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노예

그다음 토요일. 노트는 직장 쪽에서 열린다. 집 안의 일을 받은 다음의 빈칸. 빈칸이 바깥을 향한다. 바깥을 향하는 문장을 목줄 찬 입으로 쓰는 낮이다.

나연이 먼저 뼈대를 말한다. 말하는 자세가 회의실에 가깝다. 가까운 자세를 그가 막지 않는다.

"근무 중의 저는 변호사입니다. 유신 로펌 기업자문. 그 방에서 주인님의 업무 지시는 없습니다. 사건 전략, 문장, 회의 시간. 그 목록은 제 전문입니다. 전문을 넘기면 의뢰인이 다칩니다. 의뢰인이 다치면 이 목줄이 바깥에서 더러워집니다."

강우가 연필 끝을 노트에 댄다. 대지 않고 듣는다. 듣는 동안 고개가 한 번 끄덕인다.

"받아. 근무 중 업무 지시 없음. 적어."

나연이 적는다. 적는 문장이 빠르다. 빠른 문장 다음에 그녀가 보고 의무를 꺼낸다. 꺼내는 것이 바치는 쪽에 가깝다.

"퇴근 전에 한 통. 밥, 컨디션, 귀가 시간. 그 세 개. 세 개면 충분합니다. 그 이상은 제가 로펌 안에서 주인님을 찾게 됩니다. 찾는 순간 문장이 흔들립니다."

"한 통. 세 개. 그걸로 해. 답은 내가 짧게 해. 길게 하면 네가 회의 끝나고도 휴대폰을 못 놓아."

속옷. 지난주 조항의 연장이 근무 중에도 가능하다는 쪽이다. 가능한 것과 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 강우가 그 다름을 먼저 가른다.

"속옷은 내가 정할 수 있어. 정하는 날이 있고 안 정하는 날이 있고. 진동이랑 원격은 재판 날, 미팅 날 금지. 네가 달력을 전날 보여 줘. 내가 그 위에 선을 그을게."

"콜링은." 나연이 묻는다. 묻는 단어가 이 집의 단어다. 목을 당기는 일. 근무 중의 당김.

"근무 중 금지. 내가 하고 싶어져도 안 해. 하고 싶어지는 것과 하는 것은 달라. 그 다름이 이 조항이야."

나연은 적는다. 적고 나서 한 줄을 비워 둔다. 빈줄이 대칭을 위한 자리처럼 보인다. 보이는 자리를 그녀가 먼저 메우려 한다.

"주인님 사무소도." 그녀가 말한다. "현장 있는 날. 위험한 날. 제가 호출하지 않습니다. 한 통도. 급하면 문자만 남기고 기다립니다. 기다리라는 지시를 미리 받겠습니다."

강우의 연필이 멈춘다. 멈추는 것이 동의가 아니다. 무게가 다른 방향으로 앉는다.

"그건 대칭이 아니야."

"대칭이 필요합니까. 저는 노예인데."

말이 떨어지자 식탁이 얇아진다. 얇아진 공기 속에서 강우의 턱이 굳는다. 굳는 것이 오 년 동안 드물다. 드문 굳음이 화에 가깝다. 가깝되 소리로 터지지 않는다. 터지지 않는 화가 더 정확하다.

그가 의자를 밀고 일어선다. 일어나는 소리가 크다. 큰 소리로 창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돌아오는 동안 나연은 무릎을 모은다. 모으는 것이 겁이다. 겁이 아이를 만들지 않게,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등을 곧게 둔다.

"다시 말해." 강우가 말한다. 말이 짧다. "노예니까 대칭이 필요 없다."

"…주인의 일과 노예의 일이 같은 무게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맞추면 주인님이 편하실 것 같아서."

"편해지지 않아." 그가 식탁을 한 번 짚는다. 짚는 손이 세지 않다. 세지 않은 손이 나무를 확인한다. "그건 대칭이 아니야. 네가 내 일을 존중하는 거야. 현장은 거푸집이야. 보 높이야. 사람이 떨어져 죽어. 그날에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도면을 놓쳐. 놓는 순간 누가 다쳐. 다치는 사람이 네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그 사람을 네가 존중하는 거지. 나를 낮추는 게 아니야."

나연의 입이 마른다. 마른 입을 열기 전에 그가 한 문장을 더 놓는다.

"소유자가 노동하는 사람임을 잊지 마라. 나는 너를 메는 사람이야. 메는 사람도 일을 해. 일을 지우는 소유는 내가 안 해. 네가 노예니까 내가 무제한이 되는 그림, 그 그림 싫어. 그 그림이 너를 아이로 만드는 그림이랑 같은 그림이야."

나연은 눈을 감는다. 감은 눈 뒤로 지난주가 온다. 아이는 결정권이 없다. 너에게는 빨강이 있다. 같은 남자가 오늘은 자기 노동을 가리킨다. 가리키는 손이 목줄을 잠그는 손과 같다. 같은 손이 현장에서 하중을 계산한다. 계산하는 사람을 무제한으로 만들면, 무제한이 무너진다. 무너지면 그녀가 다친다. 그 계산을 수요일 테이블에서 이미 들었다. 듣고도 오늘 그녀는 대칭을 바치려 했다. 바치는 것이 과한 드림이었다. 과한 드림이 그를 지우는 드림이었다.

"잘못 바쳤습니다." 나연이 말한다. 말하다가 문장을 고친다. "대칭이 아니라 존중으로 다시 쓰겠습니다. 현장 위험일의 호출 금지는 저를 낮추는 조항이 아닙니다. 주인님의 일을 이 계약이 밟지 않게 하는 조항입니다."

강우가 다시 앉는다. 앉는 무게가 아직 단단하다. 단단한 채로 그는 그녀의 고친 문장을 듣는다. 듣고 연필을 민다.

"그 문장으로 써. 네가 써. 내가 받아."

나연이 적는다. 글씨가 이번 주 중 가장 또렷하다. 또렷한 글씨 아래로 그녀의 귀가 뜨겁다. 뜨거운 것이 혼남이 아니다. 지워질 뻔한 사람을 다시 본 열이다.

조항이 쌓인다. 근무 중 업무 지시 없음. 퇴근 전 한 통. 속옷 지정 가능, 재판과 미팅 날의 원격 금지. 콜링 근무 중 금지. 현장 위험일의 호출 금지 — 존중 조항. 강우의 사무소 세 명, 그의 선이 모든 끝에 서명된다는 사실. 그 사실을 계약이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문장.

적고 나서 나연은 펜을 내려놓는다. 손가락이 떨린다. 떨림을 숨기지 않는다.

"화가 나셨습니다."

"났지. 너한테가 아니야. 그 그림한테. 나를 일 없는 주인으로 만드는 그림. 그 그림이 너를 삼켜. 삼키면 구십 일이 빈 집이야."

"앞으로는 그 그림으로 바치지 않겠습니다."

"바치지 마. 바치면 내가 또 일어설 거야. 일어서는 게 벌이 아니야. 선을 다시 그리는 거야."

나연은 끄덕인다. 끄덕임이 목줄을 작게 움직인다. 움직이는 은 고리가 목 앞에서 빛을 받는다. 받는 빛 아래서 그녀는 이상하게 안전하다. 안전이 화가 난 주인에게서 온다. 난 화가 그녀를 지우지 않았다. 지우려던 쪽은 그녀의 과한 드림이었다. 과한 드림을 그가 거절한 것이 오늘의 소유다.

저녁이 가깝다. 노트를 덮지 않는다. 덮지 않은 채로 그가 차를 내린다. 핸드드립. 분량을 재고, 시간을 재고, 선을 지킨다. 지키는 사람이 현장을 지키는 사람과 같다. 같은 사람이 컵을 그녀의 손에 쥐여 준다. 쥐여 주는 것이 먹이는 것과 다르다. 다른 높이다. 오늘의 높이가 노동하는 소유자의 높이다.

"현장 있는 날은 내가 미리 말해 줄게." 강우가 컵을 돌린다. "네가 추측하지 않게. 추측하면 네가 또 나를 지우려 해."

"네, 주인님. 추측하지 않겠습니다. 듣겠습니다."

나연은 차를 마신다. 마시는 목이 목줄 아래서 움직인다. 움직이는 목 안으로 한 통의 문자가 미리 지나간다. 밥. 컨디션. 귀가 시간. 세 개. 세 개가 로펌과 이 집을 잇는 얇은 선이다. 얇은 선이 충분하다. 충분 위로 진동을 올리지 않기로 한 날이 있다. 올리지 않는 날이 변호사를 살린다. 살린 변호사가 밤에 무릎을 꿇는다. 그 순서가 출근하는 노예의 순서다.

순서 안에서 그는 일한다. 성수동의 보 높이, 덕트, 떨어진 사람. 그 목록을 계약이 밟지 않기로 했다. 밟지 않기로 한 문장이 그의 화를 받아 적었다. 받은 화가 벌이 아니었다. 선이었다. 선을 다시 그리는 사람이 목줄을 잠그는 사람과 같다는 것을, 나연은 차의 온도로 다시 안다. 뜨거운 차는 불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차다. 밥이 아니다. 밥이 아닌 열이 목을 지나며 과한 드림의 자리를 비운다. 비운 자리에 존중이 앉는다. 앉은 존중이 노예의 반대가 아니다. 노예를 사람 곁에 남겨 두는 방식이다. 사람 곁의 노예가 출근한다. 출근하는 동안 그는 도면의 끝에 서명한다. 서명하는 손이 지치지 않게 하는 일이, 이 목줄의 다른 얼굴이다.

강우가 그녀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얹는다. 무겁지 않다. 있으나 없다. 있는 쪽이 중요하다. 있는 손이 오늘은 조금 더 오래 머문다. 오래 머무는 것이 화 다음의 받침이다.

"너는 잘 썼어. 나는 잘 화났어. 그 둘이 같이 있어야 이 조항이 살아."

"네, 주인님."

나연은 눈을 감는다. 감은 눈 뒤로 성수동의 거푸집이 스친다. 본 적 없는 현장. 보지 않아도 하중이 느껴진다. 느껴지는 하중이 목줄의 무게와 겹친다. 겹친 무게를 메는 사람이 노동하는 사람이다. 노동하는 사람을 잊지 않기로 한 오후가, 노트 한 면을 채운 채로 식탁 위에 남아 있다.

남는 자리는 대칭이 아니다. 존중이다. 존중 위에 소유가 앉는다. 앉은 소유가 구십 일을 빈 집이 아니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그가 지치지 않아야 한다. 지치지 않으려면 그녀가 그를 무제한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 문장을 나연은 목줄 안쪽에 밀어 넣는다. 밀어 넣은 문장이 다음 주중에도 남을 것이다. 남는 것이 오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