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어

두 번째 만남은 비가 오는 밤이었다.

예린은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우산을 털었다. 물기가 현관 매트에 점점이 떨어졌다. 도현이 문을 열었을 때 그의 머리칼도 조금 젖어 있었다. 외출을 했다 막 돌아온 기색. 그는 예린의 우산을 받아 세우고, 수건을 건넸다.

"머리."

예린은 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신발을 벗었다. 오늘은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예감이 있었다. 지난번에 그녀가 먼저 다음을 원한다고 보냈으니까. 메시지는 짧았다. 다시 가고 싶어요. 그 문장을 보내놓고 예린은 한 시간 동안 전송 취소를 찾았다. 카카오톡에는 그런 버튼이 없었다.

거실 조명은 저번보다 한 단계 더 낮았다. 도현은 예린에게 소파가 아니라 방석을 가리켰다. 낮은 테이블 앞,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을 자리. 강요의 손짓은 아니었다. 자리가 거기 있을 뿐이었다.

예린은 잠시 서 있다가 무릎을 접었다. 치마가 바닥에 닿았다. 도현은 테이블 맞은편 바닥에 앉지 않고, 소파 끝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높낮이가 이미 규칙이었다.

"오늘은 손을 쓸게요. 말은 내가 정한 대로만. 멈추고 싶으면 레드. 느리고 싶으면 옐로. 기억하죠."

"네."

"네, 뭐."

예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 같으면 네, 주인님. 혹은 더 깎인 대답. 도현의 눈은 그것을 받지 않을 얼굴이었다.

"네, 알겠어요."

"좋아요. 잘했어요."

첫 칭찬이 그렇게 떨어졌다.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예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잘했다는 말이 등 뒤로 손을 넣는 것 같았다. 숨을 곳이 없었다.

도현은 소파에서 내려와 예린의 옆으로 왔다. 무릎을 꿇은 그녀의 뒤에 서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손끝이 귓불을 스쳤다. 차갑지 않은 손.

"옷은 예린 씨가 벗어요. 내가 벗기면 너무 빨라질 테니까."

너무 빨라질 테니까. 그 문장이 이상했다.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배려가 아니라 지배의 방식처럼 들렸다. 예린은 블라우스 단추를 풀었다. 손가락이 미끄러웠다. 브라를 벗고, 치마의 지퍼를 내리고, 스타킹을 허벅지까지 내렸을 때 도현이 말했다.

"거기까지."

스타킹이 허벅지를 조인 채 멈췄다. 예린은 속옷만 입은 상태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가슴이 차가운 공기에 반응해 오그라들었다. 유두가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팔로 가슴을 가리려다, 도현의 시선이 그 동작을 이미 읽고 있음을 알고 팔을 내렸다.

"숨기지 마. 그 모습 그대로가 예뻐."

예린의 숨이 목에서 걸렸다. 예쁘다는 말은 모욕보다 더 직접적으로 살갗을 벗겼다. 창녀라는 말은 역할이었다. 예쁘다는 말은 예린 자신이었다. 그녀는 시선을 바닥의 나무 결에 고정했다.

도현의 손이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쇄골, 가슴의 윗선, 브라를 벗긴 자리의 붉은 자국. 손바닥이 오른쪽 젖가슴을 감쌌다. 엄지가 유두를 문지르지 않고, 그저 덮고 있었다. 온기만.

"여기, 이미 서 있네. 잘 듣고 있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예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으면서도, 세게 쥐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할 거예요. 예린 씨가 레드를 말하기 전까지."

왼쪽 손도 내려와 다른 쪽 가슴을 잡았다. 두 손으로 가슴을 들어 올리듯 받치자, 예린의 등이 저절로 펴졌다. 도현은 그 자세를 한동안 유지했다. 비틀거나 꼬집지 않았다. 유두가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뛰었다. 예린은 치아를 악물었다.

손이 배로 내려갔다. 배꼽 아래, 속옷의 고무줄. 도현은 고무줄을 당기지 않고 손바닥을 그 위에 얹었다. 면 사이로 열이 전해졌다. 예린은 이미 젖어 있었다. 지난번 현관 이후, 이 집의 공기만으로도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 같았다.

"여기."

도현이 속옷 가랑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 확인했다. 미끄러운 감이 천 너머로 묻어났다.

"이렇게 열리는구나. 말이 닿기도 전에. 착하다."

착하다. 그 단어가 들어왔을 때 예린의 허벅지가 떨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붙이려 했다. 도현이 무릎 사이에 손등을 넣어 벌리지 않고, 그저 기다렸다. 예린의 무릎이 스스로 다시 벌어졌다. 그 자발성이 더 수치스러웠다.

속옷을 옆으로 걷자 음부가 드러났다. 도현의 검지가 음순을 따라 천천히 그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클리토리스를 피하지 않으면서도 집중해서 문지르지 않았다. 적시는 동작. 예린의 허리가 앞으로 꺾였다.

"아—"

소리가 새는 것이 싫어서 입술을 깨물었지만, 도현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목소리 내지 말라는 규칙은 없어요. 예쁜 소리야."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 마디. 중지가 질 입구를 밀어 열고, 미끄러운 열 속으로 미끄러졌다. 예린의 안은 이미 충분히 미끄러워 저항이 없었다. 도현은 깊이 넣지 않고, 입구에서 천천히 굽혀 앞벽을 눌렀다. 다른 손의 엄지는 음핵 위에 가볍게 얹혔다. 문지르지 않고 무게만.

예린은 무릎이 벌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허리가 도현의 손목을 향해 다가갔다. 더 넣어달라는 몸짓. 도현은 넣지 않았다. 같은 깊이를 지켰다. 같은 속도로 굽혔다. 엄지의 무게만 조금 더했다.

"잘 받고 있어. 조이지 마. 열어둬. 그래, 그렇게. 잘했어, 예린아."

예린아.

이름이 그 자리에 붙자 예린의 안이 강하게 수축했다. 도현의 손가락이 그 수축을 느꼈는지, 처음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왔다. 두 번째 손가락이 보태졌다. 두 손가락이 벌려지며 내벽을 늘였다. 엄지가 음핵을 작은 원으로 돌기 시작했다. 느린 원. 도망갈 수 없는 원.

"안 돼요— 그 말—"

"어떤 말."

"잘했다는 말. 그거 하지 마세요. 제발."

도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속도도 바꾸지 않았다. 다만 입이 예린의 귀에 가까워졌다.

"잘했어."

예린이 왔다.

절정은 거칠지 않았다. 깊게, 오래, 허벅지부터 배가 당기며 손가락 주위를 물었다. 그녀는 도현의 팔에 이마를 대고 신음 소리를 삼켰다. 눈물이 났는지 윤활인지, 얼굴이 젖었다. 도현은 경련이 잦아들 때까지 손가락을 빼지 않았다. 안을 계속 천천히 쓰다듬으며, 같은 문장을 한 번 더 말했다.

"잘했어."

예린은 그 말에 두 번째 파도가 오는 것을 느꼈다. 원하지 않았다. 몸이 원했다. 그녀는 도현의 손목을 쥐고 밀어내려 했다. 손이 떨려서 밀어내는 힘이 되지 않았다.

도현이 손가락을 빼자 질액이 허벅지를 타고 내려갔다. 스타킹 끝자락이 젖었다. 예린은 바닥에 손을 짚고 헐떡였다. 도현은 그 손을 잡아 다시 무릎 위로 올려놓았다.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게.

"오늘은 여기까지."

예린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다.

"왜요. 하시잖아요. 넣으시잖아요."

도현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았다. 미끄러운 것이 빛났다. 그는 그 손가락을 예린의 입술에 대지 않았다. 휴지로 닦았다. 그 절제가 더 지배적이었다.

"원하면 다음에요. 오늘은 말을 받는 것만. 예린 씨가 잘했다는 말에 이만큼 열렸다는 걸, 몸으로 기억하게."

예린은 웃지 못했다. 속옷을 제자리에 끌어올리고 옷을 주워 입는 동안, 귓가의 잘했어가 반복 재생되었다. 전 파트너의 창녀라는 말은 밤이 지나면 역할과 함께 벗겨졌다. 도현의 칭찬은 옷을 입어도 안에 남아 있었다.

현관에서 우산을 받아 들 때, 도현이 다시 말했다. 낮게, 문 너머로 새어나가지 않을 만큼만.

"비 맞고 온 것도. 무릎 꿇고 버틴 것도. 다 잘했어."

예린은 대답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계단을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비에 섞여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게 더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