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의 무게
무승부 다음 경기는 이겼다. 삼십사 대 십오. 시원하게. 재현이 트라이 두 개를 넣었고, 태구는 스크럼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다. 라커룸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규칙은 아직 살아 있어서, 이긴 날의 공기가 둘 사이에 자동으로 흘렀다.
그런데 태구는 재현을 라커에 세우기 전에 물었다.
"오늘, 내가 해도 돼?"
재현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웃었다.
"돼. 물어보니까 더 돼."
그날 밤은 이긴 날답게 태구가 위에서 깊게 밀었지만, 중간에 재현이 "각도 바꿔"라고 했을 때 바로 바꿨다. 사소한 차이였다. 사소해서 더 분명히 느껴졌다.
문제는 그 다음 주 훈련에서 터졌다.
민재가 스크럼 후에 물통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장. 나 하나만 물어보자."
"물어봐."
"너 재현이한테 왜 그렇게 잘해주냐. 라인아웃 콜도 넘기고, 테이프도 감아주고, 원정 방도 같이 쓰고. 다른 신입은 그렇게 안 하잖아."
주변이 잠시 멈췄다. 성호가 헛기침을 했고, 재현은 라커 문을 연 자세 그대로 굳었다. 태구는 주장의 얼굴을 썼다. 평온하고, 약간 짜증 난, 훈련 중의 얼굴.
"저 새끼가 제일 빠르니까. 빠른 애한테 콜 주는 게 이기기 좋더라. 방 배정은 명단 그대로고. 테이프는, 민재 너 손목 내놔 봐. 너도 감아줄까."
라커룸이 웃었다. 민재도 웃었다.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태구는 그 웃음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이라는 걸 알았다.
훈련이 끝난 뒤 감독이 태구를 운동장에 남겼다. 재현은 멀리 골대 옆에 서서 물을 마시며 기다렸다. 숨기는 사람의 거리감이었다.
감독의 목소리는 낮았다.
"태구야. 팀이 네 거인 건 맞는데, 한 명한테만 기울면 나머지가 느껴. 실력 때문이든 아니든."
"알겠습니다."
"재현이 잘해. 너도 잘하고. 나는 사생활 안 물어. 근데 주장은 사생활이 전술처럼 보이는 자리야. 기억해."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장 조명이 노랗게 둘을 비췄다. 감독이 떠난 뒤 재현이 다가왔다.
"뭐래."
"한 명한테 기울지 말래."
"나 때문에?"
"우리 때문에."
차 안에서 재현이 창문을 내렸다. 밤공기가 유니폼 냄새를 밀어냈다.
"형. 내가 윙 그만둘까."
"미친 소리 하지 마."
"아니면 형 주장 내려놓고."
"더 미친 소리고."
재현이 무릎 위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럼 우리 그만둘까."
태구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신호도 아닌 도로 한가운데는 아니었고, 아파트 단지 입구였다. 엔진 소리가 갑자기 커 보였다.
"그 말은 다시 해봐. 진심으로 하는 거야, 화나서 하는 거야."
재현이 한동안 말없이 있다 숨을 내쉬었다.
"화나서. 근데 진심으로 겁은 나. 형이 주장 못하는 거, 내가 원인 되는 거. 그건 싫거든."
태구가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재현의 주먹을 덮었다.
"너는 원인이 아니라 내 팀원이야. 그리고 내 연인이야. 둘을 한 문장에 넣는 게 어려운 거지,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형은 어려워?"
"존나 어려워. 라인아웃 콜 넘기는 게 너를 봐줘서인지, 진짜 이기려고인지, 내가 헷갈릴 때가 있어. 그래서 물어보는 법을 침대에서만이 아니라 운동장에서도 해야 될 것 같애."
재현이 고개를 돌렸다.
"운동장에서 나보고 섹스하자고 물어보겠다는 거야?"
"꺼져. 콜 넘길 때, 네 타이밍이 맞아서 넘기는 건지 말하고. 네가 느리면 느리다고 말할 거야. 잘해줘서가 아니라."
"그거, 좀 잔인한데."
"주장이라서 잔인한 거야. 네 남자라서 다정한 거고. 자리를 섞지 말자."
원룸에 도착해서도 둘은 바로 옷을 벗지 않았다. 재현이 냉장고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다 말했다.
"형. 오늘 진 날도 이긴 날도 아닌데, 나 하고 싶어?"
태구가 진짜로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어. 너는?"
"나도. 근데 위는 내가 하고 싶어. 형이 오늘 너무 주장 같아서. 그 얼굴 내가 좀 부수고 싶어."
태구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부셔. 대신 손 쓸 때 말해."
재현이 태구를 침대로 밀어 눕히고 옷을 벗겼다. 입부터 했다. 태구의 것을 깊게 물며 주장이라는 단어를 허벅지 안쪽에 호흡으로 새겼다. 태구가 허리를 들 때 재현이 빼며 물었다.
"손가락 넣어도 돼?"
"돼."
"몇 개."
"두 개. 천천히."
재현의 손가락이 태구를 열었다. 전립선을 문지를 때마다 태구의 말이 짧아졌다. 재현이 콘돔을 끼우고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물었다.
"넣어도 돼, 형."
"넣어. 깊게. 오늘 내가 주장 얼굴 하고 왔으니까, 네가 그거 벗겨."
재현이 밀어 넣었다. 태구의 다리가 재현의 허리에 감겼다. 움직임은 거칠었지만 박자는 서로 맞췄다. 재현이 태구의 손목을 머리 위로 모았다가, 태구가 "손 풀고 내 거 잡아"라고 하자 바로 풀고 쥐었다. 묻는 것과 하는 것이 같은 리듬이 됐다.
태구는 재현의 손 안에서 사정했고, 재현은 그 직후 허리를 떨며 따라갔다. 둘은 빠지지 않은 채로 숨을 고르다, 이마를 맞댔다.
"형."
"응."
"민재한테 언젠간 말해야 될지도 몰라."
"언젠간. 오늘은 아니야. 팀이 먼저 안정되고, 우리가 더 잘하고. 실력으로 입 막은 다음에."
"그거 되게 주장 같은 말이야."
"지금은 주장 시간이야. 조금 있다 남자 시간 할게."
재현이 코로 웃으며 태구의 가슴에 침을 묻히듯 키스했다.
"남자 시간에 나 또 물을게. 형 안에 한 번 더 해도 되냐고."
태구가 눈을 감고 대답했다.
"되고. 그 전에 물 마셔. 주장으로서 수분 섭취 지시한다."
"씨발, 그 지시는 존나 야하다."
그들은 물을 마시고, 한 번 더 했다. 두 번째는 태구가 재현을 무릎 위에 앉히고 아래에서 위로 밀었다. 재현이 태구의 어깨를 붙잡고 허리를 돌릴 때마다 "이 각 좋아?"라고 물었고, 태구는 "좋아, 더 앉아"라고 했다. 리더십과 주도권이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걸, 그 밤에 몸으로 확인했다.
운동장에서의 주장은 한 명이면 됐다. 침대에서는 묻는 사람이 그때그때 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