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라는 단어

지오가 "이제 만나자"고 말한 뒤 첫 수요일, 이서는 스탠드를 켜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화면 앞에 옷을 입은 채로 앉아 있었다. 지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오늘 밤은 몸이 아니라 말이 먼저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 요즘 계속 그 단어를 생각해요." 이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핍이라는 단어."

[지오] 어떤 뜻으로요?

"지오 씨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게, 혹시 지금 우리 관계에 뭔가 빠져 있다고 느껴서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마치 화면으로만 만나는 게 진짜가 아니라서, 결핍이라서, 그걸 채우려고 만나야 하는 것처럼요."

[지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서 씨가 그렇게 느낀다면, 내가 뭔가 잘못 전달했나 봐요.

이서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그랬어요. 내가 이렇게 나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걸, '결핍'이라고. 관심에 목마른 사람이라고. 그 말이 오래 상처였어요. 근데 지오 씨를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이게 결핍이 아니라 그냥 내 방식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지오 씨가 만나자고 하니까, 혹시 이 화면을 사이에 둔 방식 자체가 지오 씨한테는 결핍처럼 느껴졌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오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이번엔 회피가 아니라 진짜 고민이라는 걸 이서는 느낄 수 있었다.

[지오] 이서 씨, 나는 세 번의 연애에서 전부 같은 말을 들었어요. 만지는 것보다 보는 걸 좋아하는 내가, 뭔가 모자란 사람이라고. 그 말들 때문에 나도 오랫동안 내 욕망을 결핍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서 씨를 만나고 처음으로, 이게 결핍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형태라는 걸 배웠어요.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걸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만나자고 한 게 아니에요.

"그럼 왜요?" 이서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여 있었다.

[지오] 형태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요. 나는 우리가 화면으로 서로를 보는 이 방식을 계속 갖고 싶어요. 없애고 싶지 않아요. 다만, 그 형태 옆에 다른 형태도 있을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거예요. 결핍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진 걸 더 넓혀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서는 그 말을 곱씹었다. 결핍과 확장은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그 둘을 같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더'를 원하는 마음은 반드시 '지금'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온 것처럼.

"근데 나는 무서워요." 그녀가 결국 진짜 두려움을 꺼냈다. "지오 씨 앞에서, 실제로, 숨을 곳도 유리도 없이 서 있는 게. 나는 화면 뒤에서만 이렇게 대담했던 사람이에요. 실제로 만나면… 나는 아마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붙을 거예요. 그럼 지오 씨는 실망하겠죠. 화면 속의 나를 사랑한 건데, 실제의 나는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지오] 이서 씨. 나는 화면 속의 당신을 사랑한 게 아니에요. 화면을 통해서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거예요. 그 둘은 달라요. 유리 저편에 있는 게 당신이 아니라,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나에게 자신을 보여주기로 결정한 그 마음이 당신이었어요. 그 마음은 화면이 없어도 사라지지 않아요.

이서는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지오의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몸 안쪽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 얼어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녹는 걸 느꼈다.

"시간을 좀 줄래요." 그녀가 말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요. 이건 급하게 답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지오] 얼마든지요. 나는 어디 안 가요.

그날 밤 두 사람은 몸을 나누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켠 채, 각자 손을 뻗어 카메라 렌즈 위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 모양만 겹쳐 보이는 그 자세로 오래도록 말없이 있었다. 손끝은 닿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느 쪽도 그것을 결핍이라 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