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이기는 이유
무법일이 시작된 지 정확히 일 년이 되던 일요일, 하영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옆에서 곤히 자는 규현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오늘이 그날이네."
규현이 눈을 뜨며 웃었다. "일 년 됐다는 거 기억하고 있었어?"
"당연하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요일인데."
"오늘은 뭐 준비했어?"
하영은 대답 대신 그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 위에 얹었다. "오늘은... 계획표 없어."
"진짜?"
"응.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짜고 왔어.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고 싶어서."
규현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무법일이 아니잖아."
"아니야, 오히려 진짜 무법일이야. 규칙 없는 날에 자기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 것도, 결국 내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그 말에 규현은 잠시 말을 잃었다. 일 년 전 그날 밤, 그녀에게 완벽하게 이기는 하루를 만들어주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통제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 하영은 그 통제를 다시 그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의 경계가 두 사람 사이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럼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해도 돼?"
"응. 뭐든."
규현은 그녀를 부드럽게 눕히고 이마에, 눈가에, 콧등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평소의 벌도, 그녀의 반란도 아닌,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온전한 손길이었다.
"하영아, 나 오늘 너한테 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평소처럼 명령 안 할 거야. 그냥... 네가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하나하나 보여주고 싶어."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지나 쇄골로, 가슴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하영이 숨을 삼키며 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규현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시간을 들였다.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혀끝으로 예민한 곳을 자극하다가, 배를 지나 허벅지 안쪽까지 입을 맞추며 내려갔다.
"규현아... 천천히 하지 마..."
"오늘은 천천히 할 거야. 하나도 안 놓치고 싶어서."
그의 혀가 마침내 그녀의 가장 예민한 곳에 닿았을 때, 하영의 허리가 크게 휘었다. 규현은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좋아하는 리듬을 찾아 정성껏 움직였다. 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어 함께 자극하자 하영의 신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앙... 규현아, 나 진짜 좋아... 자기 진짜 좋아해..."
"나도. 사랑해, 하영아."
그 말과 함께 그는 그녀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몸을 떨며 무너지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규현은 조금 더 그녀를 느낀 뒤 천천히 자신을 밀어 넣었다. 이미 여러 번 절정을 넘나든 그녀의 몸은 그를 부드럽게, 그러나 뜨겁게 받아들였다.
"아... 규현아, 깊어..."
"괜찮아?"
"완전 좋아. 계속해줘."
그는 느리고 깊게 움직이며 그녀의 눈을 마주 봤다. 격렬함보다 깊은 밀착이 두 사람을 채웠다. 하영은 그의 등을 끌어안고 다리로 허리를 감싸며 그를 더 안으로 끌어당겼다.
"규현아, 나 이 순간 진짜 좋아해. 매주 이날이 오는 게."
"나도. 처음엔 좀 무서웠는데... 이제는 이 날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왜?"
규현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네가 이기는 걸 보는 게, 사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 너한테 완전히 지는 하루를 만들어주는 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더라고."
하영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당겨 깊이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럼 나도 말해줄게. 나는 자기가 나 이기게 해주는 그 순간에, 자기가 날 얼마나 믿는지 느껴. 그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순간이야."
두 사람은 서로의 고백에 더 깊이 몸을 밀착했다. 규현이 속도를 조금씩 올리자 하영도 그 리듬에 맞춰 허리를 움직였다. 절정이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숨과 신음이 하나로 얽혔다.
"규현아, 같이—"
"그래, 같이 가자."
마침내 두 사람은 동시에 무너져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 떨림이 가라앉을 때까지 서로를 놓지 않고 끌어안았다.
숨을 고르며 하영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다음 무법일엔 또 뭐 할까."
"글쎄. 근데 이제 알겠어. 뭘 하든 상관없다는 거."
"왜?"
규현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네가 이기는 날이든, 내가 이기는 날이든, 결국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게 제일 큰 승리니까."
하영이 그 말에 웃으며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창밖으로 일요일의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었고, 여섯 날의 규칙과 단 하루의 무법 사이에서 두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서로에게 지고 서로에게 이기며 사랑해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