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어 목록
종이가 나았다.
휴대폰 메모는 너무 쉽게 지워졌다. 채원은 부엌 서랍에서 원고 교정용 빨간 펜과 백지를 꺼냈다. 민석이 식탁에 앉았다. 둘 다 옷을 대충 걸친 채였다. 채원은 그의 셔츠, 민석은 속옷. 식탁 한가운데 물컵이 두 개. 뉴스 회의와 비슷한 구도였다. 안건만 달랐다.
채원이 맨 위에 썼다.
한채원 / 조민석. 되는 말, 안 되는 말.
글씨가 단정했다. 아나운서의 손이었다. 민석이 그 단정함을 보고 웃으려다 참았다. 이 단정함이 이 목록을 진짜로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신호부터."
민석이 말했다.
"페이드아웃은 즉시 정지. 빠지고, 손 떼고, 말 끊고. 이유 안 물어. 나중에 물어."
채원이 끄덕이며 적었다.
"모니터는 속도 줄이거나 단어 바꿈. 멈추진 않는데 점검."
"녹음은 계속. 더 세게도 포함."
세 단어가 종이 왼쪽에 네모로 묶였다. 방송국의 큐시트처럼. 채원은 그 네모를 보고 잠시 안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자기 욕망이 큐시트가 되는 것. 추하지 않게, 정확하게.
"되는 말."
민석이 펜을 손가락 사이로 굴렸다.
"창녀. 어제 됐고, 몸이 바로 대답했어. 유지."
채원이 적었다. 창녀. 단정한 글씨로. 그 조합이 이상해서 잠깐 펜이 멈췄다가 다시 갔다.
"걸레. 발음 고운 걸레. 뉴스 읽는 창녀. 마이크 빠는 년."
민석이 나열했다. 직업적 정확함으로. 채원의 귀가 뜨거워졌다. 식탁 위인데,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민석이 그것을 봤다. 봤지만 지금은 적는 시간이었다.
"암캐. 싸는 년. 구멍. 더러운 입. 더러운 구멍. 깨끗한 척하는 보지."
채원이 적다가 손을 멈췄다.
"보지, 는 돼요. 씹은요."
"어때."
"돼요. 다만 방송국 안에서는 그 음절을 크게 내지 말아요. 벽이 얇은 데가 있어."
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무였다. 욕망의 실무.
"온 국민이 듣는 입으로, 같은 문장."
채원이 적었다. 그리고 밑줄을 그었다. 진한 밑줄.
"그게 제일 좋아요. 직업이랑 붙는 거."
"아나운서 창녀. 한채원 아나운서, 오늘 보도 대신 무릎 꿇습니다, 같은."
채원이 눈을 감았다. 식탁 아래 허벅지가 서로 붙었다. 펜이 종이 위에서 점을 찍었다.
"돼요. 많이 돼요."
민석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목이 움직였다. 채원은 그 목을 봤다. 이 목이 방금 그 문장들을 아무렇지 않게 토해 냈다. 아무렇지 않게가 아니었다. 측정하고 토해 냈다.
"안 되는 말."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채원이 빨간 펜으로 칸을 나눴다.
"가짜."
첫 줄에 이미 있던 것. 그녀가 다시 썼다. 진하게.
"자격 없는. 운 좋은 년. 실력 없는. 메인 못 될. 실수투성이. 사고 치는 년."
민석이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건 일에서 오는 거네."
"일에서 와요. 일이 내 입이에요. 입을 더럽히는 건 좋은데, 입이 가짜라고 하면. 그건 플레이가 아니에요. 그냥 내가 매일 듣는 거예요. 나 혼자 듣는."
민석이 손을 테이블 가운데로 내밀었다. 채원의 손 옆에. 아직 잡지는 않았다.
"목소리 역겨워. 발음 더러워. 듣기 싫어."
채원이 적었다. 손끝이 하얘졌다.
"내 목소리는 도구예요. 도구를 더러운 일에 쓰는 건 좋아요. 도구가 역겹다고 하면 도구가 부러져요."
"알겠어."
"필요 없는 년. 버려도 되는. 사랑 안 해. 사랑받을 가치 없는."
이번엔 민석이 펜을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그 네 개를 직접 적었다. 글씨가 채원보다 거칠었다.
"이건 내가 안 할게. 플레이가 아니라 거짓말이야. 나는 너를 사랑해. 그 문장 위에 창녀를 얹는 거지, 그 문장을 지우고 창녀를 넣는 게 아니야."
채원이 그를 봤다. 알몸 위에 그의 셔츠. 식탁. 빨간 펜. 사랑해, 라는 말이 금지어 목록의 반대편에서 나왔다. 더러운 말보다 더 맨살 같았다.
"네 엄마, 네 가족. 그쪽으로 가는 말도 안 돼요."
"알겠어."
"바보, 멍청이. 그건 데스크에서 실제로 들어요. 선배가. 장난처럼. 그 단어를 당신이 하면 데스크가 이 방으로 들어와요."
민석이 적었다. 바보. 멍청이. 빨간 칸.
"그리고 내 이름 풀네임 뒤에 가짜를 붙이는 거. 한채원은 창녀, 는 돼요. 한채원은 가짜 아나운서, 는 안 돼요."
미세한 차이였다. 민석은 그 차이를 헤드폰으로 듣는 사람처럼 두 번 반복해 확인했다. 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콘돔은 기본. 목 조르기는 아직 안 돼요. 얼굴에 싸는 건."
채원이 잠깐 생각했다.
"돼요. 이 입에. 다만 눈은 피해요. 렌즈 충혈이 카메라에 나와요."
실무. 다시 실무. 민석이 웃었다.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채원도 웃었다. 금지어 목록 위에서 웃는 두 사람. 웃음의 레벨이 맞았다.
"공개 장소 금지. 방송국 복도, 화장실, 다른 사람 있는 컨트롤. 되는 곳은."
"여기. 당신 집. 그리고." 채원이 펜을 돌렸다. "2번 부스. 자정 이후. 당직이 다른 층일 때."
민석의 눈썹이 올라갔다.
"일터야."
"일터라서요. 그 마이크 앞에서 창녀가 되고 싶어요. 낮에 뉴스를 읽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오래 생각했다. 보안. 로그. 청소 시간. 야간 당직의 동선. 엔지니어의 머리가 욕망의 머리를 점검했다. 그리고 말했다.
"목요일. 뉴스 없는 목요일 밤. 내가 부스 로그를 야간 점검으로 남겨. 한 시간. 초과하면 안 돼."
"한 시간."
"페이드아웃은 그대로. 녹음 파일은 만들지 않아. 버퍼는 내가 비워."
채원이 마지막 줄을 적었다. 목요일. 2번 부스. 한 시간. 파일 없음.
종이를 둘 다 읽었다. 소리 내어. 채원이 되는 말을 읽고, 민석이 안 되는 말을 읽었다. 서로의 목소리를 교정하지 않았다. 이번 원고는 교정이 아니라 합의였다.
채원이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뉴스 원고처럼 선이 반듯했다. 민석이 그 종이를 자기 지갑에 넣으려다, 채원이 흔들었다.
"복사해요. 한 장씩."
휴대폰으로 찍었다. 두 사람 앨범에 같은 사진이 생겼다. 더러운 말들이 단정한 글씨로 찍혀 있는 사진.
식탁 아래에서 민석의 발이 채원의 발등을 덮었다.
"목요일."
"목요일."
채원이 그의 셔츠 깃을 당겼다. 키스는 더럽지 않았다. 목록을 쓴 입끼리의 키스였다. 혀가 들어가기 전에 민석이 낮게 말했다.
"사랑해. 그다음에 창녀."
"순서 좋아요."
그 밤에 그들은 한 번 더 했다. 되는 말만 썼다. 민석이 뒤에서 넣으면서 그녀의 귀에 "마이크 빠는 년"을 넣었고, 채원은 베개를 물고도 삼키지 않았다. 안 되는 말은 방 안에 없었다. 없는 말이 있는 말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그것이 목록의 무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