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것들

다음 주 청계산은 맑았다. 두 사람은 앞줄과 뒷줄 사이, 예전 그 자리에 다시 나란히 섰다. 물통이 오갔다. 김밥은 우엉과 단무지가 반반이었다. 회원들 앞에서 그 김밥은 아무 일도 아닌 점심이었다. 하산길에야 남우가 말했다.

"커피, 아니 유자차. 과천 말고 다른 데. 사람이 많은 데도 괜찮습니다."

미경이 모자 챙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는 양재 쪽이었다. 창이 작고, 테이블 간격이 좁았다. 남우는 그 좁음이 오히려 좋았다. 숨길 것이 적은 자리. 유자차가 나오기 전에 미경이 먼저 말했다.

"아들이 전화했어요. 주말에 온대요. 냉장고 봐 준다고. 그 아이가 내 냉장고를 보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눈치를 챈 거죠. 누군가 있는 거."

"뭐라고 했습니까."

"아직 아무 말도. 그런데 숨기는 내가 더 이상했어요. 결혼했을 때도 숨기고 살았거든요. 화난 거, 외로운 거, 몸 원하는 거. 다 단정한 옷 안에 넣었죠."

남우는 컵을 감쌌다. 뜨거움이 손금에 배었다.

"딸이 다시 전화했습니다. 사과한다고. 과일 들고 들이닥친 거. 그리고 묻더군요. 그분이 아빠를 좋아하냐. 내가 좋아하냐고 먼저 묻지 않고."

미경이 눈을 들었다.

"뭐라고 했어요."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미경 씨 이름을 처음으로 그 아이에게 말했고요."

그 말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유자 향이 그 문장 주위로 피어올랐다. 미경의 손이 컵 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아직 아들에게 말 못 했어요. 남우 씨가 부럽네요. 아니, 부러운 게 아니라... 겁이 나요."

"무엇이."

"또 사라질까 봐. 사람 안으로. 결혼이 사람을 지우는 거였다는 걸, 삼 년 지나서야 알았어요. 남우 씨 집에 슬리퍼가 생기고, 로프가 선반에 올라가고, 내 손목이 남우 씨 손에 익으면. 나는 또 누군가의 여자가 되고, 엄마와 교사 다음의 세 번째 단정이 될까 봐."

남우는 오래 침묵했다. 산에서의 침묵과 같은 종류였다. 서두르지 않는 숨. 그가 말했다.

"아내를 원하면 이렇게 안 시작합니다. 로프도, 수요일 오후도. 나는 미경 씨를 내 집에 끼워 넣고 싶지 않습니다. 같이 걷고 싶을 뿐입니다. 묶을 때도, 푸는 쪽이 더 중요하고요."

미경의 눈이 붉어졌다. 그녀는 티슈를 집어 눈가만 찍고, 웃었다.

"그거, 삼십 년 전에 배운 거예요? 아니면 지금."

"지금입니다. 삼십 년 전에는 매듭만 배웠습니다. 사람은 못 배웠고."

두 사람은 차를 다 마시지 않고 나왔다. 양재 거리의 은행나무는 이미 여름의 초록이었다. 늦은 봄이 끝을 넘고 있었다. 미경이 남우의 팔꿈치가 아닌 손목을 짚었다. 장갑 없는 손. 맥박이 맞닿았다.

그날 밤 미경의 아들이 왔다. 남우는 집에 있지 않았다. 미경이 원해서였다. 아들은 서른넷, 이마가 넓었다. 냉장고를 열더니 제라늄을 보고 말했다.

"엄마, 꽃 키워요? 예전엔 안 키웠잖아요."

"키워 보려고."

아들은 된장찌개 앞에서 밥을 먹으며 물었다. "남자 있어요." 질문이 밥보다 직설이었다. 미경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있어. 등산 모임에서 만났어. 예순둘. 과천에 살아. 이혼했고, 딸이 있고, 물통을 잘 내밀어."

아들의 젓가락이 멈췄다. 그는 웃지 않았고, 화내지도 않았다. 오래 씹은 뒤에 말했다.

"이름은요."

"김남우."

"아빠랑은 달라요?"

미경이 그 질문을 오래 굴렸다. 달라. 그 말은 너무 크고, 너무 작았다.

"달라. 나를 단정하라고 안 해. 내가 원하는 걸 말해도, 이상한 눈으로 안 봐."

아들은 더 묻지 않았다. 설거지를 돕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소개는 나중에. 엄마가 밥 챙겨 먹는지만 볼게요. 그 사람이 물통을 내미는 사람이면, 일단은."

문이 닫힌 뒤 미경은 제라늄에 물을 주고 남우에게 전화했다.

"말했어요. 이름이랑, 물통이랑."

남우의 숨이 수화기 안에서 짧아졌다가 길어졌다.

"잘했습니다."

"아직 로프는 안 말했죠. 그건 우리 일이니까. 아들도 전부를 알 필요는 없어요. 내가 전부를 숨기지 않으면 되는 거고요."

"오늘은, 와도 됩니까."

미경이 창밖을 보았다. 구름이 모여 있었다. 비 냄새는 아직 멀었다.

"와요. 로프는 꺼내도 되고, 안 꺼내도 되고. 남우 씨 얼굴이 더 급해요."

남우는 한 시간 뒤에 양재에 도착했다. 현관에서 두 사람은 키스를 오래 했다. 이가 부딪치지 않았다. 미경이 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옷 위로. 심장이 손바닥에 닿았다. 남우가 물었다.

"묶을까요."

"오늘은 손으로만. 남우 씨 손으로만 잡아 줘요."

그들은 침대로 갔다. 미경이 남우의 손목을 먼저 쥐고, 자신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남우가 그 자세를 유지한 채 내려와 그녀의 가슴을 물었다. 유두가 혀 위에서 천천히 굳었다. 미경의 허리가 떠올랐다. 남우의 손가락이 들어가자 그녀는 이미 젖어 있었다. 며칠의 공백이 몸을 예민하게 만들어 두었다. 그가 음핵을 문지르며 손목의 힘을 조금 더하자, 미경이 낮게 신음하며 먼저 왔다. 짧은 절정. 이어지는 숨.

남우가 콘돔을 챙기는 동안 미경이 그의 것을 손으로 감쌌다. 단단함 아래의 맥박. 그녀는 그를 입술로 한 번 감싸고 놓아주었다. 삽입은 정면에서, 눈을 뜬 채로 이루어졌다. 남우가 끝까지 넣자 미경의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았다. 움직임은 느렸다. 매 밀침마다 그녀의 손목이 그의 손 안에서 맥박을 나눴다. 남우가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붙였다.

"안 사라집니다. 미경 씨."

"남우 씨도요. 내 안으로 나를 지우지 마요."

"지울 것 없습니다. 여기, 이 숨이 다 미경 씨니까요."

그가 각도를 낮춰 치골로 음핵을 스쳤다. 미경의 안이 조여 왔다. 두 번째 절정이 울음과 함께 왔다. 남우는 그 울음 속에서 따라갔다. 사정하는 동안에도 손목을 놓지 않았다. 놓치지 않는 것과 가두는 것의 차이를, 두 사람의 손이 그 밤에 조용히 합의했다.

나중에 미경이 그의 무릎 파스 자국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다음엔 로프 꺼내요. 비 오면. 비 안 와도."

"서랍에서 선반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

"내 집에도 하나 둬. 등산 로프가 아닌 걸로. 아들이 물으면, 엄마 일이에요, 하면 되니까."

남우가 웃었다. 미경이 그 웃는 입술에 유자 대신 자신의 입을 얹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제라늄 잎을 뒤집었다. 죽은 화분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남은 것은 살아 있는 잎과, 서로의 손목에 남아 있는 손의 온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