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입

적색등이 켜지면 입이 먼저 정렬됐다.

한채원은 그걸 알고 있었다. 혀끝이 앞니 바로 뒤에 닿고, 입술이 뉴스 첫 음절의 모양을 미리 만들었다.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 렌즈 왼쪽 살짝, 시청자가 있을 자리를 봤다. 삼 년째 같은 자리였다. 한솔방송 저녁종합뉴스, 서브 앵커. 메인 자리는 아직 아니었다. 아직, 이라는 말이 그녀의 하루를 끌고 다녔다.

"정부는 오늘 발표한 대책에서."

ㅅ이 깨끗했다. 받침이 무너지지 않았다. 박 PD가 부스 밖에서 엄지를 올렸다. 채원은 올리지 않았다. 올리면 다음에 내려야 했으니까. 뉴스가 끝나는 팔 시 이십팔 분까지 입은 한 대의 기계였다. 숨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만 넣었다. 침은 삼키지 않고 혀 밑에 모아 두었다가 광고 중에 삼켰다.

팔 시 이십팔 분. 엔딩 멘트가 나갔다. 적색등이 꺼졌다.

완벽한 입이 일을 끝낸 자리에는 항상 허전함이 남았다. 허전함이 아니라 과잉이었다. 팔십 분 동안 아무 음절도 미끄러지지 않게 붙잡아 둔 힘이, 꺼진 등 앞에서 갈 곳을 잃었다. 채원은 그 힘이 천한 말을 향해 기울 때마다 자기 목을 만졌다. 만진다고 정렬이 풀리지는 않았다. 풀리는 쪽은 다른 입이 필요했다.

채원은 미소를 삼 초 더 유지한 뒤 풀었다. 턱관절이 소리를 냈다. 아주 작았다. 자기만 들을 수 있는 소리. 헤드셋을 벗자 귀가 잠깐 먹먹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들어와 가루를 한 번 쓸고 나갔다. 수진 언니가 옆 자리에서 물을 마시며 말했다.

"오늘 세 번째 아이템, 좋았어. 받침 살렸다."

"고마워요."

고마움이 아니었다. 점검이었다. 세 번째 아이템의 받침을 수진이 들었다는 것, 다른 사람은 안 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 메인 오디션이 두 달 남았다는 것. 채원은 원고를 클립에서 빼 접었다. 접힌 선이 반듯했다.

복도 조명이 밤 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뉴스센터는 낮보다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 기계 소리만 남았다. 환기팬. 멀리 마스터 컨트롤의 팬 소음. 채원은 그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소리가 남으면 입이 아직 일을 안 끝낸 것 같아서.

서브컨트롤 3의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조민석이 헤드폰을 한쪽만 벗은 채로 앉아 있었다. 모니터 세 개가 아직 켜져 있었고, 가운데 화면은 방금 끝난 뉴스의 파형이었다. 그는 파형의 한 지점을 확대하고 있었다. 채원은 문틀에 손을 얹고 잠시 봤다. 일곱 달째 연인이었다. 방송국 안에서는 동료였다. 그 두 가지가 같은 몸에 들어 있었다.

"세 번째 아이템."

민석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ㅅ이 밝았어. 이 데시벨."

채원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등 뒤에서 천천히 닫혔다. 방음 패킹이 공기를 잘라 내는 소리가 났다. 이제 복도의 환기팬이 들리지 않았다. 이 방의 고요는 다른 종류였다. 소리가 죽어서 고요한 게 아니라, 소리가 너무 정확해서 고요한 것.

"시청자는 모를 텐데요."

"시청자는 몰라. 나는 알아."

그가 의자를 반 바퀴 돌렸다. 헤드폰이 목에 걸려 있었다. 검은 티셔츠. 손목에 케이블 타이 자국. 엔지니어들의 직업병이었다. 채원은 그 자국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입이 건조해졌다. 묶인 선의 흔적. 자기 목에는 없는 것.

"고칠까요."

"이미 나갔어. 라이브야."

"다음부터요."

민석이 그녀를 봤다. 엔지니어의 눈이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소리를 보는 눈. 채원은 그 눈이 좋았다. 그 눈 앞에서만 완벽한 입이 조금 헐거워졌다.

"목 말랐어."

그가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파형에 침 삼키는 소리가 없었으니까. 팔십 분 동안 삼키지 않은 사람이 지금 이 문에 서 있다는 걸 그는 파일로 알고 있었다.

채원은 물을 마시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에 섰다. 콘솔의 페이드 캡이 무릎 높이에 닿았다. 차갑고 매끄러웠다. 민석의 손이 그 옆에 있었다. 긴 손가락. 미세한 각도를 만지는 손.

"오늘은 잘했어요?"

그녀가 물었다. 잘했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말이 듣고 싶어서였다. 그 다른 말의 모양을 그녀는 아직 자기 입 안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의 입은 천한 단어를 발음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원했다. 그 입으로 못 하는 말을, 다른 입이 자기에게 해 주기를.

민석이 고개를 기울였다.

"잘했어. 세 번째만 빼면."

잘했어. 세 번째만 빼면. 그것이 이 건물에서 그녀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칭찬이었다. 채원은 웃었다. 턱이 또 소리를 냈다. 민석이 그 소리를 들었다. 물론 들었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들었다.

"집에 갈까요."

"로그 남기고."

그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파형이 저장되고 화면이 어두워졌다. 적색등 자리가 꺼진 채로 남아 있었다. 채원은 그 꺼진 등을 봤다. 켜져 있을 때의 입이 있었고, 꺼져 있을 때의 입이 있었다. 꺼진 쪽의 입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녀는 오늘 밤에도 말하지 않았다.

복도로 나왔다. 야간 당직 조명이 바닥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민석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카메라 없는 구간에서만. 엄지가 맥박 위에 놓였다.

"턱 아파."

그가 말했다.

"알아요."

"집에 가서 풀어 줄게."

풀어 준다는 말이 관절을 뜻하는지, 다른 것을 뜻하는지, 채원은 구별하지 않기로 했다. 구별하면 오늘 밤의 입이 너무 정확해질 테니까. 정확함은 낮의 일이었다. 밤은 정확하지 않은 입이 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두 사람이 비쳤다. 메이크업이 조금 남은 아나운서와, 헤드폰 자국이 귀에 남은 엔지니어. 채원은 거울 속의 자기 입을 봤다. 단정했다. 뉴스에 나올 입이었다.

그 입이 더러운 말을 받아 보고 싶다고, 엘리베이터 숫자가 내려가는 동안,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