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의 목록
다음 날 저녁, 낮은 테이블에 백지와 펜이 놓여 있었다. 매트는 걷어 벽에 세워 두었다. 줄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은 손이 줄보다 글자를 먼저 하게 하려는 뜻이었다.
도윤은 어제와 같은 시각에 올라왔다. 회색 셔츠, 종이 봉투는 없었다. 빈손이었다. 빈손이 더 정직해 보였다.
서진이 차를 따랐다. 어제 도윤이 놓고 간 잎이었다.
"아직 같은 말입니까."
"같습니다. 묶이길 원합니다. 선생님께."
서진은 펜을 밀어 주었다. 도윤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쓰겠다는 뜻으로, 다시 펜을 끌어왔다.
"안전어. 수업에서 쓰는 신호등을 그대로 갑니다. 초록은 계속, 노랑은 멈추고 묻기, 빨강은 즉시 전부 풉니다. 말이 안 나오면 왼손을 두 번 폅니다. 추가로 당신 단어를 하나 고르십시오. 신호등보다 먼저 몸을 끄고 싶은 단어."
도윤이 창을 보았다. 남향의 큰 창. 저녁이라 유리가 검게 빛나고 있었다.
"창."
"창." 서진이 적었다. "내가 그 단어를 들으면 줄보다 먼저 당신의 얼굴을 봅니다. 알겠습니다."
그다음 항목들이 차례로 내려왔다. 서진의 글씨는 작았고, 도윤은 한 줄씩 따라 읽었다.
하지 않는 것. 얼굴에 줄. 목에 줄. 호흡을 막는 것. 혼자 두고 자리를 뜨는 것. 사진. 수업 있는 날의 세션. 자국이 사흘 이상 남는 매듭—도윤이 출근길에 소매 밖으로 보이는 일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스펜션은 지금은 안 한다. 천장 링은 있으나, 발이 바닥을 떠나려면 그보다 많은 시간이 쌓여야 한다.
하는 것. 싱글 칼럼, 더블 칼럼. 가슴 하네스. 히시. 타카테코테—윗줄과 아랫줄, 줄기, 신경이 지나지 않는 자리만. 후토모모는 한 다리부터. 옷은 당신이 정한다. 첫 세션은 상의를 벗는 선까지. 그 이하는 다음 목록에서.
도윤의 손가락이 그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성관계는 적지 않으셨습니다."
"첫 세션에는 넣지 않습니다." 서진이 펜을 굴렸다. "줄이 앉는 것과 내가 들어가는 것은 다른 동의입니다. 줄을 받은 뒤에, 둘 다 원하면 그때 이 종이에 한 줄을 더 씁니다. 원한다고 줄 위에서 말만 하면 안 됩니다. 풀고 나서, 물을 마시고, 옷을 걸친 뒤에 말하십시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 것이 서진에게는 중요했다.
"세션 밖의 나." 서진이 이어서 적었다. "수업에서는 선생님입니다. 당신은 도윤 씨입니다. 다른 학생 앞에서 반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 손목을 수업에서 잡으면 다른 손목을 잡는 것과 같게 잡습니다. 문자는 일정만. 밤 열두 시 이후에는 응급이 아니면 보내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나이." 서진이 그 두 글자를 적고 잠시 펜을 멈췄다. "나는 마흔셋입니다. 당신은 스물아홉입니다. 십사 년입니다. 이 숫자가 나를 자주 멈추게 할 겁니다. 멈추면 노랑입니다. 당신이 그 멈춤을 재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도윤이 종이를 끌어 자기 칸에 썼다.
「재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멈추신 이유를 숨기지는 말아 주십시오. 숨기시면 제가 제 잘못으로 압니다.」
서진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숨기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한 시간쯤 흘렀다. 차가 식었다. 종이의 아래쪽에 날짜와 두 이름이 남았다. 한서진. 강도윤. 도윤의 성은 신청서에서 처음 보았고, 소리 내어 부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강도윤 씨."
"네."
"다음 목요일 밤 아홉 시. 이 건물 일 층 카페가 문을 닫은 뒤입니다. 월요일 수업이 끝난 뒤가 아닙니다. 그때 오십시오. 오시기 전에 밥을 드십시오. 술 한 잔도 안 됩니다. 컨디션이 아니면 취소 문자를 보내십시오. 취소는 실패가 아닙니다."
도윤이 종이를 접지 않았다. 서진이 사진을 찍어 두 사람에게 보내 주었다. 원본은 서진이 서랍에 넣었다. 십 년 동안 그 서랍에는 임대 계약서와 보험 서류만 있었다.
신발을 신기 전에 도윤이 물었다.
"첫 세션에서 타카테코테까지 가십니까."
"갈 수도 있고, 싱글 칼럼에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손이 저리면 거기서 끝입니다. 내가 당신의 숨을 못 읽겠으면 거기서 끝입니다. 매듭의 이름은 목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제 숨을 읽으십니다."
"한 번 읽었다고 매번 읽는 것은 아닙니다." 서진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래서 매번 묻습니다. 색깔."
계단으로 내려가는 도윤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서진은 매트를 다시 깔았다. 세션용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팔 밀리 주트, 칠 미터, 여섯 가닥. 삶아 말린 지 사흘 된 줄. 수업용보다 손이 오래 간 섬유였다. 무게가 달랐고, 냄새가 달랐고, 정직함이 달랐다.
그는 그 중 한 가닥을 풀어 자기 손목에 싱글 칼럼을 감아 보았다. 손가락 하나. 잠근 매듭이 힘줄을 피해 앉았다. 십 년 동안 학생들 앞에서 보여 주던 바로 그 매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 자기 맥박이 줄 밑에서 뛰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풀 때 그는 천천히 풀었다. 푸는 손이 감는 손보다 오래 걸렸다. 그것이 맞았다. 목록의 맨 위, 안전어 위에 적지 않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서진은 그것을 종이에 쓰지 않고 입 안에서만 굴렸다.
누군가를 위해 묶는 손을, 다시 꺼내는 일.
주트를 고리로 감아 가방에 넣으며 그는 다음 목요일까지 남은 밤을 세었다. 세는 일이 이미 그를 학생의 스승이 아닌 자리로 한 걸음 밀어 넣고 있었다. 그 한 걸음을, 그는 종이 위에 서명하는 손으로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