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을 푸는 시간

일요일 일곱 시 사십 분. 강우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안다. 나연의 어깨가 먼저 변한다. 아주 조금. 아직 무릎은 그대로고 목줄은 그대로인데, 어깨만 월요일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오 년 동안 그는 그 미세한 기억을 봐 왔다.

소파에 앉아 있다. 나연은 그의 발치에 앉아 있다. 앉아 있는 것이지 꿇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요일 저녁의 중간 자세. 머리를 그의 무릎에 기대는 것이 허락된 시간. 텔레비전은 꺼져 있다. 창밖 한남동은 아직 밝다. 봄의 일요일이 길다.

"어디야."

나연이 잠시 대답하지 않는다.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이다. 몸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아직 여기 있습니다. 조금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일찍 나가지 마. 이십 분 남았어."

"네, 주인님."

이십 분. 목줄이 있는 마지막 이십 분. 나연은 그 이십 분을 아낀다. 아끼는 방식이 매번 같다. 말을 줄이고, 그의 무릎 온도를 세고, 목 앞의 고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지 않으려고 한다. 만지면 이미 풀어질 것을 앞질러 만지는 일이 된다. 앞지르는 것은 주중의 버릇이다.

강우의 손이 그녀의 머리 위에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는 이 시간에 항상 말이 더 적어진다. 가져간 것을 돌려주기 직전의 침묵. 돌려주는 사람이 먼저 떠들면 돌려받는 사람이 준비되지 않는다.

일곱 시 오십오 분. 그가 가볍게 무릎을 친다. 나연이 고개를 든다. 든다, 올리지 않는다. 아직은.

강우가 일어선다. 그녀 뒤로 돌아가 목줄의 버클에 손을 올린다. 올리는 손이 금요일 밤의 손과 같다. 방향만 반대다.

잠금이 풀린다. 작고, 건조하고, 일요일 여덟 시의 전부.

가죽이 목에서 미끄러져 그의 손바닥에 고인다. 나연은 목을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라는 말이 있을 때까지.

"이제 움직여도 돼."

그 말이 떨어지자 나연의 목이 스스로 한 바퀴를 그린다. 가볍다. 너무 가볍다. 가벼움이 갑자기 추워진다. 오 년 차에도 이 추위는 줄지 않는다.

강우는 목줄을 침실 문 옆 훅에 건다. 오 년 동안 같은 훅이다. 걸려 있는 목줄이 일요일 밤의 집 안에서 가장 많이 남는 물건이다.

"옷을 입어."

나연은 현관으로 간다. 벤치 왼쪽에 개어 둔 옷. 스타킹, 속옷, 스커트, 블라우스, 코트. 입는 순서는 벗는 순서의 반대가 아니다. 입는 순서는 월요일의 순서다. 속옷이 먼저다. 변호사의 몸이 먼저 돌아온다. 목덜미가 허전한 채로 블라우스 깃이 그 허전함을 가린다.

강우는 돕지 않는다. 입는 일은 돌려주는 일의 마지막이다. 그가 단추를 채우면 아직 그의 것이 된다. 그녀가 직접 채워야 나연이 된다.

여덟 시가 된다. 그가 이름을 부른다.

"나연."

주인님이 아니다. 나연이다. 두 글자. 로펌에서 하루 종일 불리는 그 이름. 이 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이 순간에만 불리는 이름.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본다. 올려 본다. 이제는 올려도 된다.

"강우 씨."

그 호칭이 일요일마다 어색하다. 주말 동안 주인님이던 입에서 씨가 나오는 것. 어색해야 한다. 어색하지 않으면 경계가 무너진다. 경계가 이 오 년을 지탱했다.

"삼십 분만 더 있어도 될까요."

"안 돼. 선은 선이야. 선이 움직이면 주말이 아무것도 아니게 돼."

나연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 물었다. 묻는 것이 나연의 잔여다. 변호사는 이미 아는 것도 한 번 더 확인한다.

현관에서 그가 이마에 입을 맞춘다. 주인의 입이 아니다. 남자의 입이다. 일요일의 입. 오 년 동안 이 입맞춤은 목줄을 푼 뒤에만 존재했다.

나연이 문을 열고 나간다. 센서등이 그녀를 배웅한다. 강우는 문이 닫힐 때까지 현관에 서 있다. 닫히면 왼쪽 벤치가 비어 있다.

지하철에서 나연은 창에 비친 목을 본다. 아무것도 없다. 없는 자리를 손이 찾는다. 금요일 밤 그가 물었던 왜, 가 빈 목 앞에서 다시 열린다. 무릎은 알고 그녀는 모른다고, 그는 그렇게 넘겼다. 넘긴 질문이 지하철 칸의 형광등 아래서 다시 앉는다. 앉은 질문을 그녀는 메일함 뒤로 밀어 넣는다. 밀어 넣는 손이 변호사의 손이다.

휴대폰을 연다. 읽지 않은 메일 열일곱 통. 월요일 오전 아홉 시 내부 미팅. 계약 검토 세 번째 건의 수정본. 세 정거장 뒤에 변호사가 완전히 돌아온다. 두 정거장째에 이미 문장을 고치고 있다. 고치는 동안에도 목덜미가 한 번씩 서늘하다. 서늘한 것이 목줄의 잔여인지, 목줄이 없어서인지는, 합정에 도착할 때까지 구분되지 않는다.

강우는 컵 두 개를 씻는다. 그녀의 것과 자신의 것. 목줄을 훅에서 내려 서랍에 넣지 않는다. 훅에 남겨 둔다. 남겨 두는 것이 금요일을 앞당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남겨 둔다. 남겨 둔 가죽을 보며 그는 왜, 를 다시 굴린다. 굴리는 질문이 그녀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거지가 끝날 때쯤 안다. 네가 왜 무릎을 꿇느냐는 물음은, 내가 왜 그 무릎을 받느냐는 물음과 같은 무게다. 같은 무게를 일요일 밤에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올리면 선이 움직인다.

소파에 앉는다. 카펫 한가운데, 그녀가 무릎 꿇던 자리가 조금 눌려 있다. 봄이라 햇살이 길게 남아 그 눌린 자리를 보여 준다.

일요일 여덟 시부터 금요일 여덟 시까지, 이 집은 너무 크다. 그 문장을 강우는 이 년째 생각하고 있다. 아직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순간 주말이 모자라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주말이 모자란 것을 그녀가 알면, 그녀는 더 주려고 할 것이다. 더 주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은 하중으로 안다.

강우는 그 눌린 자리를 발로 쓸어 평평하게 만들지 않는다. 금요일까지 남겨 둔다. 남겨 두는 일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