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 토요일 일곱 시

은재는 여섯 시 사십오 분에 도착했다.

이자카야 안쪽 룸은 미닫이문으로 막혀 있었고 여덟 명이 앉으면 꽉 찰 크기였다. 은재는 문에서 제일 먼 자리에 앉았다. 들어오는 사람을 전부 볼 수 있는 자리. 자리 선택에 이유가 있다는 걸 앉고 나서 알았다.

첫 번째로 미닫이문이 열렸을 때 은재는 벌떡 일어났다.

"어, 은재님이죠?"

짧은 머리에 회색 카디건을 입은 여자였다. 서른 중반쯤.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말을 하자마자 알았다.

"율님?"

"네. 이모지 속도로 알아봤어요."

율이 웃었다. 채팅에서 상상한 것보다 훨씬 편한 웃음이었다. 은재는 서버장이라는 사람이 실제로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그다음은 제이였다. 제이는 채팅 그대로였다. 들어오면서 "여기 맞죠?" 하고 자리에 앉기 전에 메뉴판을 펼쳤다. 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다음 하루. 하루는 스물둘이라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고, 앉자마자 "저 너무 떨려요" 하고 두 손으로 물컵을 잡았다.

모카가 들어왔을 때 은재는 잠깐 누군지 몰랐다. 하루에 짤을 열 개 올리는 사람이 저렇게 조용히 문을 열 수는 없었다. 후드 집업을 입은 남자가 룸을 한 번 둘러보고, 은재랑 눈이 마주치자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모카님?"

"네."

"…진짜요?"

"저 실물은 말 못 해요."

모카가 속삭이듯 말했다. 제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짤들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손이 하는 거예요. 입은 못 해요." 은재도 웃었다. 서버에서 제일 시끄러운 사람이 제일 조용하다는 게 이 방의 첫 번째 반전이었다.

현은 일곱 시 정각에 들어왔다.

키가 컸고 웃는 얼굴이었고 들어오면서 "다들 오셨네요" 하고 룸 전체를 한 번에 인사로 감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테이블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은재는 그게 어떻게 자연스러운 건지 생각해봤다. 그 자리는 비어 있었고 현은 거기 앉았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현이 앉자 테이블의 중심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은재님 오셨네. 이모지."

"아 ㅋㅋ 네."

은재는 입으로 'ㅋㅋ'를 말하고 있는 자기가 조금 싫었다.

일곱 시 오 분.

미닫이문이 열렸다.

검은 니트, 검은 바지, 머리를 뒤로 하나로 묶은 여자가 문가에 서 있었다. 키는 보통이었다. 얼굴은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얼굴이었다. 특별히 예쁘다고 할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은재는 그 사람이 문을 여는 방식만으로 알았다. 소리를 내지 않고, 문을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열고, 한 번 룸을 보고, 그다음 은재를 봤다.

알아보려고. 그 두 글자가 그대로 눈이 됐다.

"늦어서 죄송해요."

낮은 목소리. 이어폰 밖에서. 공기 속에서. 은재는 자기 손이 테이블 밑에서 청바지를 쥐고 있는 걸 느꼈다.

"다혜님이시죠? 오셔서 좋아요. 앉으세요."

율이 자리를 가리켰다. 비어 있는 자리는 두 개였다. 은재 옆, 그리고 은재 맞은편. 다혜는 맞은편에 앉았다.

은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옆에 앉으면 볼 수 없다. 맞은편에 앉으면 볼 수 있다.

밑줄 · #잡담 (모카, 테이블 밑에서)

모카: 다혜님 실물이 더 조용하심 ㅋㅋㅋㅋㅋ

모카: 관엽식물 실사판

제이: 님 지금 옆에 있는데 채팅 치는 거 뭐임

모카: 저 말은 못 하는데 손은 됨

은재는 폰 진동을 느끼고 잠깐 봤다가 다시 넣었다. 다혜도 폰을 보지 않았다. 다혜는 물을 한 잔 따라서 두 손으로 잡고 있었고, 테이블을 보고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안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 조건이었다.

저녁은 흘러갔다.

현이 얘기를 이끌었다. 6년 동안 만난 사람들, 겪은 일들, 실수한 것들. 재미있었다. 진짜로 재미있었고, 하루는 눈을 반짝이며 들었고, 제이는 중간중간 "그건 좀 다르지 않나" 하고 끼어들었고, 현은 그 말을 웃으면서 받았다. 율은 지켜봤다. 모카는 안주를 먹었다.

은재는 두 번 말하려고 했다.

"아 그거 저 궁금한 게—"

"아, 그건 이따가 얘기하고요. 그래서 그때 그 사람이—"

한 번.

"저 아까 그 얘기에서요—"

"은재님 질문 많은 거 알아요 ㅋㅋ 이따 몰아서 받을게요. 그래서—"

두 번.

두 번 다 웃으면서였다. 두 번 다 아무 문제 없는 말투였다. 은재는 두 번 다 "아 네 ㅋㅋ"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두 번째에 물러나면서 자기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세 번째는 삼십 분 뒤였다.

하루가 "협상 처음 할 때 뭐부터 물어봐야 돼요?" 하고 물었고, 현이 "그건 상대 봐가면서—" 하고 답을 시작했는데, 은재는 그 답이 또 질문 옆을 지나가는 걸 들었다. 하루가 물은 건 '뭐부터'였다. 순서. 은재는 저번 챕터에서 그걸 정확히 읽었고, 다혜가 그 순서를 은재한테 과제로 냈고, 은재는 사흘 동안 그걸 직접 써봤다.

"저 그거—"

"잠깐, 이거 먼저 얘기하고—"

"은재 씨가 말하고 있었어요."

테이블이 멈췄다.

큰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방에서 제일 낮은 목소리였다. 다혜는 물컵을 내려놓고 현을 보고 있었다. 화난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얼굴이었다. 말하고 있었다. 마침표.

"…아, 미안 미안."

현이 웃었다. 조금 늦게 웃었다.

"은재님, 뭐였어요?"

은재는 입을 열었다. 테이블 밑에서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나왔다.

"하루님이 '뭐부터'라고 물었잖아요. 저 지난주에 그거 해봤는데요. 리밋 리스트 먼저 쓰는 거요. 상대랑 하기 전에 저 혼자. 하드, 소프트, 궁금한 것. 그걸 먼저 써야 협상할 때 제 게 있어요. 안 그러면 상대가 뭘 물어보는지에 따라서 제 대답이 정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순서는… 나 먼저요."

하루가 눈을 크게 떴다. "아… 그거 좋다. 저 그거 해볼게요."

"그거 책에 나오는 거잖아."

제이가 말했지만 나쁜 말투는 아니었다. "근데 실제로 해봤다는 게 다르지. 나도 처음엔 안 썼어."

율이 은재를 보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화는 다시 흘러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현은 다시 얘기를 이어갔고 모카는 안주를 더 시켰다. 아무도 그 한 문장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은재만 알았다.

은재는 맞은편을 봤다. 다혜는 다시 물컵을 두 손으로 잡고 테이블을 보고 있었다. 조용한 스위치. 관엽식물. 여덟 달 동안 마이크를 안 켠 사람. 이 테이블의 누구도 지금 다혜한테서 뭘 본 것 같지 않았다. 모카는 폰으로 짤을 찾고 있었고 제이는 현이랑 논쟁 중이었고 하루는 은재한테 리밋 리스트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은재만 봤다. 그 한 문장이 그 방에서 제일 낮은 목소리로 나왔는데 테이블 전체가 멈췄다는 걸. 스위치가 아니었다. 스위치는 저렇게 방의 중심을 아무 소리 없이 자기 앞으로 끌어오지 않는다.

아홉 시쯤 은재는 화장실에 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거울로 봤다. 검은 니트.

다혜는 옆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물소리만 났다. 은재는 손을 다 씻고 나서도 물을 끄지 못했다.

"은재 씨 목소리."

다혜가 말했다. 거울을 보고. 은재가 아니라 거울 속 은재를.

"채팅이랑 똑같네요."

"…어떻게요?"

"끝이 올라가요. 'ㅋㅋ' 자리에서."

은재는 웃었다. 웃으면서 자기 목소리 끝이 올라가는 걸 들었다.

"언니는 다른데요."

"어떻게."

거울 속에서 다혜가 은재를 봤다. 은재는 물을 끄고, 손에서 물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말했다.

"더 무서워요."

다혜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좋은 쪽으로요."

다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페이퍼타월을 두 장 뽑아서, 은재한테 건넸다. 정확히 필요한 만큼. 은재가 받을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았다.

은재는 받았다. 손을 닦았다. 다혜는 그동안 자기 손을 닦았고, 다 닦고 나서 쓰레기통에 넣고, 문을 열고, 은재가 나올 때까지 잡고 있었다.

"가요."

은재는 그 문을 지나갔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알았다. 이 사람은 마이크만 안 켠 거였다. 나머지는 전부 켜져 있었다. 여덟 달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