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커피

재원이 시현에게 먼저 연락했다. "토요일 얘기하기 전에, 우리 둘이 먼저 잠깐 볼까요." 문자를 보내면서도 재원은 스스로 조금 놀랐다. 원래라면 그는 이런 식의 사전 조율을 좋아하지 않았다. 계획은 최종 회의에서 한 번에 정리하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유나가 무너지듯 울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이번만큼은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시현은 의외로 흔쾌히 응했다. 목요일 오후, 두 사람은 회사 근처도 아니고 유나의 집 근처도 아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동네의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한 건 재원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 십 분 일찍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현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재원을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보였다.

"일찍 오셨네요."

"습관이라서요."

두 사람은 커피를 주문하고 마주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 아니었다. 유나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만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둘만 따로 만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재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나가 힘들어해요. 우리 둘 사이에서요."

"압니다." 시현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저도 알고 있었어요, 사실. 그냥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던 거지."

"그쪽도 화났었죠. 저번 목요일 일 때문에."

시현은 잠시 재원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경계심과 동시에, 이상하게도 안도감 비슷한 것이 섞여 있었다.

"화났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근데 그게 재원 씨한테 화난 건지, 상황 자체에 화난 건지 저도 헷갈렸어요. 재원 씨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일부러는 아니었어요. 근데 결과적으로 내 일정이 자꾸 당신 시간을 침범한 건 사실이에요. 그건 인정해야죠."

시현은 그 솔직함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이런 얘기, 재원 씨가 먼저 꺼낼 줄은 몰랐어요."

"저도 이런 얘기 좋아하지 않아요." 재원이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유나가 우는 걸 보니까, 안 좋아한다고 안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시현은 잠시 커피잔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사실, 재원 씨한테 처음부터 좀 복잡한 감정이 있었어요. 유나가 재원 씨 얘기할 때,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지어요. 저랑 있을 때랑은 또 다른. 그게 질투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했어요. 사람이 두 사람을 동시에 이렇게 다르게, 이렇게 깊게 사랑할 수 있구나 싶어서."

"저도 비슷해요." 재원이 인정했다. "처음엔 당신이 나타났을 때, 유나가 나한테서 뭔가 부족함을 느껴서 다른 사람을 찾은 건가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 보면,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유나는 나한테서 얻는 것과 당신한테서 얻는 게 달라요. 나는 유나한테 구조를 줘요. 확실한 규칙, 예측 가능한 안정감. 당신은…"

"저는 숨 쉴 공간을 주는 것 같아요." 시현이 말을 이었다. "규칙 없이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

"그거예요." 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문제는, 그 두 가지가 지금 서로 부딪히고 있다는 거죠. 유나가 그 사이에서 다 감당하고 있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재원 씨가 유나한테 너무 엄격한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어요. 문서로 규칙 정리해서 보내고, 아홉 시 넘으면 연락 안 왔다고 그렇게 반응하고. 근데 오늘 얘기해보니까, 그게 그냥 무심한 통제가 아니라 재원 씨 나름의 방식으로 유나를 챙기는 거였네요."

"저도 솔직히 말할게요." 재원이 답했다. "당신이 규칙을 문서화 안 하고 대화 속에서만 던지는 거, 처음엔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것도 결국 당신 방식의 배려더라고요. 유나를 몰아붙이지 않으려는."

"우리 둘 다, 방식은 다른데 결국 같은 걸 원하고 있었네요." 시현이 옅게 웃었다. "유나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

재원도 처음으로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요."

"근데 그거랑 별개로," 시현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재원 씨는 진짜 좀 빡빡해요. 커피 마시는 것도 각 잡고 마시는 거 보니까."

"당신은 너무 헐렁해요. 규칙이 없으면 사람이 불안해지는 순간도 있는데, 그걸 자꾸 대화로만 풀려고 하잖아요."

"그거 지금 저 흉보는 거예요?"

"관찰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동시에 픽 웃었다.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이었다.

"토요일에 셋이 만나서," 재원이 말했다. "이거 제대로 정리해봅시다. 저는 문서로 정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초안은 제가 준비할게요. 대신 당신이 검토해줘요. 내가 놓치는 부분, 분명히 있을 테니까."

"좋아요. 저는 그 자리에서 분위기 너무 딱딱해지면 중간중간 풀어볼게요. 그것도 제 역할인 것 같으니까."

"그거면 충분해요."

카페를 나서면서 재원이 손을 내밀었다. 시현은 그 손을 잡았다. 짧은 악수였지만, 그 안에는 조금 전까지 없던 종류의 신뢰가 담겨 있었다.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이건 유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 자신을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