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한 말들

관계에는 저마다의 문법이 있다. 지오와 이서의 문법은 두 사람이 함께, 아주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것이었다.

시작은 이서 쪽이었다. 플랫폼을 떠나 개인적으로 연결된 지 두 주쯤 지났을 때, 그녀는 밤 열두 시가 넘어 메시지를 보냈다.

[이서] 우리, 규칙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오] 듣고 있어요.

이서는 그동안 몸으로 사람을 상대하며 배운 것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이름은 진짜인지 아닌지 서로 캐묻지 않는다. 얼굴은, 원한다면 언젠가는 보여줄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요구하지 않는다. 만나는 시간은 수요일과 토요일 밤 열한 시로 고정한다. 그 밖의 시간에 연락하지 않는다 — 이건 이서가 가장 강하게 원한 항목이었다. 이 만남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일상과 분리된 하나의 시간으로, 의식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지오는 그 목록에 자신의 것을 덧붙였다. 그가 무엇을 하라고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 그녀가 그 순간 스스로 원하는 것만을 보여줄 것. 그리고 —

[지오] 멈추고 싶으면 언제든 "겨울"이라고 말해요. 그 순간 나는 카메라를 끕니다. 이유는 묻지 않아요.

이서는 그 단어를 오래 바라보았다. 겨울. 왜 하필 그 단어냐고 묻자 지오는 잠깐의 침묵 끝에 답했다.

[지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라서요. 나쁜 뜻으로 쓰이는 말이 아니었으면 해서.

그 대답에 이서는 웃었다. 소리 내어, 오랜만에.

규칙은 그렇게 하나씩 쌓여갔다. 카메라 각도는 얼굴 전체가 아니라 눈 아래에서 시작하는 프레임으로 — 이건 지오가 제안했다. "당신 얼굴을 다 보고 나면, 나는 아마 이 사람을 실제로 만나고 싶어질 것 같아서요." 그때는 그 말이 그저 조심스러운 배려로만 들렸다. 이서는 몰랐다, 그 말 안에 이미 씨앗처럼 심겨 있던 예감을.

연락은 텍스트로만 주고받는다. 전화도, 음성 메시지도 하지 않는다 — 목소리는 오직 세션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렇게 하면 목소리가 더 특별해질 거라고 이서가 말했고 지오는 동의했다. 사진은 주고받지 않는다. SNS 계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서로가 사는 도시조차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 다, 늦은 밤 서울 어딘가의 다른 방에 있다는 사실만 안다.

가장 마지막 규칙은 이서가 썼다.

[이서] 세션이 끝나면 "다 보여줬어"라고 말할게요. 그럼 지오 씨는 "고마워"라고 답해줘요. 그 인사가 끝나야 진짜 끝이에요.

지오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달지 않고, 대신 그날 밤 처음으로 조금 다른 말을 보탰다.

[지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왜 하필 나였어요? 플랫폼엔 후원자가 열둘이었잖아요.

이서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이서] 다른 사람들은 내 몸을 보고 무언가를 상상했어요. 지오 씨는 내 몸을 보면서 나를 봤어요.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아요.

그날 이후 그들은 이 문법 안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규칙은 감옥이 아니라 오히려 무대의 경계선 같은 것이었다. 경계가 분명할수록 그 안에서는 더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다. 이서는 자신의 노출 성향이 언젠가부터 수치심과 짝지어져 있었다는 걸, 지오를 만나고서야 깨달았다. 예전 애인은 그녀가 보여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서 "그럼 다른 사람이랑 나눠 갖는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오래 그녀 안에 박혀 있었다. 지오는 그 반대였다. 그는 그녀가 보여지고 싶어 하는 것을, 그녀라는 사람의 일부로, 존중받아 마땅한 욕망으로 대했다.

지오 쪽에도 자기만의 사정이 있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이 만지는 것보다 보는 것에서 더 큰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가 상대에게 "넌 정말로 나를 원하는 게 맞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욕망이 결핍처럼, 뭔가 모자란 형태처럼 취급받는 그 순간을 그는 오래 곱씹었다. 이서와의 이 관계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걸 느꼈다.

규칙을 정한 날 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세션 없이 그저 이야기만 나누었다. 화면은 꺼둔 채, 텍스트로만. 열두 시가 넘어가고, 새벽 한 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이서] 이상하죠. 우리,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데.

[지오] 이상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을 손끝이 아니라 눈으로 만졌으니까요.

이서는 그 문장을 오래 저장해두었다. 그 문법 안에서라면, 이 관계는 결코 모자란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