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의 태클

흑돈 럭비 클럽의 라커룸은 언제나 발 냄새와 소독약과 싸구려 바디워시가 한 데 섞인 냄새였다. 김태구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좋아한다기보다, 익숙했다. 익숙한 건 곧 집 같은 거니까. 사회인 럭비를 오 년째 하면서 주장 완장을 찬 지도 이 년, 이 좁은 라커룸 벤치에 앉아 있으면 회사에서보다 더 많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 누가 늦었는지, 누가 무릎이 안 좋은지, 누가 어제 술을 마셨는지. 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문이 열렸다. 유니폼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남자가 들어왔다. 스물일곱이라고 하기엔 턱선이 너무 날카로웠고, 신입이라고 하기엔 눈이 너무 안 죽었다. 태구는 가방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만 슬쩍 들었다. 신입 지원서에 붙어 있던 증명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별로였다. 아니, 별로라는 말은 틀렸다. 사진보다 훨씬 신경 쓰이게 생겼다는 뜻이었다.

"야, 신입. 이름 뭐야."

"박재현입니다. 주장 선배."

또박또박한 발음이었다. 회사에서 신입 사원 교육받고 온 사람처럼. 태구가 테이프 롤을 던지듯 내밀며 웃었다.

"존댓말 하지 마. 여긴 회사 아니야. 태클할 때 존댓말 하면 내가 더 민망해."

재현이 코로 짧게 웃었다.

"알겠어, 주장."

그 한마디가 걸렸다. 알겠어, 가 아니라 주장. 이름 대신 직함을 부르는 버릇. 태구는 그때는 몰랐다. 그 호칭이 나중에 침대 위에서 얼마나 야하게 들릴지. 그저 신입치고 눈치가 빠르다고만 생각했다. 존댓말은 버리되 예의는 어중간하게 남겨두는 방식, 그건 상대를 가늠하는 사람의 화법이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태구는 곁눈질로 재현의 몸을 훑었다. 웨이트를 오래 한 몸이었다. 어깨는 넓고 허리는 좁았다. 럭비를 안 해본 몸치고는 균형이 이상할 정도로 잘 잡혀 있었다.

"운동 뭐 했었어?"

"주짓수 좀. 그리고 크로스핏."

"싸움 좀 했겠네."

"싸움은 안 했고, 맞는 법은 배웠어."

태구가 픽 웃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맞는 법을 아는 사람은 태클도 잘 받고, 태클도 잘 걸었다. 이 팀에 필요한 종류의 신입이었다.

첫 연습 경기에서 재현은 태구의 허벅지를 제대로 감아 넘어뜨렸다. 주장이 진흙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에 라커룸까지 함성이 울렸다. 태구는 일어나면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창피한 게 아니라, 기분 좋은 종류의 충격이었다. 등이 아렸고 무릎에 흙이 잔뜩 묻었는데도, 몸 안쪽 어딘가가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야 이 새끼, 신입이 주장 태클하냐."

"형이 구멍 열어놓고 뛰길래."

"어디서 형이야, 주장이라며."

"이겼으니까 오늘은 형 해도 되지 않나."

말도 안 되는 논리인데 태구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날따라 재현의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오래 눈에 남았다.

그날 밤 뒷풀이에서 재현은 소주를 물처럼 마셨고, 태구는 옆에서 안주를 밀어주며 자꾸 그 입을 봤다. 입이 거칠었다. 말은 더 거칠었다. 그런데 잔을 받을 때 손가락이 잠깐 닿으면, 그 거침이 전부 거짓처럼 떨렸다. 재현은 취기가 오르자 말이 많아졌다. 대학 시절 얘기, 지금 다니는 회사 욕, 그리고 왜 하필 럭비냐는 질문에 "부딪혀도 아무도 안 이상하게 보는 운동이 이거밖에 없어서"라고 답했다. 태구는 그 대답을 오래 곱씹었다.

세 달 뒤, 그들은 시즌 첫 승을 냈다. 재현이 코너 플래그 앞에서 트라이를 넣었다. 태구는 그 등을 숨 막히게 끌어안았고, 라커룸에서 팀원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두 사람은 샤워실 칸에서 처음으로 입을 맞췄다. 물이 두 사람의 어깨를 타고 흘렀고, 재현의 손이 태구의 목덜미를 붙잡았을 때 태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물소리가 다 가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가려주지 않았다. 재현의 숨이 너무 컸다.

"형, 미친 거 아냐."

"너가 먼저 쳐다봤잖아."

"난 태클한 거고."

"그래, 계속 태클해."

샤워실에서 나와서도 둘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팀원들이 다 흩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십오 분이 태구에게는 세 시간처럼 길었다. 재현은 젖은 머리를 대충 털며 태구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고,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태구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어디 가는데?"

"형 집."

"내가 가자고 안 했는데."

"안 갈 거면 손 치우고 말해."

태구는 손을 치우지 않았다.

첫날 밤은 둘 다 서툴렀다. 태구의 원룸, 세탁 안 한 유니폼이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고, 테이블 위엔 이온음료와 콘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재현이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주장 새끼, 준비성이 경기다."

"꺼져. 네가 허벅지에 멍 든 거 보니까 참을 수가 없더라."

"내 멍이 왜 형 문제야."

"내가 낸 멍이니까."

재현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 침묵 사이로 웃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지나갔다. 태구는 그 얼굴을 놓치지 않았다.

태구가 재현을 침대에 밀어 눕혔다. 재현의 손목을 머리 위로 모으고, 입으로 목덜미의 흙 자국을 핥았다. 경기장 흙이 아직 남아 있었다. 소금 같고, 풀 같고, 남자의 땀 같았다. 재현이 눈을 감고 목을 조금 더 내밀었다. 저항하지 않는 그 자세가 태구에게는 허락처럼 읽혔다.

"형, 손 놓으면 내가 뒤집어."

"놓기만 해 봐라."

"놓으라고 협박한 거 아니야. 확인한 거야."

"뭘."

"형이 진짜 이럴 배짱 있나."

태구는 대답 대신 재현의 손목을 더 세게 쥐었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태구는 재현의 젖꼭지를 이빨로 가볍게 물고, 이미 단단해진 것을 손바닥 전체로 쥐었다. 재현이 허리를 들었다. 태구는 그 사이를 손가락으로 벌리고, 루브를 묻혀 천천히 밀어 넣었다. 한 마디, 두 마디. 재현의 안이 뜨겁게 조여왔다.

"씨발, 형…… 거기."

"여기? 주장한테 좌표 찍어."

"더 안쪽. 아, 그냥 박아 임마."

"성질 급한 신입이네."

"성질 급한 게 아니라 형이 느려터진 거야."

태구가 콘돔을 찢어 끼우고 재현의 허벅지를 벌렸다. 들어가던 순간 재현의 손이 태구의 등 뒤에서 스크럼 잡듯 맞물렸다. 태구는 깊게 밀어 넣고, 빼지 않은 채로 재현의 귀밑에 말했다.

"오늘 이겼으니까, 내가 한다."

재현이 웃었다. 삽입당한 채로, 이마에 땀 흐른 채로, 허리가 접히도록 웃었다.

"그래. 이긴 날은 형 거."

태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움직였다. 재현의 무릎이 태구의 옆구리를 조였다.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원룸 벽에 울렸다. 재현의 숨이 점점 짧아지더니 어느 순간 말도 못 하고 태구의 팔뚝을 손톱으로 긁었다. 태구는 그 반응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이 팀에서 가장 말 많던 신입이 자기 아래에서 말을 잃어가는 걸 보는 건 이상하게 뿌듯한 일이었다.

재현이 먼저 사정했다. 배 위에 흰 것이 끈적하게 퍼지고, 그 모습에 태구도 허리를 끝까지 박고 숨을 참았다.

숨이 고르고 나서 재현이 태구의 가슴을 밀었다. 뒤집혔다. 주장이 아래에 깔렸다.

"근데 형. 진 날은?"

"뭐."

재현이 아직 젖은 손가락으로 태구의 입술을 문질렀다. 눈은 장난이었고, 손은 전혀 아니었다.

"진 날은 내가 하는 거지. 공정하게."

태구가 코를 킁킁했다.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재현의 허벅지가 자신의 허리를 고정하고 있었다. 주장의 체급이, 신입의 체중에 눌려 있었다.

"야, 그거 규칙으로 만들면 우리 팀 성적 가지고 섹스 스케줄 짜는 거냐."

"흑돈 창단 이래 가장 동기부여 되는 규칙일걸."

"그럼 무승부는?"

재현이 잠깐 말이 막혔다.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때 가서 정하지, 뭐."

"약한 소리 하네."

"형이야말로 지금 협상할 처지 아닌 것 같은데."

둘은 그 밤을 그렇게 웃으며 끝냈다. 재현은 태구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고, 태구는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긴 날은 나, 진 날은 너. 간단하네."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몇 번의 경기와 몇 번의 라커룸이 더 필요했다. 그래도 그날따라 태구는 다음 주 대진표를 평소보다 오래 들여다봤다. 승패가 점수판의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목을 누가 잡을지의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아직 답이 없는 무승부라는 변수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조용히 남았다.

아침이 되자 재현은 태구보다 먼저 일어나 있었다. 부엌에서 계란을 태우는 소리가 들렸다. 태구가 눈을 비비며 나가보니 재현이 프라이팬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뒤집개를 들고 있었다.

"뭐 하냐."

"형 집에 먹을 게 계란밖에 없어서."

"그럼 시켜 먹지."

"주장이 요리도 못하는 게 알려지면 안 되잖아."

"내가 아니라 네가 하고 있잖아, 지금."

재현이 뒤집개로 계란을 반으로 가르며 뻔뻔하게 웃었다. 어젯밤의 거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아침 햇살 속에서는 그냥 스물일곱 살 신입 회사원처럼 보였다. 태구는 그 낙차가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계란을 먹으면서 둘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한참 오래 만난 사람들 같은 침묵이었다. 재현이 먼저 정적을 깼다.

"형, 이거 우리 둘만 아는 거지."

"당연하지."

"라커룸에서는 그냥 선후배 하는 거고."

"그래."

"근데 경기장에서 나 태클할 때 봐주면 안 돼. 그럼 다 티 나."

태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언제 봐준 적 있냐."

"오늘부터 조심해. 형 눈빛이 좀 그래."

"뭔 눈빛."

"어제 내가 넘어뜨렸을 때, 그 눈빛."

태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재현이 정확히 봤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됐으니까.

그다음 주 훈련에서 두 사람은 정말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었다. 태구는 여전히 신입에게 소리를 질렀고, 재현은 여전히 존댓말과 반말 사이 어딘가에서 대답했다. 다만 스크럼을 짤 때 서로의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는 걸, 다른 팀원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태구만 알았다. 그리고 재현도.

훈련이 끝나고 다 같이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길에, 재현이 태구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낮게 말했다.

"이번 주 경기, 이길 자신 있어?"

"당연하지."

"난 질 자신 있는데."

"그게 무슨 자신이야."

"형이 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런다."

태구는 라커룸 문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이 신입은 처음 본 날부터 예상을 벗어나더니, 지금도 여전히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측 불가능함이, 태구가 이 팀을 오 년 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경기의 긴장감과는 또 다른, 훨씬 개인적이고 훨씬 위험한 긴장감이었다.

그 주 목요일 저녁, 팀 전체 회식이 잡혔다. 창단 이래 첫 승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삼겹살집 안쪽 룸에 열두 명이 몰려 앉았고, 태구는 상석에서 술잔을 돌리며 팀원들을 하나하나 칭찬했다. 재현의 차례가 되자 태구는 일부러 평소보다 더 사무적으로 말했다.

"신입, 이번 주 잘했다. 특히 그 태클."

"주장님이 잘 넘어져 주셔서요."

테이블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무도 그 말 속에 숨은 다른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다. 태구만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고기가 몇 판 더 구워지고 술이 몇 순배 더 돌았을 때, 재현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오 분쯤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태구도 슬그머니 일어나 뒤를 따라갔다. 화장실 앞 복도, 아무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재현이 벽에 기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뭐 하냐, 안 들어오고."

"형 눈치 보느라. 아까부터 자꾸 나 쳐다보던데."

"안 봤어."

"거짓말도 못하네, 주장이."

재현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태구를 벽 쪽으로 살짝 밀었다. 그 손짓 하나에 태구는 저항하지 않았다. 취기가 살짝 오른 눈으로 재현이 태구를 올려다봤다.

"다음 경기, 형이 이기면 또 형 차례야?"

"그렇게 정했잖아."

"난 그 규칙 마음에 들어. 근데 하나만 더 추가하자."

"뭘."

"팀원들 앞에서는 절대 티 안 내기. 지금처럼."

"지금 이러고 있는 게 티 안 내는 거야?"

재현이 씩 웃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몸을 떼고 다시 룸 안으로 들어갔다. 태구는 잠깐 그 자리에 서서 심장이 뛰는 속도를 가라앉혀야 했다. 이 팀에 들어온 지 겨우 한 달 된 신입이, 어느새 태구의 일주일 리듬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승패로 정해지는 건 이제 경기 결과만이 아니었다.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태구는 대리운전을 부르는 대신 걸었다. 재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 잘 들어갔어?"

"걷는 중. 술 좀 깨려고."

"혼자?"

"어. 왜, 오게?"

답장이 삼십 초쯤 늦게 왔다.

"오늘은 됐어. 다음에 이기면 그때 갈게."

태구는 그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다음에 이기면. 재현은 이미 그 규칙을 스스로 확장하고 있었다. 승패가 아니라 초대의 조건으로. 태구는 걸으면서 웃음이 났다. 스물일곱 살 먹은 남자가 문자 하나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풀리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다음 주 경기는 근소한 점수 차로 흑돈이 이겼다. 마지막 태클을 넣은 건 재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헹가래를 받는 대신, 재현은 슬쩍 뒤로 빠져 태구에게 다가와 작게 말했다.

"오늘은 형 차례네."

"당연하지."

"근데 형, 이거 우리 계속 이렇게 갈 거야?"

"뭘."

"경기 결과로 정하는 거. 언젠가는 무승부 나올 텐데."

태구는 대답 대신 재현의 어깨를 툭 쳤다. 팀원들 눈이 있어서 그 이상은 할 수 없었지만, 그 손짓 안에는 이미 다른 대답이 들어 있었다. 그 무승부의 밤이 언제 올지는 몰랐다. 다만 그날이 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규칙이 필요하리라는 걸 두 사람 다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