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나자"
토요일 밤, 이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스탠드를 켰다. 화면이 연결되고, 지오의 눈이 나타났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그의 눈빛에 평소의 고요함 대신 어떤 결심 같은 것이 실려 있었다. 이서는 그걸 즉시 알아챘다. 반년을 지켜본 눈이었다.
[지오] 오늘은, 시작하기 전에 할 말이 있어요.
이서의 손이 셔츠 단추 위에서 멈췄다. "무슨 일이에요?"
[지오] 며칠 동안 계속 생각한 게 있어요. 말하지 않으면 이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화면 저편에서 그가 숨을 고르는 게 마이크를 타고 전해졌다.
[지오] 이제 만나자.
세 글자가 방 안에 떨어졌다. 이서는 잠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화면을 바라보았다. "만나자"는 말이 이토록 낯설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반년 동안 매주 두 번씩 서로의 몸을 지켜봐 온 사이인데, 정작 '만나자'는 그 단순한 단어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말처럼 느껴졌다.
"...지오 씨."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갑자기요?"
[지오] 갑자기는 아니에요. 나는 아마 오래전부터 원했던 것 같아요. 다만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
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성에 낀 유리에 손을 대고, 그 차가움을 느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화면 밖으로 나갔지만, 그녀는 지오가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이 방식이 부족해서 이러는 거예요?" 그녀가 등을 돌린 채 물었다. "내가 부족했어요?"
[지오] 아니요. 정반대예요. 부족해서가 아니라 — 이게 너무 좋아서, 이걸 만든 사람이 어떤 얼굴로 웃는지, 어떤 손으로 커피잔을 잡는지, 그런 것도 다 알고 싶어졌어요.
이서는 그 대답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된 두려움이 목 안쪽에서 차오르는 것도 느꼈다.
"그럼 만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녀가 돌아서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대로도 우린 서로를 알잖아요. 어쩌면 실제로 만나면 실망할 수도 있어요. 화면 속의 나랑, 그냥 서 있는 나는 다를 수도 있고."
[지오] 다르겠죠. 하지만 나는 그 다름도 알고 싶어요.
"나는," 이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지오 씨 앞에서 이렇게 나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게, 이 거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화면이 있어서, 그 사이에 유리 한 장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그 유리를 치우면… 나는 다시 예전처럼 숨을 참는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워요."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오는 그 침묵을 채우려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오] 무섭다는 말, 이해해요. 나도 무서워요. 내가 만지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 당신이 실망할까 봐. 그런데 이서 씨, 나는 오늘 이 말을 하려고 이미 결심했어요. 대답은 지금 안 해도 돼요. 다음에, 그다음에, 천천히 생각해줘요.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이서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세션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오늘은… 그냥 얘기만 하면 안 돼요? 몸은, 다음에."
[지오] 물론이에요. 얼마든지.
두 사람은 그날 밤, 처음으로 아무것도 벗지 않은 채 두 시간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좋아하는 계절, 싫어하는 음식.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이서에게는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화면 속에 옷을 입은 채 앉아 있는 지오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보였다.
세션이 끝나갈 무렵 이서가 나직이 물었다. "지오 씨는… 정말 내가 결핍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든 이 방식이."
[지오] 결핍이 아니에요. 다만 나는 이제, 이게 유일한 형태여야 하는지, 아니면 여러 형태 중 하나일 수 있는지 궁금한 거예요.
이서는 그 문장을 오래 곱씹었다. 그날 밤, 그녀는 평소보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