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대 스무
마지막 킥이 골대를 맞고 밖으로 튕겼다. 휘슬이 울렸다. 스코어보드의 숫자가 나란히 멈췄다. 이십 대 이십.
흑돈 벤치가 잠시 멍청해졌다. 이길 줄 알았고, 질 줄도 알았는데, 비길 줄은 몰랐다. 사회인 리그에서 무승부는 수학적으로는 존재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버그 같은 것이었다.
태구가 손을 들어 팀원들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막판에 버틴 거 진짜 잘했어. 다음 주에 끝장낸다."
주장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재현은 그 옆에서 마우스피스를 빼며 태구만 봤다. 태구도 재현만 봤다. 둘의 눈이 동시에 같은 계산을 시작했다.
이긴 날은 태구. 진 날은 재현. 비긴 날은?
라커룸이 열렸다.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비기면 다들 자기가 이긴 장면을 하나씩 꺼냈다. 민재는 "우리 스크럼이 이겼잖아"라고 했고, 성호는 "트라이 개수는 우리가 하나 더 많았는데 킥이 문제"라고 했다. 재현이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트라이는 내가 넣었는데."
태구가 바로 받았다.
"페널티 유발은 내가 막았는데."
"그게 이긴 거냐, 안 진 거냐."
"안 진 건 이긴 거에 가깝지."
"형은 지금 수학 다시 만들어."
민재가 둘 사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 오늘따라 둘이 왜 이렇게 진지냐. 무승부 가지고 부부싸움하냐."
라커룸이 웃었다. 태구도 웃었다. 타이밍 좋은 웃음이었다. 재현은 고개를 숙여 클리트를 벗으며 귀만 붉혔다. 부부라는 말에 진짜로 찔렸다.
사람들이 빠지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비긴 날은 2차 약속이 애매했다. 이기면 마시고, 지면 해산하고, 비기면 고민하니까. 민재가 "그냥 삼겹살이나 가자"고 해서 절반이 따라나갔다. 태구는 주장으로서 따라가야 했다.
삼겹살 집에서 재현은 태구의 맞은편에 앉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다. 무릎이 부딪쳤다. 태구가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집으며 낮게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무슨 이야기."
"규칙."
"규칙에 무승부 조항 없잖아."
"그래서 이야기하자고."
재현이 소주를 원샷하고 웃었다. 웃음의 끝이 날카로웠다.
"형 오늘 라인아웃 콜 내 거였으면 이겼어."
"킥이 들어갔으면 이겼지."
"킥은 형이 찼잖아."
"그래서 내가 진 사람이야?"
"비긴 사람이지. 둘 다."
민재가 또 끼어들었다.
"와 진짜 부부싸움. 주장, 재현이 너 오늘 예민하다. 여친이랑 싸웠냐."
재현이 태구의 무릎을 테이블 밑에서 세게 쥐었다. 태구는 표정 없이 고기를 집었다.
"여친 없어. 그냥 경기 이야기다."
"여친 없는 놈들이 더 예민하더라."
집으로 가는 길에 둘은 같은 버스를 탔다. 창가에서 재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집 갈 거야, 우리 집 갈 거야."
"우리 집이 어딨어. 내 원룸이지."
"거기가 우리 집이지. 네 양말 내가 다 빨아줬잖아."
태구가 창밖을 보다가 말했다.
"오늘은 안 하는 게 낫지 않냐."
재현의 얼굴이 진짜로 굳었다.
"왜. 비기면 섹스도 무승부냐."
"그게 아니라. 규칙이 없으면 오늘 누가 하냐는 걸 우리가 말로 해야 되잖아. 그거 처음이라서."
"그래서 도망가?"
"도망이 아니라 준비."
재현이 코로 웃었다. 버스 손잡이를 잡은 손등이 하얗게 변했다.
"형은 주장이야. 주장 입 가지고 준비는 무슨. 그냥 물어보면 되잖아."
"너도 안 물어봤잖아."
둘은 그 말을 버스 안에 남겨두고 내렸다. 태구의 원룸 앞에서 재현이 신발도 안 벗고 말했다.
"나 오늘 형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 비겼든 이겼든."
태구가 열쇠를 돌리다 멈췄다.
"나는 너를 라커에 세우고 싶었어. 비겼든 졌든."
현관이 열렸다. 신발을 벗는 동안 둘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런데 서로 손을 먼저 대지 못했다. 이긴 날이면 태구가 밀고, 진 날이면 재현이 무릎을 명령했다. 오늘은 그 자동 재생이 꺼진 화면 같았다.
재현이 냉장고에서 이온음료를 꺼내 던졌다. 태구가 받고, 마시지 않았다.
"웃기네."
"뭐가."
"우리 맨날 몸으로는 뒤집으면서, 입으로 원하는 건 말 못 하잖아. 점수판이 없으면."
태구가 캔 윗면을 엄지로 눌렀다.
"다음 훈련 끝나고 라커룸에 남자. 사람들 다 보내고."
"왜 하필 라커룸."
"규칙이 태어난 데가 거기니까. 규칙 없이 물어보는 데도 거기여야 공평하지."
재현이 신발을 다시 신었다. 오늘은 자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태구는 말리지 않았다. 문을 열기 전에 재현이 태구의 목덜미를 잡아 짧게 입을 맞췄다. 이빨이 살짝 물렸다. 이긴 날의 키스도, 진 날의 키스도 아닌, 그냥 화가 조금 남은 키스였다.
"형. 무승부가 이렇게 짜증 날 줄 몰랐다."
"나도."
"다음엔 그냥 한 점이라도 이겨. 아니면 져. 이 애매한 거 다시 하기 싫으니까."
태구가 재현의 뒷목을 한 번 쓸었다.
"애매한 거 다시 할 거야. 인생이 원래 무승부 많거든."
재현이 복도로 나가며 손가락을 들었다. 욕인지 하트인지 모를 동작이었다.
문이 닫히자 태구는 라커룸 냄새도 없는 원룸에서 유니폼을 그냥 바닥에 내려놓았다. 스코어는 이십 대 이십. 몸 안은 이십일 대 영 같았다. 아무도 이기지 못했는데, 둘 다 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재현이었다.
"형. 나 집에 가는 버스야."
"응."
"라커룸에서 진짜 물어볼 거지."
"물어볼게."
"나도 물을게.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거 아니야. 그거 오늘 확인했다."
태구가 웃었다. 처음으로, 승패와 상관없는 웃음이었다.
"알겠어. 먼저 말해도 안 져."
통화가 끊긴 뒤에도 태구는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다음 훈련은 수요일이었다. 사흘. 그 사흘이 시즌 전체보다 길게 느껴졌다. 무승부는 점수가 아니라, 입을 열기 전까지의 침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