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온 오후

첫 번째 금이 간 것은 로프가 아니라 벨소리였다.

토요일이었다. 산행은 취소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총무에게는 무릎이라고 알렸다. 거짓은 반만 거짓이었다. 남우의 무릎은 실제로 전날부터 욱신거렸고, 미경은 그 무릎 위에 앉아 있을 생각이었다.

과천의 침실. 커튼을 내린 오후. 남우는 미경의 두 손목을 등 뒤로 모아 묶고 있었다. 처음 해 보는 방향이었다. 가슴의 선이 등에서 손목으로 이어지자 미경의 어깨가 열렸다. 유두가 이불을 스쳤다. 남우가 그녀의 귓전에 물었다.

"노랑?"

"아직. 조금 더요."

그가 허리를 낮춰 뒤에서 넣을 때, 로프가 손목을 당기며 상체를 살짝 젖혔다. 미경이 신음했다. 각도가 깊었다. 남우의 손이 그녀의 아랫배로 돌아가 음핵을 찾았다. 손가락이 젖은 주름을 벌리자 그녀가 매트리스에 이마를 붙였다. 허리를 칠 때마다 등 뒤의 매듭이 그의 치골에 닿았다. 삼베와 살과 숨.

그때 거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남우의 것. 진동이 나무 탁자를 짧게 두드렸다. 그는 멈추지 않으려 했다. 미경도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 울림, 세 번째. 그리고 잠깐의 침묵 뒤, 다시. 같은 간격. 가족이 거는 방식이었다.

남우가 허리를 멈추고 이마를 그녀의 등에 붙였다.

"빨강입니다. 내가."

그는 매듭을 빠르게 풀었다. 손목이 풀리자 미경이 스스로 몸을 일으켜 담요를 집어 어깨를 가렸다. 남우는 콘돔을 빼지 못한 채로 거실로 나갔다. 화면에는 '딸'이라고 떠 있었다. 네 번째 벨. 그는 받았다.

"아빠. 왜 이렇게 안 받아. 지금 어디야."

"집이다."

"나 지금 과천 거의 다 왔어. 민준이 데리고. 시댁 가는 길에 들르려고. 손주 얼굴 보여 주려고. 냉장고에 뭐 있어? 과일 사 왔는데."

남우의 등 뒤로 침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미경의 시선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목으로 침을 삼켰다.

"지금은... 손님이."

"손님? 아빠 집에 손님이 왜. 아, 등산 모임 분? 그럼 우리가 방해되나. 민준아 잠깐만, 할아버지 집에 손님이시래."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멀리서 섞였다. 남우는 창밖을 보았다. 단지 입구에 이미 익숙한 흰색 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올라온다. 미안하다. 오 분만."

전화를 끊고 침실로 들어갔다. 미경은 이미 속옷을 입고 있었다. 브라의 후크를 혼자 잠그느라 어깨가 떠 있었다. 남우가 다가가 채워 주었다. 손이 차가웠다.

"딸입니다. 손주하고. 몰랐습니다."

"알아요. 나가야죠. 내가."

"뒷문으로 안 됩니다. 엘리베이터뿐입니다."

미경이 바지를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프는 이불 밑에 밀어 넣었다. 삼베 끝이 밖으로 조금 나와, 남우가 발로 밀어 넣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오후의 열기가 아직 허벅지에 남아 있는 채로, 현관으로 가야 했다.

딸은 서른일곱이었다. 얼굴이 남우를 닮았다. 손주 민준은 다섯 살, 과자를 든 채 할아버지 무릎을 찾으려다 낯선 여자를 보고 멈췄다. 미경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등산 모임에서... 박미경입니다. 마침 차가 있어서 들렀어요. 이만 가볼게요."

말이 매끄럽지 않았다. 딸의 시선이 미경의 젖은 듯한 머리칼, 남우의 잠옷 바지, 거실의 컵 두 개 위를 빠르게 지나갔다.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들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희 갑자기 와서. 민준아 인사."

아이가 작게 안녕이라고 했다. 미경이 웃어 주었다. 그 웃음이 산에서의 웃음과 달랐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동안 남우가 우산을 꺼내려다 비가 아닌 것을 알고 멈췄다. 미경이 작게 말했다. "나중에." 문이 닫혔다.

거실에 딸과 손주와 과일 봉지와, 아직 체온이 남은 이불이 남았다. 남우는 잠옷 바지 밑에서 콘돔을 조심스럽게 처리하고, 티셔츠를 입었다. 딸이 과일을 깎으며 물었다.

"아빠, 그분. 모임 분이 맞아요?"

"맞다."

"자주 보세요?"

남우는 민준에게 바나나를 까 주며 대답을 고르느라 늦었다. 딸이 칼을 내려놓았다.

"결혼하셨던 분이에요? 나이대가 비슷해 보여서."

"이혼했다. 나도 그랬고."

"그래서 집 안에서 차 마시고."

그 문장 끝이 날카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우의 귀에 박혔다. 딸은 더 묻지 않았다. 민준이 베란다 유리에 손을 대며 산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저거 산이야?" 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걷는 산이야." 딸이 뒤에서 말했다.

"엄마는 아직 안 만나시죠."

"안 만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만나고."

남우가 손주를 돌아보았다. 아이의 손은 아직 유리에 남아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 년이 지났다. 네 엄마하고 나는 서로에게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어. 그걸 너는 알고 있고."

"알아요. 알아. 그냥... 아빠가 혼자인 줄 알았거든요. 혼자여도 괜찮은 줄. 과일 사 온 게 우습네, 지금 생각하니까."

딸의 눈이 붉어지지 않았다. 대신 바나나 껍질을 너무 길게 벗기고 있었다. 남우는 그 손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한 시간 뒤 그들은 떠났다. 민준이 엘리베이터에서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 또 와." "또 오렴."

문이 닫힌 집에서 남우는 이불 밑의 로프를 꺼내 감았다. 섬유에 미경의 체온은 이미 없었다. 그는 문자를 보냈다. '미안합니다. 도착했습니까.' 답이 십 분 뒤에 왔다. '도착. 괜찮아요. 아이 예뻤어요.' 그 괜찮다가 너무 단정해서, 남우는 전화를 걸었다. 미경이 받았다. 운전 중은 아니었다. 양재 집의 적막이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딸이, 눈치를 챘습니다."

"그러겠죠. 내 얼굴이 모임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민준이에게 할아버지 손님이라 했습니다. 그 말이 싫었습니다."

미경이 잠시 말이 없었다. 남우가 기다렸다. 빗소리는 없었다. 맑은 오후의 침묵만 있었다.

"남우 씨. 우리 이거, 아이들한테는 이상한 일일 수도 있어요. 예순하고 쉰여덟이 낮에 집에 있는 거. 로프는 말할 것도 없고."

"로프는 우리 일입니다."

"우리 일이죠. 그런데 나는 엄마이기도 해요. 아들이 언젠가 이 집에 오면, 선반의 로프를 뭘로 보겠어요. 등산 로프? 그러면 거짓이 되고. 진실을 말하면 내가 그 아이 엄마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고."

남우는 창가에 섰다. 청계산이 맑게 보였다. 능선이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길이 없어 보였다.

"미경 씨 아들에게 말해야 합니까."

"아직은요. 오늘은 그냥... 담요만 덮고 있을게요. 남우 씨도 딸하고 더 이야기해야 할 것 같고."

전화를 끊은 뒤 남우는 선반의 로프를 만졌다. 삼베가 손금을 간질였다. 오후의 발기는 이미 죽어 있었고, 대신 가슴 한가운데가 그냥 무거웠다. 그는 보리차를 끓이다 불을 껐다. 컵이 하나면 충분했다. 그 사실이 사 년의 혼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밤이 되어서야 미경의 문자가 다시 왔다.

'산은 갈게요. 다음 주. 집은, 조금 있다가.'

남우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산은 공개된 능선이고, 집은 매듭의 자리였다. 그녀가 능선만 남기려 하고 있었다. 그는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뒤, 로프를 서랍 깊숙이 넣었다. 선반이 비었다. 빈 선반 위로 늦은 봄의 마지막 빛이 가늘게 남아, 곧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