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듣는 것
조민석이 소리를 직업으로 삼은 것은 말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었다. 말이 너무 정확하지 않아서였다.
구 년 전 라디오 조연출로 들어왔을 때, 그는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서 얼마나 많이 삼키는지를 배웠다. 침. 거짓말. 숨. 정치인은 질문 직전에 혀를 한 번 굴렸고, 연예인은 웃기 전에 이가 맞닿는 소리가 났다. 민석은 그 소리들을 지우는 일을 했다. 지우고 나면 목소리는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목소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빠진 자리였다.
한채원의 목소리는 그 반대였다.
라이브에서는 사람이 빠져 있었다. 완벽한 받침, 정확한 호흡, 감정이라고 이름 붙인 정도의 온도. 그런데 부스가 닫히고 적색등이 꺼지면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낮고, 조금 쉬고, 턱을 푸는 소리 뒤에 따라오는 것. 민석은 그 목소리를 일곱 달 동안 모았다. 파일로 저장하지는 않았다. 헤드폰 안에만 두었다. 저장하는 순간 그것은 일이 되니까.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것은 겨울 특집 녹음 때문이었다.
자정 넘은 2번 부스. 채원이 내레이션을 세 번째 읽고 있었다. 민석은 유리 너머에서 페이드를 잡고 있었다. 세 번째가 끝났을 때 그가 토크백을 눌렀다.
"호흡이 문장 끝에 남아요. 한 번만 더."
부스 안의 채원이 그를 봤다. 유리가 사이에 있었다. 유리는 소리를 막고 입 모양은 통과시켰다. 채원이 입을 열었다. 토크백이 꺼져 있어서 소리는 안 들렸다. 민석은 입 모양을 읽었다.
지겨워.
그는 웃었다. 그리고 토크백을 다시 눌렀다.
"지겨워 보여요. 그게 호흡에 나와요."
채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네 번째를 읽었다. 호흡이 사라졌다. 대신 다른 것이 붙었다. 화가 난 사람의 정확함. 민석은 그 테이크를 썼다. 특집은 그 해 시청률이 가장 높았다. 엔딩 크레딧에 두 사람의 이름이 세 줄 간격으로 올라갔다.
그날 밤 주차장에서 채원이 말했다.
"제 호흡을 그렇게 들으면 반칙이에요."
"직업입니다."
"직업으로 제 화를 들었어요."
"화가 예뻤어요."
채원이 그를 봤다. 주차장 형광등이 그녀의 이마를 하얗게 했다. 메이크업이 지워진 얼굴이었다. 입은 뉴스의 입이 아니었다. 조금 갈라져 있었고, 아랫입술에 이빨 자국이 하나 있었다. 민석은 그 자국을 봤다.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자국. 그녀가 자기 입을 물어뜯은 것.
"커피나 사요."
그녀가 말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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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달이 지난 지금, 민석은 채원의 아파트를 거의 외우고 있었다. 현관 왼쪽에 구두 세 켤레. 싱크대 위에 허브. 침대 맡에 원고를 읽는 작은 등. 그녀는 집에서도 발음을 연습했다. 잠들기 전 십 분. 혀를 차고, 입술을 모으고, 무성음을 반복했다. 민석은 옆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연습이 끝나면 그녀는 그에게 돌아누워 입을 맞췄다. 연습 직후의 입. 정확하고, 따뜻하고, 아직 일이 안 끝난 입.
오늘은 그 입이 멈칫했다.
키스가 깊어졌을 때였다. 민석의 손이 블라우스 밑으로 들어가 갈비뼈를 지나 가슴을 감쌌다. 니플이 손바닥에 단단했다. 채원이 신음을 삼켰다. 삼키는 소리가 목에서 났다. 민석은 그 소리를 들었다. 라이브에서 지워지던 소리. 지금은 지우지 않았다.
"내지."
그가 말했다.
"뭐."
"소리. 삼키지 마."
채원이 눈을 떴다. 가까웠다. 속눈썹에 그의 숨이 닿았다.
"추해요."
"안 추해."
"제 목소리는 추하지 않게 만들려고 삼 년을 했어요."
민석이 엄지로 아랫입술을 눌렀다. 이빨 자국이 있던 자리. 지금은 없었다. 새로 물어뜯으면 생길 자리.
"그래서 더 내고 싶은 거잖아."
채원의 숨이 멈췄다. 들켰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번역됐다는 표정이었다. 자기도 아직 문장으로 못 만든 것을 이 사람이 소리로 먼저 읽었다는.
그녀는 블라우스를 머리 너머로 벗었다. 브래지어를 풀었다. 가슴이 드러났다. 방송용 보정 속옷의 자국이 갈비에 남아 있었다. 민석이 그 자국에 입을 맞췄다. 채원이 소리를 냈다. 작았다. 그러나 삼키지는 않았다.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스타킹 너머로 열이 있었다. 민석이 가랑이를 쓸었다. 이미 젖어 천이 달라붙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 위를 문지르자 채원의 허벅지가 열렸다. 연습이 끝난 입과 달리, 아래는 연습을 모르는 것 같았다.
"민석."
"응."
"나."
그녀는 거기서 멈췄다. 다음 단어가 뉴스 원고에 없는 것이라서. 민석은 기다렸다. 엔지니어는 기다릴 줄 알았다. 침묵도 레벨이 있으니까.
"나를 더럽게 불러 봐."
방이 잠깐 정지가 됐다. 냉장고 소리가 부엌에서 들렸다. 민석의 손가락이 스타킹 위에서 멈췄다.
"뭐라고."
"더럽게. 천하게. 뉴스에서 절대 안 쓰는 말로."
그는 그녀의 얼굴을 봤다. 완벽한 아나운서의 얼굴이 아니었다. 뺨이 붉고, 입이 열려 있고, 눈이 그를 도망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다. 민석은 입 안에 여러 단어를 올려 보았다. 창녀. 걸레. 년. 그 단어들은 그의 일에서 지워지는 쪽이었다. 잡음. 노이즈. 방송 불가.
그러나 지금 이 여자는 그 노이즈를 자기 이름처럼 원하고 있었다.
"채원아."
그가 말했다. 더러운 말이 아니었다. 이름이었다.
채원이 눈을 감았다. 실망이 신음보다 먼저 나왔다. 민석은 그 소리를 들었다. 구 년 동안 들은 어떤 파형보다 선명했다.
"지금은 못 하겠어."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왜."
"그 말들이 너한테 닿는 무게를 아직 못 재서."
채원이 다시 눈을 떴다. 실망이 조금 남았고, 그 아래에 다른 것이 있었다. 기다려 준다는 것에 대한, 이상하고 축축한 안도.
"그럼 손가락은."
"그건 잴 수 있어."
민석이 스타킹을 허벅지까지 내렸다. 면 속옷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옆으로 걷자 윤기가 손가락에 묻었다. 두 개를 넣었다. 채원이 소리를 냈다. 삼키지 않았다. 민석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안을 구부렸다. 엄지는 클리토리스 위에 올렸다. 채원의 허리가 떴다. 이름 아닌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아직 허락되지 않은 채로, 신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물고 왔다. 조용히. 그러나 삼키지는 않고.
민석은 손가락을 빼지 않은 채로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붙였다.
"다음에 부를게."
"약속이에요?"
"목록을 먼저 만들자. 어떤 말은 되고, 어떤 말은 안 되는지."
채원이 웃었다. 턱에서 또 작은 소리가 났다. 민석은 그 소리를 좋아한다는 걸, 그날 밤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