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순간

네 번째 무법일, 하영은 정말로 규현을 놀라게 할 계획을 들고 왔다. 전날 밤부터 그녀는 유난히 들떠 있었고, 침대 협탁에는 새로 산 안대와 부드러운 로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늘은... 완전히 반대로 해볼래."

"반대로?"

"응. 오늘 하루는 자기가 완전히 내 거야. 눈도 가리고, 손도 묶고.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야."

규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이번엔 뭔가 다른 느낌이 스쳤다. 그래도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늘은 완전히 네 거야."

안대가 시야를 덮고, 로프가 손목을 헤드보드에 고정하는 동안 규현은 평소와 다른 낯선 감각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통제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애써 몸에 힘을 빼며 하영을 믿기로 했다.

하영은 그의 몸 위를 천천히 훑으며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목덜미, 가슴, 배. 그녀의 손길은 평소보다 대담했고, 그가 반응할 때마다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자기가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볼 거야."

그녀는 그를 손과 입으로 애태우다가, 절정 직전에서 멈추기를 반복했다. 처음 두 번은 규현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세 번째, 네 번째가 되자 몸이 점점 예민해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안대 때문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하영아... 이제..."

"아직 안 돼. 오늘은 내가 정해."

다섯 번째로 멈춰졌을 때, 규현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즐거움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손목이 로프에 눌려 저릿했고, 보이지 않는 상태로 계속되는 애태움에 마음 한구석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그가 하영에게 주던 통제감을, 지금은 반대로 자신이 잃고 있었다.

"하영아, 잠깐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변화를 하영은 놓치지 않았다. 장난기 가득했던 손이 멈췄다.

"왜, 무슨 일이야?"

"...옐로우."

약속된 신호. 완전히 멈추라는 뜻은 아니지만, 속도를 늦추고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뜻. 하영은 그 즉시 로프를 풀고 안대를 벗겼다.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괜찮아? 아팠어? 아니면—"

규현은 눈을 깜빡이며 밝은 조명에 적응했다. 손목을 몇 번 움직여보고, 그녀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픈 건 아니야. 그냥... 안 보이는 채로 계속 못 가게 막히니까, 잠깐 답답했어.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 자기 지금 손 떨고 있잖아."

하영은 그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붉게 눌린 자국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품에 파고들며 물었다.

"우리 그만할까?"

규현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정리하듯 천천히 말했다.

"아니. 계속해도 돼. 근데... 눈은 좀 열어두고 싶어. 손은 묶여 있어도 괜찮은데, 안 보이는 채로 오래 있는 건 생각보다 힘들더라."

"그럼 처음부터 말하지..."

"나도 몰랐어. 해보니까 알겠더라."

하영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이마를 맞댔다. "말해줘서 고마워. 무법일이어도 자기가 진짜 싫은 건 안 시킬 거야. 절대."

"알아. 그러니까 말한 거야."

그 말에 담긴 신뢰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부드럽게 바꿔놓았다. 하영은 안대를 옆으로 치워버리고, 대신 그의 손목을 풀지 않은 채 그의 위에 다시 올라앉았다.

"그럼 이렇게. 손만 묶고, 눈은 열어두고."

규현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래, 이제 좋다."

하영은 다시 천천히 그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가 눈으로 그녀를 볼 수 있었고,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좇으며 안심했다. 애태움 끝에 그녀가 마침내 그를 받아들였을 때, 규현은 묶인 손으로도 그녀의 허리를 느끼려는 듯 헛되이 움직였다.

"손대고 싶어."

"오늘은 안 돼. 대신 눈으로 봐."

하영은 그의 몸 위에서 천천히, 그러다 점점 격렬하게 움직였다. 규현은 묶인 채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신음했고, 그 시선이 하영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 절정이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숨이 뒤엉켰고, 결국 하영이 먼저 무너지며 그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 규현도 곧 그녀 안에서 함께 풀려났다.

숨을 고르며 하영이 손을 뻗어 로프를 풀었다. 자유로워진 규현의 팔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오늘 무서웠어?"

"아니. 그냥...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어. 근데 네가 바로 멈춰줘서 괜찮았어."

"당연하지. 자기가 나한테 해주는 것처럼, 나도 자기 말 들어야지."

규현은 그녀의 이마에 오래도록 입을 맞췄다. 무법일이라는 이름 아래서도, 결국 두 사람을 지탱하는 건 규칙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그 사실이 오늘 처음으로 선명하게 확인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