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의 이름

월요일 오전 아홉 시, 나연은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다.

"삼 조 사 항의 면책 범위가 넓습니다. 상대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정보를 누설해도 우리가 손해배상을 못 묻게 되어 있어요. 이 문장 빼거나, 최소한 고의는 carve-out 해야 합니다."

carve-out. 영어가 먼저 나온다. 월요일의 입이다. 어제 무릎 위에서 주인님을 부르던 입과 같은 입이라는 사실을, 나연은 회의 중간에는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기억하면 문장이 흔들린다.

상대 로펌의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 쓴다. 나연은 그 동작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조항을 넘긴다. 서른넷. 유신 로펌 기업자문팀. 파트너까지는 아직 멀고, 이미 이 방에서는 그녀가 문장을 끝낸다. 끝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중의 일이다. 주말의 일과 정확히 반대다.

회의가 파하면 민우가 복도에서 커피를 내민다. 동기. 유일한 동기. 오 년 동안 나연의 금요일을 묻지 않은 사람.

"주말 잘 보냈어? 또 잠수."

"잘 보냈지."

"한남동 그 사람."

나연은 커피를 마신다. 답하지 않는 것이 답이다. 민우는 웃고 제 사무실로 들어간다. 한남동 그 사람. 강우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문장이 이제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은 것이 오 년이다. 연인이라고 하기엔 많고, 계약이라고 하기엔 적다. 주말의 소유. 닷새의 이름.

오후, 나연은 자기 방에서 계약서 수정본을 고친다. 커서가 깜박인다. 당사자는 상호 합의에 따라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해지 조항. 그녀는 이 문장을 일주일에 몇 번이고 쓴다. 쓰고 나서 자기 목을 만진다. 만지는 버릇은 월요일과 화요일에 심하다. 수요일부터는 손이 잊는다. 목요일부터는 몸이 금요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강우의 월요일은 현장이다. 성수동 근생 건물. 지하 거푸집이 올라가는 주. 안전모를 쓰고 도면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소장과 단면을 놓고 싸운다.

"여기 보 높이 이백이면 설비 덕트가 안 들어갑니다."

"그럼 보를 나눠. 하중은 내가 다시 계산해. 덕트 때문에 층고를 죽이지는 마."

하중. 그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이 단어가 일요일 밤 카펫의 눌린 자리와 겹친다. 겹치는 것을 현장에서는 밀어 둔다. 밀어 두는 것이 월요일의 일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면 직원이 세 명이다. 작은 사무소. 작아서 그가 모든 선의 끝에 서명한다. 서명하는 손이 금요일에 버클을 잠그는 손과 같다. 같다는 생각을 하면 그는 커피를 내린다. 핸드드립. 분량을 재고, 시간을 재고, 선을 지킨다. 선을 지키는 사람이 주말을 설계했다.

화요일 밤, 나연은 합정 오피스텔에서 혼자를 확인한다. 확인하는 의식이 있다. 큰 불을 켜고, 자기 이름으로 배달을 시키고, 텔레비전을 크게 켠다. 나연이라는 사람이 아직 여기에 있다는 증거. 증거는 소리와 불이다. 목요일까지 이 증거를 반복한다. 반복하지 않으면 금요일의 내려놓음이 너무 쉬워진다. 너무 쉬워지는 것이 겁이다.

휴대폰이 울린다. 강우. 주중 통화는 짧다. 오 년의 규칙. 매일 하지 않는다. 수요일 밤 한 번. 오늘은 화요일이다. 이례다.

나연이 받는다.

"지금 바빠."

"아니. 왜. 화요일이잖아."

"현장 끝나서. 그냥."

그냥. 강우의 그냥은 짧다. 짧은 그냥 뒤에 긴 것이 숨어 있을 때, 나연은 그 길이를 묻지 않는다. 주중에는 묻지 않기로 한 것이 오 년의 매너다. 금요일에 무릎을 꿇으면 그때 긴 것이 나온다. 지금은 화요일이다.

"밥은 먹었어?"

"시켰어. 내 이름으로."

"뭐로."

"냉면. 곱배기."

"겨울 지나서도 냉면이냐."

"내 이름으로 시킨 거니까. 내 입맛."

전화 저쪽에서 짧은 숨이 난다. 웃음이다. 나연은 그 웃음이 좋다. 주인의 웃음이 아니라 남자의 웃음. 화요일의 웃음.

"금요일에 와."

"항상 가."

"일찍 와. 일곱 시."

일곱 시. 한 시간 당김. 선이 움직인다. 선이 움직이면 주말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그가 어제 말했다. 어제 말한 사람이 오늘 선을 움직인다.

"왜."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목줄 채우기 전에."

목줄 채우기 전. 그 문장이 나연의 목을 만지게 한다. 오피스텔 불이 너무 밝다. 텔레비전 소리가 갑자기 크다.

"위험한 말이야?"

"위험한 말은 아니야. 무거운 말이야."

나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거운 말. 하중. 그의 단어가 전화선을 타고 합정까지 온다.

"알겠어. 일곱 시."

끊고 나서 냉면이 식어 있다. 나연은 그래도 먹는다. 자기 이름으로 시킨 것이니까. 자기 입맛이니까. 금요일 일곱 시에 무거운 말을 듣기 전에, 화요일의 나연이 나연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수요일, 목요일. 로펌은 평소와 같다. 문장을 고치고, 상대를 밀고, 민우와 점심을 먹는다. 같다는 것이 거짓이다. 목 앞을 만지는 횟수가 늘었다. 회의 중에 한 번, 화장실에서 한 번, 퇴근길에서 한 번. 만질 때마다 금요일의 버클 소리가 미리 들린다.

목요일 밤, 강우는 한남동 식탁에 빈 노트를 펼쳐 둔다. 펼쳐 두고 쓰지 않는다.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쓰면 이미 제안이 되기 때문이다. 제안은 금요일 일곱 시에, 목줄이 아직 훅에 있는 동안, 두 사람의 눈이 같은 높이에 있을 때 해야 한다. 무릎 위의 제안은 제안이 아니다. 명령이 된다. 명령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

그는 노트를 덮는다. 창밖이 어둡다. 카펫의 눌린 자리는 이미 평평해졌다. 평평해진 자리를 보며 그는 하중을 계산한다. 사람 하나의 무게. 사람 하나를 일주일 내내 받는 무게.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안다. 알면서도 집이 너무 크다.

금요일까지 하루. 목줄은 훅에 걸려 있다. 금요일 일곱 시에 그는 그것을 당장 채우지 않을 것이다. 채우기 전에 말해야 한다. 주말이 모자란다고. 닷새의 이름이 아깝다고. 그 말을 하는 순간 오 년의 선이 움직인다.

강우는 손을 씻고 불을 끈다. 선이 움직이는 것을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루지 못하는 밤이 정직하다. 정직한 밤을 건너야 일곱 시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