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를 빼는 순서

오후 네 시, 세온바이오 12층 회의실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여는 사람은 언제나 윤희였다.

"조 부사장님, 그 숫자는 제가 다섯 번째 듣는 숫자예요. 여섯 번째엔 다른 숫자를 가져오세요."

조민규 부사장은 쉰다섯이었고, 이 회사에 온 지 삼 년째였고, 자신이 왜 아직 부사장인지 매일 아침 세면대 앞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웃었다. 잘 웃는 남자였다. 윤희는 그 웃음이 몇 초 만에 사라지는지 세었다. 이 초. 작년보다 반 초 빨라졌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열한 명이 일어섰고, 열한 명이 그녀가 먼저 문을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그 기다림이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된 것인지 알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스무 년 동안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들이 이 건물 안에서는 저절로 일어났다.

미주 실장이 복도에서 따라붙었다. "내일 아침 일곱 시 반 조찬, 여덟 시 사십 분 투자자 콜, 열 시에 연구소장님—"

"알아요."

"네, 대표님."

윤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기 얼굴을 봤다. 마흔여덟.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상태인지 아는 사람만이 그 얼굴을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그녀에게 '하지 마'라고 말한 게 언제였는지 윤희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어머니였을 것이고, 아마 스물다섯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는 모두가 '네, 대표님'이었다. 그 말은 처음 오 년은 술처럼, 다음 십 년은 물처럼, 그다음부터는 공기처럼 들렸다. 공기는 고마운 것이지만 아무도 공기에게 안녕하냐고 묻지 않는다.

지하 주차장에 검은 G90이 서 있었다. 강석이 뒷문을 열고 반 걸음 물러섰다.

"대표님."

그게 다였다. 육 년 동안 그는 이 두 글자 외에 먼저 말을 꺼낸 적이 거의 없었다. 마흔. 어깨가 넓고 목이 굵고, 운전할 때 뒷덜미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남자. 윤희는 뒷좌석에서 태블릿을 열었고 그는 한남동까지 사십 분을 정확히 사십 분에 맞췄다. 신호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는 대로, 그는 그것을 사십 분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능력인지 알았고, 그 능력에 회사에서 가장 높은 기사 연봉을 지불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표와 기사. 그것이 규칙이었고, 규칙은 둘 다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아파트 문이 닫히는 소리는 언제나 그녀에게 스위치 소리처럼 들렸다. 강석은 서류가방을 현관 벤치에 내려놓고 그 옆에 섰다. 기사 재킷을 벗지 않았다. 아직이었다.

윤희는 현관 한가운데 서서 왼쪽 귀걸이를 뺐다. 진주. 어머니가 물려준 것이 아니라 상장하던 날 자기 돈으로 산 것. 그다음 오른쪽. 두 알을 손바닥에 모아 그에게 내밀었다. 강석의 손이 그 아래를 받쳤고, 그녀가 손을 뒤집자 진주 두 알이 그의 손바닥으로 떨어질 때 작은 소리가 났다. 그의 손가락이 닫혔다.

"순이."

"네."

그 한 글자를 말하는 데 윤희의 어깨가 얼마나 내려가는지, 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놀랐을 것이다. 회의실에서 열한 명이 기다렸던 그 어깨가 삼 센티쯤 낮아졌다. 목소리도 달라졌다.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얇아졌다. 명령을 내리던 폭이 사라지고 대답만 남은 폭.

"오늘 회의는 어땠어."

"조 부사장이—"

"누가 물었어."

윤희는 입을 다물었다.

"순이한테 회의가 어디 있어."

"…없습니다."

"그럼 대답을 뭐라고 해야 돼."

"모릅니다. 순이는 회의 안 갑니다."

"그렇지." 강석은 벤치에 앉았다. 재킷을 입은 채로, 무릎을 벌리고, 기사가 아니라 이 집 주인처럼. "옷 벗어. 여기서."

윤희는 구두를 벗었다. 재킷을 벗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위에서부터 풀었다. 그녀가 옷을 벗는 동안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 자기 손바닥 안의 진주를 봤다. 스커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스타킹. 브래지어. 마지막 한 장을 내릴 때 그녀는 잠깐 멈췄고, 그가 눈을 들지 않는데도 그 멈춤을 알아챈다는 걸 알았다.

"그거 윤 대표 옷이야. 잘 개켜. 순이는 남의 옷 함부로 다루면 안 되지."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십이만 원짜리 블라우스를 팔부터 접었다. 회사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접지 않았다. 접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여기서는 그녀가 접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스커트를 개켜 벤치 위에 올려놓을 때, 그녀는 알몸이었고, 그는 여전히 재킷을 입고 있었다.

"이리 와."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은 윤 대표가 하는 일이었다. 무릎으로 두 걸음, 대리석이 차가웠다. 그의 벌어진 무릎 사이에 이르자 그가 손을 내려 그녀의 턱을 들었다. 손가락 두 개가 입술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벌써 젖었지. 대답."

입에 손가락이 든 채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그가 손가락을 뺐다. 침이 턱까지 이어졌고 그녀는 닦지 않았다. 닦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네. 젖었습니다."

"뭐가."

"…제가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윤 대표야." 그의 목소리는 한 번도 높아지지 않았다. 운전할 때와 같은 목소리였다. "순이는 어떻게 말하지."

윤희는 눈을 감았다. 그 단어를 처음 종이에 적었던 밤이 떠올랐다. 그녀가 골랐다. 그가 아니라 그녀가.

"순이 구멍이 젖었습니다."

강석의 손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확인하는 손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손가락 하나가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쓸었다. 그녀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회의실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종류의 소리였다.

"진짜네." 그는 젖은 손가락을 그녀의 뺨에 문질렀다. "암캐."

윤희는 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참았던 숨이 그때 나갔다. 회의실에서 스무 년 동안 아무도 그녀에게 하지 않은 말이었다. 정확히 그래서 좋았다. 그 말에는 대표님이 없었다. 상장도, 연봉도, 열한 명의 기다림도 없었다. 그 말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가 무엇인지 말해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현관 바닥에서, 그녀가 무엇인지.

"침실 가서 벽 보고 무릎 꿇고 있어. 손은 뒤로. 내가 갈 때까지."

"네."

"뭐라고."

"네.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무릎으로 복도를 지나가는 동안 강석은 벤치에 앉아 기사 재킷 안주머니에 진주 두 알을 넣었다. 그러고 나서야 재킷을 벗었다. 그것은 순서의 문제였다. 귀걸이가 먼저였고, 재킷은 그다음이었다. 순서가 바뀌면 이 집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그녀를 한 번도 침대 위에 올리지 않았다. 침대는 윤 대표가 자는 곳이었다. 순이는 바닥에서 했다.

그리고 열한 시 사십 분, 그가 안주머니에서 진주를 꺼내 그녀의 손바닥에 돌려놓았을 때, 윤희는 그것을 귀에 다시 걸면서 물었다.

"내일 일곱 시 반 조찬이에요. 여섯 시 사십 분에."

"네, 대표님."

그는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는 현관에 개켜진 자기 옷을 보며 잠깐 서 있었다. 잘 개켜져 있었다. 순이가 개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