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문서

토요일 낮. 목줄이 목에 있다. 금요일 여덟 시에 현관에서 채운 것이다. 채운 다음의 밤은 짧았다. 내려놓는 밤. 오늘은 가져가는 낮이 아니라 쓰는 낮이다.

식탁에 노트가 펼쳐져 있다. 흰 속지. 제목을 그가 먼저 쓴다. 연필. 글씨가 크다.

전면 권력교환 계약.

나연은 식탁 옆에 무릎 꿇고 있지 않다. 의자에 앉아 있다. 목줄은 찬 채로. 찬 채로 눈이 글자를 본다. 보는 눈이 변호사의 눈이다. 금요일에 끄지 않기로 한 눈이 토요일에 일을 한다.

"정의부터." 강우가 말한다. "스물넷 곱하기 일곱이 뭔지. 이 집에서."

나연이 펜을 받는다. 받는 손이 잠깐 머뭇거린다. 머뭇거림을 그가 기다린다. 기다림이 허락이다. 그녀는 쓰기 시작한다. 문장이 짧다. 짧은 문장이 그의 말을 옮긴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을 조항으로 만든 것이다.

본 계약에서 전면이라 함은, 당사자 나연이 당사자 강우의 거주지 안에서 그의 결정을 최종으로 따름을 뜻한다. 최종 결정권자는 강우이다. 다만 본 계약에 정한 정지 및 해지 권리는 그 최종에 앞선다.

강우가 읽는다. 읽는 동안 나연은 그의 입을 보지 않는다. 노트만 본다.

"거주지 안." 그가 말한다. "밖은 아직 빈칸이야. 괜찮아. 빈칸을 지금 채우지 마."

"네, 주인님."

호칭이 조항 옆에 놓인다. 놓이는 자리가 어색하지 않다. 어색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설계다. 목줄이 있는 입으로 문장을 다루는 일. 다루는 능력이 복종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이 테이블이 먼저 증명해야 한다.

시범 기간. 구십 일. 개시일은 서명일. 서명일은 아직 비워 둔다. 비워 두는 것이 수요일의 약속이다. 써도 서명이 아니다.

해지. 나연이 이 조항 앞에서 오래 펜을 굴린다. 굴리다가 쓴다.

어느 일방이 빨강을 말하면 본 계약은 즉시 정지한다. 정지 후 당사자는 종전 주말 체제로 복귀할 수 있다. 주말 체제라 함은 금요일 스무 시부터 일요일 스무 시까지의 소유를 뜻한다. 빨강은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강우의 손가락이 그 마지막 문장 위에 머문다.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네가 넣었어."

"넣지 않으면 빨강이 변론이 됩니다. 변론이면 늦습니다. 세이프워드는 변론이 아니어야 합니다, 주인님."

그가 짧게 숨을 내쉰다. 웃음에 가까운 숨.

"그래. 그 문장 그대로. 고치지 마."

나연의 귓불이 뜨겁다. 뜨거운 것이 칭찬의 열이다. 칭찬이 패들보다 깊게 들어온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안다. 알면서도 오늘은 그 깊이를 조항 옆에 놓아 둔다. 놓아 두는 것이 일이다.

오후가 길다. 정의, 범위, 기간, 해지. 뼈대만. 가사와 직장과 돈은 빈칸으로 남긴다. 빈칸이 많은 문서가 정직하다. 많은 것을 한 오후에 채우면 채운 것이 동의가 아니라 도망이다.

나연이 한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쓴다. 당사자는 상호, 를 지우고 나연과 강우의 이름을 올린다. 이름이 있는 계약이 익명보다 무겁다. 무거운 이름을 그가 막지 않는다.

"너는 지금 변호사야." 강우가 말한다. "목줄 찬 변호사. 그 두 개가 싸우면 안 돼. 싸우게 만드는 문장은 내가 안 받아."

"싸우지 않습니다. 문장을 다듬는 일이 드리는 일의 일부입니다. 대충 쓰면 나중에 제가 구멍으로 도망갑니다."

"그래. 구멍 만들지 마. 너는 구멍을 보는 사람이니까."

나연은 펜을 내려놓는다. 손가락이 잉크 냄새를 머금고 있다. 머금은 손을 무릎 위에 포갠다. 엄지는 안쪽으로. 고개는 숙이지 않는다. 숙이지 않아도 되는 테이블이다. 숙이지 않는 고개 위에 목줄의 은 고리가 작다.

저녁이 온다. 그가 밥을 먹인다. 무릎 꿇린 채로, 그의 손에서. 낮의 의자가 저녁의 무릎으로 바뀐다.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바뀜이 오 년이다. 밥이 뜨거우면 불라고 했고, 그녀는 오늘도 불지 않는다. 다만 한 번은 입을 열어 식히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을 그가 본다.

"배웠네."

"수요일에 배운 것입니다. 무너질 수 있어야 한다고. 불지 않는 것도 무너지지 않는 척입니다."

강우가 숟가락을 멈춘다. 멈춘 채로 그녀의 눈을 본다.

"그래. 다음엔 불어."

"네, 주인님."

식사가 끝난다. 설거지는 그가 한다. 하는 동안 나연은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노트를 본다. 식탁 위의 흰 속지. 전면 권력교환 계약. 그 글자 아래에 자기 문장이 있다. 자기 문장이 있는 문서를 보며 그녀는 젖는다. 보는 것만으로. 보는 것이 일이었는데 일이 몸으로 내려온다. 내려오는 것을 숨기지 못한다. 허벅지가 붙었다가 떨어진다.

강우가 물기를 닦고 돌아온다. 돌아온 눈이 그녀의 무릎 사이를 본다. 본다, 지적하지 않는다. 지적 대신 손바닥을 내민다.

"일어서. 식탁."

나연이 일어선다. 식탁 가장자리에 엉덩이가 닿는다. 낮에 펜을 굴리던 자리. 노트를 그가 한쪽으로 민다. 밀되 덮지 않는다. 덮지 않은 문서가 열려 있는 동안 몸이 그 옆에 눕는다.

"누워. 등. 목줄은 그대로."

등이 나무에 닿는다. 나무가 차갑다. 차가운 위에 목줄의 고리가 작게 소리를 낸다. 은과 나무. 낮의 문장이 아직 마르지 않은 종이 냄새가 옆에서 난다.

강우가 그녀의 무릎을 벌린다. 벌리는 손이 도면을 펼치는 손과 같다. 선을 확인하는 손. 손가락이 안쪽을 지나가자 소리가 난다. 미끄러운 소리. 낮에 조항을 다듬던 입에서 숨이 새어 나온다.

"이거." 그의 손가락이 한 칸 들어간다. "쓰면서 이렇게 돼 있었지. 문장 고칠 때."

"…네."

"네, 뭐."

"네, 쓰면서 젖어 있었습니다, 주인님."

그 문장을 말하는 동안 얼굴이 뜨겁다. 뜨거운 얼굴이 천장 등을 본다. 등이 하얗다. 하얀 아래서 손가락이 두 개가 된다. 구부린다. 나연의 허리가 식탁에서 살짝 뜬다. 뜨는 허리를 그의 다른 손이 눌러 내린다. 누르는 자리가 아랫배다. 아랫배를 누르면 안이 더 잡힌다.

"구멍만 내주는 거 아니야. 문장 쓰던 입으로 소리 내. 삼키지 마."

그녀는 낸다. 짧은 신음. 신음이 조항의 리듬을 깨뜨린다. 깨뜨리는 것이 오늘의 두 번째 일이다. 첫 번째는 쓰기. 두 번째는 쓴 입으로 내주기.

손가락이 빠지고 그가 붙는다. 바지만 내렸다. 셔츠는 그대로다. 낮에 연필을 쥐던 차림으로 넣는다. 들어가는 순간 나연은 목을 젖힌다. 목줄이 식탁 가장자리에 걸린다. 걸리는 길이만큼 고개가 멈춘다. 멈추는 것이 설계다.

가득 찬다. 오 년의 몸이 이 굵기를 안다. 알아도 식탁 위에서는 처음이다. 처음인 자리가 문서를 더 가깝게 만든다. 머리가 돌아가면 흰 속지가 보인다. 전면. 최종 결정권자. 빨강은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문장들이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린다.

"받아. 조항 쓰던 년아."

"받습니다—"

말이 끊긴다. 끊긴 자리에 깊이가 들어온다. 깊이가 속도보다 먼저다. 식탁이 작게 운다. 나무의 소리. 나무 위에 그녀의 어깨날이 열린다. 열리는 동안 그가 목줄 고리를 한 번 잡아 당긴다. 가벼운 당김. 당김이 척추를 식탁에 붙인다.

나연의 손이 식탁 모서리를 쥔다. 쥐는 손에 잉크가 조금 남아 있다. 남은 잉크가 나무에 묻는다. 문장을 다루던 손이 지금은 다만 붙잡는다. 붙잡는 것이 복종이다.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놓아지는 것이다.

"싸지 마. 아직."

"네—"

참는 일이 오 년의 훈련이다. 참는 동안 안이 그를 민다. 미는 것을 그가 느낀다. 느낀 숨이 짧아진다. 짧아진 숨이 그녀의 귓불에 닿는다.

"누가 결정해."

"주인님이 결정합니다."

"뭐를."

"저 전부. 싸는 것도. 문장도."

문장도, 라는 두 글자가 거짓말이다. 낮에 그는 문장을 고치는 손을 존중했다. 존중한 것을 알면서 그녀는 이 문장을 바친다. 바치는 것과 낮의 다듬음이 싸우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 두 개가 식탁 위에서 한 몸이 된다.

강우가 속도를 올린다. 올리는 깊이가 아랫배를 누른다. 누를 때마다 나연의 입에서 낮의 언어가 무너진다. 조항이 아니고 신음이다. 신음이 길고 낮다. 목줄에 걸린다.

"지금. 내 안에서."

허락이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식탁을 친다. 손바닥이 나무를 친다. 안이 맥을 치고, 허벅지가 그의 허리에 붙고, 눈이 잠깐 접힌다. 접힌 눈 뒤로 흰 속지가 남는다. 문서가 열려 있는 동안 몸이 열린다. 열리는 두 개가 같은 드림이다.

그가 그 안에 자신의 것을 넣는다. 뜨겁다. 채워지는 감각이 쓰여진 문장의 무게와 겹친다. 겹친 채로 그는 빼지 않는다. 안에 둔 채로 그녀의 얼굴을 본다.

"울어."

울음이 이미 나와 있다. 나온 울음을 그가 엄지로 턱 밑에서 받는다. 받는 손이 때리는 손이 아니다. 오늘은 패들이 없었다. 패들 없이 울리는 식탁이 있다. 식탁이 문서의 자리이자 몸의 자리인 것. 그 겹침이 구십 일의 예고다.

빼면 흘러내린다. 허벅지를 타고 나무 위로. 나연은 그것을 막지 않는다. 그는 수건으로 안을 닦고, 식탁을 닦고, 노트의 가장자리가 젖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확인하는 사람이 이 남자다. 문장과 몸을 같은 하중으로 다루는 사람.

물을 떠 온다. 컵을 그녀의 입에 댄다. 목줄이 컵에 살짝 부딪힌다. 작은 소리. 낮에도 났던 소리의 다른 버전이다.

나연은 마신다. 물이 들어가면 문장을 다루던 입이 조금 돌아온다. 조금. 완전히는 아니다. 완전히 돌아오는 것은 아직 이르다. 구십 일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시작된 것은 빈 문서를 같이 채운 오후의 일이다.

강우가 그녀를 일으켜 소파로 데려간다. 무릎이 아니다. 옆이다. 수요일의 옆이 토요일 밤에도 한 자리 남는다. 남는 자리에 목줄이 있다. 있는 목줄 아래로 그의 손바닥이 배에 얹힌다. 배의 숨이 그의 손에서 센다.

"오늘은 뼈대만 썼어. 내일은 안 써. 일요일은 선이야. 가사와 직장과 돈은 다음이야."

"네, 주인님."

나연은 눈을 감는다. 감은 눈 뒤로 흰 속지가 남는다. 전면 권력교환 계약. 그 아래 자기 글씨. 자기 글씨가 있는 채로 몸이 그의 안에 열려 있었던 오후. 열린 것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것을 목줄이 받아 준다.

식탁 위에 노트가 아직 열려 있다. 덮지 않은 문서. 덮지 않는 것이 오늘의 정직이다. 정직한 문서 옆에, 닦인 나무가 미지근하다. 미지근한 나무가 빈 문서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