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언니
DM은 그 뒤로 끊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은재가 끊기지 않게 했다. 목요일에는 노트에 붙인 캡처 사진을 보냈고, 금요일에는 "이번 주 4장 미리 읽는데 이해 안 되는 부분 있어서요"라고 시작하는 여덟 줄짜리 메시지를 보냈고, 토요일에는 회사 점심시간에 "혹시 지금 바쁘세요" 하고 물었다가 두 시간 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ㅋㅋ" 하고 스스로 접었다.
다혜의 대답은 짧았다. 항상 한 줄이거나 두 줄이었다. 대신 빠지지 않고 왔다.
다혜. ↔ 은재
은재: 4장에 나오는 '안전어는 소통의 실패가 아니라 소통의 성공'이라는 문장이요.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진짜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겟어요. 저는 안전어 말하면 뭔가 망친 기분이 들 것 같아서요. 실제로 그랬고요 ㅎㅎ 아 이건 TMI
다혜.: 망친 게 아니라 멈춘 거예요.
다혜.: 멈추라고 만든 걸 멈추는 데 쓴 거니까 그건 잘 쓴 거고요.
은재: 아…
은재: 언니는 그렇게 딱딱 잘라서 말하는 거 어디서 배웠어요?
은재: 아 언니라고 해도 돼요? 나이 몰라서 그냥 썼어요 죄송
다혜.: 스물아홉이에요.
은재: 저 스물여섯!!! 언니네요
다혜.: .
은재: 근데 왜 이름 뒤에 마침표 붙이셨어요? 처음부터 궁금했어요
다혜.: 문장 끝내는 거 좋아해서요.
은재: 그러면 마침표 언니네
다혜.: .
은재: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그것도 마침표
다혜.: 알아요.
은재는 회사 화장실에서 그 대화를 보며 소리 없이 웃다가 옆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알아요.'
이 사람은 농담을 받아치는 방식도 이렇게 딱 떨어진다.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 웃기고, 웃기고 나서도 태연하다. 은재는 그게 좋았다. 은재 본인은 문장을 끝맺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말끝을 흐리고, 'ㅋㅋ'로 덮고, 자기가 한 말에 바로 '아 이건 TMI'를 붙이고. 회사에서도 그랬다. 마케팅팀 막내라서 회의 때 의견을 내면 늘 "아 근데 이건 그냥 제 생각이고요"를 덧붙였다.
다혜는 덧붙이지 않았다.
일요일 밤이었다. 은재는 침대에 엎드려서 노트북으로 다음 주 챕터를 읽다가 폰을 집었다.
다혜. ↔ 은재
은재: 언니 근데 진짜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요
다혜.: 네.
은재: 프로필에 스위치라고 해놓으셨는데요. 언니 채팅 보면 저는 그냥… 뭐라고 해야 하지. 스위치 느낌이 아니라서요. 이거 실례면 말씀해주세요
한참 답이 없었다. 은재는 폰을 들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실례였나. 태그는 그 사람이 정하는 거고 남이 뭐라고 할 게 아닌데. 4장에도 나왔다. 정체성은 본인이 선언하는 것이지 타인이 진단하는 게 아니라고.
십이 분 뒤에 답이 왔다.
다혜.: 모르니까요.
다혜.: 해본 게 없어서.
은재는 엎드린 채로 몸을 일으켰다.
은재: 해본 게… 없다는 게
다혜.: 없어요. 아무것도. 읽기만 했어요.
은재: 언니 서버 들어온 게 저보다 먼저잖아요. 8개월 동안 다 읽으셨잖아요. 토핑 북 바터밍 북 플레잉 웰 다 읽으셨죠? 저번에 인용하신 거 보면 그 전에도 읽으셨을 것 같은데
다혜.: 대학교 때부터 읽었어요. 원서로.
은재: ??? 그럼 거의 10년
다혜.: 네.
은재: 근데 한 번도
다혜.: 네.
은재는 그 '네.'를 오래 봤다. 여덟 달 동안 마이크를 한 번도 켜지 않은 사람. 십 년 동안 책을 읽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그러면서 협상은 지도라는 말을 그렇게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은재: 왜요?
다혜.: 나는 내가 뭔지 아는데 그걸 증명할 게 없으니까요.
다혜.: 해본 것도 없는 사람이 태그 달고 있으면 거짓말 같아서요. 그래서 스위치예요. 그건 아무것도 안 정한 거니까.
은재는 답을 쓰지 못했다. 쓸 말이 많은데 어느 것도 이 문장 옆에 놓으면 가벼워질 것 같았다. '언니는 뭔지 아세요?'라고 묻고 싶었다. 이미 답을 알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대신 은재는 자기 얘기를 했다. 처음부터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은재: 저는 한 번 해봤어요. 다른 앱에서 만난 사람이랑. 3년 전인가
은재: 협상 같은 거 안 했어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그 사람이 경험 많다고 해서 그냥 믿었어요. 안전어도 그 사람이 정해줬어요. 노랑이랑 빨강. 근데 중간에 제가 노랑 말했는데 그 사람이 "노랑은 천천히 하라는 거지 멈추라는 게 아니야" 하고 계속했어요. 저는 빨강까지 갈 용기가 없었어요. 노랑 말한 것도 엄청 큰일이었는데
은재: 그 뒤로 여기 들어왔어요. 사람 안 만나고 책만 읽으려고요
은재: 아 이거 너무 무거운 얘기 죄송해요 ㅠㅠ 언니가 해본 게 없다고 하셔서 뭔가 저도 말해야 될 것 같아서
이번엔 답이 빨리 왔다.
다혜.: 그 사람이 못 한 거예요. 은재 씨가 못 한 게 아니고.
은재는 눈을 감았다. 3년 동안 아무한테도 그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하면 누가 뭐라고 할지 알았다. "왜 빨강 안 했어?" 아니면 "그런 사람 만나지 말았어야지". 그런데 다혜는 그 둘 다 하지 않았다.
다혜.: 노랑 말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해요?
은재: ……작아지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제 몸보다 작아지는
다혜.: 그 기분 기억해둬요.
다혜.: 그게 은재 씨 기준이니까. 그 기분 들면 누구 앞에서든 그건 잘못된 거예요. 상대가 경험이 백 년이어도.
은재는 폰을 내려놓고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눈가가 뜨거웠다. 기준. 이 사람은 은재가 부끄러워하던 기억을 은재의 기준이라고 불렀다.
한참 뒤에 은재는 폰을 다시 들었다.
은재: 언니
다혜.: 네.
은재: 해본 게 없어도 뭔지 아는 거 맞아요. 언니 지금 딱 그거 했어요
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삼 분쯤 뒤에 마침표 하나가 왔다.
다혜.: .
은재는 그 마침표에 뭘 답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보다가 느낌표 하나를 보냈다.
은재: !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다음 날부터 다혜가 마침표를 보내면 은재는 느낌표를 보냈다. 아무 뜻도 없는데 둘만 아는 뜻이 됐다.
월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은재는 눈을 떴다. 손이 먼저 폰으로 갔다. 카톡도 인스타도 아니었다. 디스코드를 열고 DM 목록 맨 위를 봤다. 새 메시지는 없었다. 다혜는 아침에 먼저 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은재는 확인했다. 그게 자기가 매일 처음 하는 일이 됐다는 걸 그 아침에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