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계 — 문을 잠그면 시작되는 것
산장까지 마지막 삼십 분은 언제나 강현이 직접 운전했다. 체인을 감은 타이어가 눈 쌓인 임도를 밟을 때마다 한나는 조수석에서 창밖을 봤다. 전나무 숲이 짙어질수록, 휴대폰 신호가 한 칸씩 사라질수록, 몸 어딘가에서 스위치가 서서히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올해도 사흘." 강현이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네." 한나가 대답했다. 진입로 초입,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히는 지점에서 그녀는 휴대폰 전원을 껐다. 화면이 까맣게 꺼지는 순간, 회사와 친구들과 SNS에 소속돼 있던 자신의 한 조각도 함께 꺼지는 기분이었다.
이 산장에서의 사흘은 두 사람이 만난 지 사 년째 되던 해부터 시작된 전통이었다. 처음엔 겨우 하루짜리 실험이었다. 완전한 권력교환, 두 사람이 부르는 말로는 TPE. 한나가 강현에게 자신의 모든 결정권을 넘기고, 강현이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드는 것. 서울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물네 시간 내내 역할이 유지되려면, 일과 사람들과 시계로부터 물리적으로 끊어질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매년 첫눈이 내릴 즈음 이 산장을 예약했다. 정확히는 강현이 예약을 했고, 한나는 그 사실을 통보받았다 — 그것이 이미 시작의 일부였다.
차가 마당에 멈추자 강현이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한나는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고 내렸다.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바람에서 나무 냄새와 눈 냄새가 동시에 났다.
짐을 나르는 동안에는 아직 평소의 두 사람이었다. 강현이 캐리어를 들고, 한나가 식료품 박스를 안고, 둘이 나란히 걸으며 겨울 산의 적막에 대해 잡담을 나눴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강현이 그 문을 닫는 순간 — 그리고 잠그는 순간 — 공기가 달라졌다. 한나는 그 변화를 몸으로 먼저 느꼈다. 어깨가 저절로 내려가고, 시선이 저절로 낮아졌다.
강현이 거실 한가운데 서서 그녀를 봤다. 평소의 다정한 눈빛이 아니었다.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짐 풀기 전에, 규칙부터." 그가 낮은 테이블 위에 두 장의 종이를 펼쳤다. 매년 다시 쓰는 계약서였다. 새로 쓰는 이유는 매번 두 사람의 한계가 아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바뀐 거 있으면 지금 말해. 여기 서명하고 나면 사흘 동안은 이게 우리 둘의 법이야."
한나는 종이를 읽었다. 익숙한 항목들이었다. 호칭은 '주인님'과 '한나'. 허락 없이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허락 없이 앉거나 눕지 않는다. 화장실은 매번 보고한다. 식사는 지시받은 방식으로만 한다. 그리고 맨 아래, 가장 중요한 줄 — 세이프워드는 신호등 색이었다. 초록은 계속, 노랑은 강도를 낮춰달라는 뜻, 빨강은 즉시 전면 정지. 빨강이 나오면 역할이고 뭐고 그 순간 두 사람은 그냥 강현과 한나로 돌아간다. 이 규칙만큼은 사 년째 한 글자도 바뀐 적이 없었다.
"올해 새로 추가하고 싶은 거 있어?" 강현이 다정하게, 그러나 그 순간만은 동등한 목소리로 물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이 목소리였다.
한나는 잠시 생각했다. "몸살 기운 있는 날은... 노랑 안 쓰고 그냥 말로 말해도 될까요. 최근에 그게 편했어요."
"좋아." 강현이 그 줄을 손으로 써넣었다. "다른 건."
"없어요."
"나도 없어." 그가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확인할게. 한나, 이 사흘 동안 네 몸과 시간에 대한 모든 결정을 나한테 맡기는 거 동의해?"
"네, 주인님." 이번엔 호칭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서명란에 이름을 적는 순간, 한나는 그 문장이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건 신뢰의 계량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이 사람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아도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는 의식.
서명이 끝나자 강현이 종이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그녀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오늘부터 사흘, 너는 내 거야."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무섭거나 싫으면 언제든 빨강. 알지?"
"네."
"짐 풀어. 그다음엔 목줄 채울 거야."
한나는 고개를 숙이고 짐 쪽으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굵고 조용한 눈이었다. 이 산장의 벽 안에서, 세상과 완전히 끊긴 채로, 두 사람만의 사흘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