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의 목요일

시현의 집 현관문은 늘 잠겨 있지 않았다. "어차피 너 올 시간엔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걸."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유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는데, 정말로 시현은 유나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문 앞 계단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목요일 저녁, 유나가 도착하자 시현은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서 나왔다. "타이밍 좋다. 방금 다 됐어." 식탁에는 파스타 두 접시가 놓여 있었다. 재원의 집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재원과의 시간은 늘 규칙과 보고로 시작됐지만, 시현과의 시간은 저녁을 먹으며 하루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늘 팀장이 또 이상한 소리 했다며." 시현이 포크를 돌리며 물었다.

"어떻게 알아?"

"어제 문자로 얘기했잖아, 기억 안 나?" 시현이 웃었다. "너 스트레스받으면 이모티콘을 안 쓰더라. 그거 보고 알았어."

유나는 그 세심함에 매번 놀랐다. 시현은 문서로 규칙을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유나의 습관, 표정, 문자의 온도까지 기억했다가 슬쩍 짚어내는 사람이었다. 그게 시현의 방식이었다. 규칙이 대화 속에 녹아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규칙인지 유나 스스로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함께 끝낸 뒤, 시현은 유나의 손을 잡고 소파로 데려갔다. 분위기가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 시현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장난스럽던 눈빛이 다른 종류의 진지함으로 바뀌는 순간.

"오늘 밤엔 좀 다르게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말 안 하기. 네가 원하는 걸 말로 하지 마. 내가 알아서 찾아낼게."

유나는 그 말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시현과의 시간은 늘 이런 식이었다. 강압적으로 명령하기보다, 유나가 스스로 그 상황에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것. 그런데도 결국 도착하는 곳은 완전한 항복이었다.

시현은 유나를 소파에 눕히고 천천히 옷을 벗겼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유나의 목덜미에서 시작해 쇄골, 가슴, 배로 천천히 내려갔다. 유나가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들썩이자 시현이 낮게 웃었다.

"조급해하지 마. 나 오늘 시간 많아."

그 말대로 시현은 정말 서두르지 않았다. 그의 손은 유나의 몸 구석구석을 탐색하듯 어루만졌고, 유나가 어디서 숨을 참는지, 어디서 몸을 떠는지 정확히 읽어냈다. 시현의 손가락이 유나의 허벅지 안쪽을 스치자 유나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소리 내도 돼. 여긴 재원 씨 집 아니잖아." 시현이 웃으며 말했다. 재원을 언급할 때도 시현의 목소리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듯 담백했다.

시현의 입술이 마침내 유나의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그의 혀가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움직이자 유나는 소파 쿠션을 움켜쥐었다. 시현은 유나가 절정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면 속도를 늦췄고, 유나가 애가 타서 몸을 비틀면 그제야 다시 속도를 올렸다. 그 밀당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유나는 거의 울먹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현아, 제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가 고개를 들며 짓궂게 웃었다. "그래도 특별히 봐줄게. 오늘은."

시현은 마침내 유나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유나가 절정에 도달해 몸을 떨자,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나를 품에 안아 올렸다. 그의 손이 땀에 젖은 유나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잘했어."

침실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그 부드러움은 이어졌다. 시현이 유나의 안으로 들어올 때, 그는 계속 유나의 눈을 바라보며 표정 하나하나를 읽었다. 그의 움직임은 재원처럼 치밀하게 계산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유나의 반응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흘러가는 종류의 리듬이었다. 두 사람의 몸이 함께 움직이는 동안, 유나는 이 관계가 재원과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똑같이 깊은지 새삼 느꼈다.

모든 게 끝난 뒤, 시현은 유나를 품에 안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물 마실래?" 그가 물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현은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갔다가, 돌아와서는 유나 옆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다음 주 목요일 말인데." 시현이 물을 건네며 말했다. "그날 나 저녁 약속 하나 옮길까 해. 우리 둘이 오랜만에 영화 보러 갈까 싶어서."

유나는 물을 마시다 말고 잠시 멈췄다. 다음 주 목요일이면, 재원이 삼십 분만 보자고 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그, 다음 주 목요일에 재원 님이 잠깐 볼 일이 있대. 저녁에."

시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유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몇 시에?"

"여덟 시쯤."

"영화는 일곱 시 반 거 보려고 했는데." 시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시간 맞으면 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현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미묘한 결이 섞여 있었다. 유나는 그 결을 알아챘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그냥 시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시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나를 다시 품에 안았지만, 유나는 그의 심장 소리가 아주 살짝 빨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