을 적셔 주고, 물었다.
"색깔."
"초록. 노랑 근처."
"어디가 노랑."
"어깨. 그리고... 시간."
리안은 그의 팔을 내려 주었다. 혈액이 돌아오며 바늘이 쏟아지는 통증이 손목에서 터졌다. 그녀는 그 통증을 방해하지 않았다. 은호가 신음하는 동안, 그녀는 그의 페니스를 뿌리까지 삼켰다. 갑작스러운 온기와 압력. 은호의 손이 허공에서 그녀의 머리를 찾다가 멈추었다. 만져도 되는지 합의된 바가 그날은 없었다. 그는 주먹을 쥐고 버텼다. 리안은 코를 그의 치골에 붙인 채로 목을 조여 삼켰다가, 귀두만 남겨 두고 혀로 구멍을 찔렀다. 동시에 차가운 손가락이 다시 항문에 들어왔다. 온도와 방향이 어긋난 두 자극.
은호가 사정하기 직전, 리안은 입을 떼고 손가락을 멈췄다.
기다림이 네 번째로 시작됐다. 지금은 서 있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손은 등 뒤, 페니스는 공중에 버려진 채. 리안은 다시 책을 펼쳤다. 은호의 귀두가 공기에 식으며 욱신거렸다. 사정이 목구멍까지 왔다가 닫힌 상태. 그 닫힘이 채찍보다 오래갔다.
"왜 기다리는지 말하지 않겠습니다." 리안이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이유는 당신이 만드세요. 내가 준 통증은 얼음과 중단뿐입니다. 나머진 당신 안에서 발생합니다."
은호는 그 문장을 분석했다. 분석하는 동안에도 발기는 줄지 않았다. 자존심과 복종과 공포가 한 줄로 엮였다. 리안이 책을 덮고 다가와, 이번에는 끝까지 빨고 손가락으로 전립선을 눌렀다. 사정이 그녀의 혀 위를 쳤다. 은호는 무릎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고, 리안이 어깨를 받아 매트에 눕혔다.
담요가 덮였다. 물이 왔다. 십 분이 아니라 십오 분. 리안이 시간을 늘린 이유를 은호는 묻지 않았다. 어깨가 경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의 수첩.
날짜. 얼음, 대기, 구강, 중단.
그는 오래 빈칸을 보다가 적었다. 6점.
이유는 바로 나오지 않았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한 줄을 보탰다.
『맞은 것보다, 맞을지도 모른다는 쪽이 컸다.』
적고 나니 리안의 문자가 생각났다. 정확하지 않은 통증. 은호는 허공을 보았다.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대상을 조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조준점이 살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수첩을 덮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다. 꿈에서 누군가 물었다. 왜 6점이냐고. 은호는 꿈속에서도 숫자를 고쳐 쓰고 있었다. 5와 7 사이를 지우개로 문지르며, 칸이 찢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