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
시작은 삼 년 전, 강남대로 위였고, 비가 왔고, 윤희는 울지 않았다.
그날 회사는 첫 번째 임상을 실패했다. 팔 년을 넣은 파이프라인이었다. 오후 다섯 시에 결과가 왔고, 여섯 시에 이사회 긴급 콜이 있었고, 일곱 시에 그녀는 열한 명에게 "제 책임입니다"라고 말했고, 열한 명은 "아닙니다, 대표님"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아니라는 말. 그녀가 책임이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그렇다고 해주지 않는 것.
일곱 시 사십 분, 차 안. 강석은 평소처럼 말이 없었다. 윤희는 태블릿을 열지 않았다. 창밖으로 빗물이 사선으로 흘렀고, 그녀는 자기 손을 보고 있었다. 이 손이 결재한 것. 이 손이 사인한 것. 이 손이 팔 년 동안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밀어붙인 것.
"강 기사."
"네, 대표님."
"하나만 시켜봐요."
룸미러에 그의 눈이 잠깐 비쳤다. 그는 무슨 뜻인지 되묻지 않았다. 그것이 첫 번째였다. 되묻지 않은 것.
"뭐든지. 나한테 뭐 하라고 말해봐요. 한 번만."
와이퍼가 두 번 움직였다. 강석은 앞을 보고 말했다.
"안전벨트 매십시오."
윤희는 자기 어깨를 내려다봤다. 매고 있지 않았다. 육 년 중 처음이었다. 그녀는 벨트를 당겨 채웠고, 딸깍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무언가가 함께 채워졌다.
"…됐어요."
"네."
그게 다였다. 그는 그 뒤로 한남동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녀도 하지 않았다. 아파트 앞에서 그가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내리지 않고 앉아 있었다.
"강 기사는 왜 그 말을 골랐어요."
"대표님이 안 매고 계셨으니까요."
"그게 다예요?"
"필요한 걸 시키는 게 시키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누구한테."
"군대에서요." 그는 우산을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나쁜 상관은 자기가 필요한 걸 시키고, 좋은 상관은 상대가 필요한 걸 시킵니다."
윤희는 그 문장을 그 뒤 일주일 동안 매일 생각했다. 회의에서 생각했고, 샤워하면서 생각했고, 새벽 세 시에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스무 년 동안 상관이었다. 자기가 필요한 걸 시켰다.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 도시에 단 한 명이었고, 그 사람은 그녀의 차를 몰았다.
이 주 뒤, 그녀는 그에게 봉투를 건넸다. 차 안이 아니라 아파트 현관에서, 그가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돌아서려던 순간에.
"읽고 답을 주세요. 거절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연봉도, 자리도. 그건 약속해요."
봉투 안에는 세 장이 있었다. 첫 장은 그녀가 원하는 것. 둘째 장은 원하지 않는 것. 셋째 장은 비어 있었다. "이 장은 강 기사가 채우세요"라고만 적혀 있었다.
첫 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시받고 싶다. 성적인 맥락에서. 모욕적인 언어를 포함해서. 그 사람이 당신이면 좋겠다. 이유는 당신이 안전벨트를 골랐기 때문이다.
강석은 사흘 뒤 봉투를 돌려줬다. 역시 현관에서. 셋째 장에는 그의 글씨로 세 줄이 있었다.
차 안에서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차 안에서 저는 기사입니다.
근무 시간에도 하지 않습니다.
시작과 끝을 알리는 행동을 하나 정해주십시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윤희는 그 세 줄을 읽고 처음으로 웃었다. 임상 실패 이후 처음이었다.
"차 안이 왜 안 돼요?"
"제가 운전을 못 하게 되니까요."
"…운전을 못 하게 된다고요."
"대표님을 그런 식으로 부르면서 시속 팔십을 낼 수는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죽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그것은 농담이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한계를 그녀를 위해 썼다. 차 안은 그의 것이었다. 그가 완벽한 곳. 그 완벽을 그는 이 일과 섞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는 스무 년 동안 그런 식으로 자기 것을 지키는 사람을 채용하려고 애썼고 대개 실패했다.
"행동은 뭘로 할까요."
"대표님이 정하십시오. 대표님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가져갈 수 있는 것."
윤희는 자기 귀를 만졌다. 진주. 상장하던 날 산 것. 회사가 그녀에게 준 것 중 가장 작고 가장 무거운 것.
"이거."
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요."
"이름은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를 뭐라고 부를 거냐고요. 그 시간에."
"그것도 대표님이 정하십시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정하지 않았다. 그 주 내내 이름을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은 윤희였고, 그것은 어머니가 지었고, 명함에 박혀 있고, 특허에 올라가 있고, 열한 명이 하루 백 번쯤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 안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그다음 주 금요일, 현관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귀걸이를 빼서 그의 손에 놓았다. 손이 떨렸다. 마흔다섯 살이었고, 손이 떨리는 건 이십 년 만이었다.
"순이."
강석이 눈썹을 조금 올렸다. 그가 얼굴로 무언가를 표현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순이요?"
"아무도 아닌 애 이름이에요." 윤희가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애. 우리 어릴 때 만화에 나오던, 부르면 '네' 하고 오는 애. 나는 평생 한 번도 그 애였던 적이 없어요."
강석은 진주 두 알을 손안에서 굴렸다. 그러고 나서 손을 닫았다.
"순이."
"네."
그녀가 '네'라고 말한 순간, 그는 그녀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옷을 벗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 한 잔 떠 와."
윤희는 잠깐 멈췄다. 그러고 나서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떠 왔다. 자기 집에서, 자기 정수기에서, 자기 컵에. 그리고 그것을 두 손으로 그에게 건넸다. 그는 반을 마시고 나머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마셔."
그녀는 마셨다.
"이제 앉아. 저기." 그는 현관 바닥을 가리켰다.
첫날 밤, 그는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물을 떠 오게 하고, 앉게 하고, 일어나게 하고, 다시 앉게 했다. 그녀가 짜증을 내려 할 때마다 "누가 말하라고 했어"라고 했다. 아홉 시 반, 그가 진주를 돌려줬을 때 윤희는 현관 바닥에 앉아 있었고, 온몸이 젖어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십 년 만에 가장 깊이 잠들 것 같았다.
"왜 안 했어요."
"뭘 말씀이십니까."
"알잖아요."
"첫날은 대표님이 '네'라는 말을 하실 수 있는지 보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재킷을 입었다. "하실 수 있으시더군요. 마흔한 번."
"…세었어요?"
"네, 대표님."
문이 닫혔다. 윤희는 현관에 앉은 채로 웃었다. 소리가 나는 웃음이었다. 아파트가 넓어서 그 소리가 어디에도 닿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네'라고 마흔한 번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세어준 사람이 있었다.
단어를 정하는 일은 그다음 달에 시작됐다. 그것은 계약서였고, 그녀는 계약서에는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