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홀
옥주는 잔치를 안 하겠다고 했다.
"이십 년이 뭐. 이십일 년 되면 또 하냐."
성호는 네, 했다. 미자 이모도 그려, 했다. 그리고 둘은 옥주 몰래 했다. 김기사한테 말하고, 박사장한테 말하고, 미영한테 말했다. 미영한테 말하면 골목 전체에 말한 거였다. 박사장한테도 말했으니까 두 번 말한 셈이었다.
옥주가 알게 된 건 당일 아침이었다. 유리문에 누가 붙여놓은 종이 때문에. 매직펜으로. 성호 글씨였다.
옥이네 이십 주년. 오늘 소주 무료. 고기는 돈 받음.
"성호."
"네."
"이거 뭐야."
"소주 무료요."
"고기는 돈 받고?"
"고기값은 사장님이 이십 년 안 내렸잖아요. 오늘 내리면 안 되니까."
옥주는 종이를 한참 봤다. 떼지 않았다. 카운터로 가서 장부를 폈다. 그리고 미자 이모한테 말했다.
"이모, 소주 세 박스 더 시켜."
"시켰어."
"……언제."
"어제."
옥주는 코로 웃었다. 미자 이모는 상추를 씻었다. 예순한 해를 눈치로 산 사람은 어제 소주를 시켜놓고 오늘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상추를 씻을 수 있었다.
여섯 시에 박사장이 왔다. 축하한다고 하면서 훈수를 했다. "사장님, 이십 년 했으면 이제 이 층 확장을 생각해야지. 미용실 나가면 내가 알아볼게." 옥주는 "박사장님 고기 식어요" 했다. 박사장은 고기를 먹었다.
일곱 시에 미영이 왔다. 검은 봉지를 안 들고. 처음이었다.
"오늘은 니 소주 마셔줄게."
"이십 년 만에 처음이네."
"파스 소리 낸 값이야."
옥주가 코로 웃었다. 미영도 웃었다. 미영 신랑도 같이 왔다. 미영 신랑은 조용히 앉아서 미영이 시키는 대로 고기를 뒤집었다. 성호가 보니까 뒤집는 타이밍이 나쁘지 않았다. 소리를 듣고 있었다. 성호는 그걸 옥주한테 말하지 않았다. 옥주가 먼저 봤을 거다.
일곱 시 반에 화끈고기 사장이 왔다. 젊은 사람이었다. 서른 중반. 문 닫고 나서 세 번째 오는 거였다. 처음 왔을 때 옥주가 "고기는 냉동 쓰지 마세요" 했고, 젊은 사장이 "네" 했고, 그 뒤로 그냥 손님이었다. 오늘은 화환을 들고 왔다. 작은 거. 옥주는 그걸 카운터 옆에 세웠다.
여덟 시 정각에 김기사가 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열두 명이었다. 택시 기사 단톡방이 다 왔다고 했다. 홀에 테이블 세 개를 붙였다. 미자 이모가 뛰었다. 성호가 불판 넷을 동시에 봤다. 소리가 넷이었다. 지지직, 지지직, 지지직, 지지직. 성호는 넷을 다 들었다. 착, 착, 착, 착.
여덟 시 반에 형이 왔다.
형수랑 어머니랑. 그리고 형이 화환을 들고 왔다. 큰 거. 리본에 글씨가 있었다.
옥이네 이십 주년 축하. 잡혀 사는 동생의 형.
성호가 그 리본을 읽고 불판을 봤다. 소리를 놓칠 것 같았다. 안 놓쳤다. 착. 옥주가 카운터에서 그 화환을 봤다. 오래. 그리고 형한테 말했다.
"성재 씨, 저기 세워요. 문 옆에."
형이 세웠다. 유리문 옆에. 종이 옆에. 이십 년째 같은 고기, 같은 불판, 같은 사장. 신랑만 바뀜. 한 번. 그 옆에 형 화환이 섰다. 잡혀 사는 동생의 형.
형이 카운터에 봉투를 내놨다.
"첫 달이요. 석 달 뒤부터라고 하셨는데 그냥."
"치킨집 오픈은요."
"다음 주요."
"소리 들으세요."
"……네."
형은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 옆에. 형수가 성호를 불렀다.
"성호 씨, 김치 더요."
"네, 형수님."
"……형수님은 빼요. 그냥 형수."
"네, 형수."
형이 그걸 듣고 소주를 마셨다. 웃지 않았다. 안 웃는 게 웃는 것보다 좋았다. 성호는 형네 고기를 세 번 뒤집었다. 형이 "야, 이거 맛있다" 했다. 십일 년 만에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성호 손을 잡았다. 화장실 가는 길에.
"밥 잘 먹고."
"네."
"……사장님이 니 밥 잘 챙기더라."
"네."
어머니는 그 말만 하고 화장실에 갔다. 사장님 말 잘 듣고, 가 아니었다. 성호는 그 차이를 들었다. 고기 소리 듣듯이. 어머니도 이십 년 만에 뒤집을 때를 안 거였다.
아홉 시에 옥주가 일어섰다. 카운터에서. 홀이 조용해졌다. 열두 명 택시 기사도, 박사장도, 미영 신랑도. 옥주는 원래 목소리가 컸다. 그날은 안 컸다.
"이십 년 됐어요."
옥주가 말했다.
"고기값 안 올릴 테니까 술이나 많이 드세요. 술은 오늘 공짜니까."
그게 다였다. 열두 명 택시 기사가 박수를 쳤다. 박사장이 "사장님, 한 마디 더" 했다. 옥주가 "박사장님 고기 식어요" 했다. 다들 웃었다. 옥주는 앉았다. 성호는 불판을 봤다. 착.
열한 시 반에 마지막 손님이 갔다. 형이 마지막이었다. 어머니 부축하고 형수 손 잡고. 문 앞에서 형이 성호 어깨를 툭 쳤다. 늘 하던 대로. 그런데 뭐라고 안 했다. 그냥 쳤다. 성호도 형 어깨를 쳤다. 처음이었다.
미자 이모가 앞치마를 벗었다.
"사장, 내일 늦게 나올게."
"늦게 나와. 점심 장사 안 해."
"이십 년 만에 처음 듣네."
이모가 갔다. 문이 닫혔다. 홀이 비었다. 소주병이 여섯 박스 나왔다. 성호가 세다가 그만뒀다.
옥주가 장부를 폈다. 성호가 대걸레를 들었다. 홀 바닥에 기름이 이십 년치 배어 있었다. 오늘 밤엔 안 밀릴 것 같았다. 성호는 밀었다. 밀리는 척은 했다.
계산기 소리. 딱, 딱, 딱. 잠깐 쉬고. 딱. 그리고 다시. 딱, 딱, 딱, 딱.
"두 번 두드리네요."
"큰 날이니까."
옥주가 계산기를 놓았다.
"맞았다."
성호가 대걸레를 세웠다. 오늘 매출은 이십 년 중에 제일 컸을 거다. 소주는 다 공짜였는데도. 그 큰 숫자가 딱 맞았다. 성호가 정산한 지 십일 년. 이십 년 중 십일 년을 성호가 셌고 옥주가 봤다.
"맞은 날은 상이죠."
"이십 년 맞은 날은 뭐게."
"……뭐예요."
옥주가 장부를 덮었다. 그리고 카운터를 돌아 나왔다. 초록 의자를 끌어다 홀 가운데 놓았다. 달그락. 그리고 앉지 않았다.
"오늘은 니가 앉아."
성호가 옥주를 봤다.
"앉으라고."
성호가 앉았다. 초록 의자에. 짧은 다리가 성호 몸무게에 달그락거렸다. 십이 년 동안 그 소리를 밑에서 들은 건 처음이었다. 옥주가 성호 앞에 섰다. 그리고 몸빼 카디건 차림으로, 쉰둘 먹은 여자가, 이십 년 된 가게 사장이, 성호 무릎 위에 엎드렸다.
"……사장님."
"파스 붙여. 두드리지 말고."
성호는 손을 옥주 허리에 얹었다. 카디건 위로. 몸빼 허리춤 바로 위. 디스크 있다는 데. 뜨끈한 손을 얹었다. 두드리지 않았다. 옥주가 성호 허벅지에 얼굴을 묻었다. 앞치마에. 고기 냄새 나는 앞치마에.
"이십 년 됐어."
옥주가 앞치마에 대고 말했다.
"네."
"십이 년은 니가 있었고."
"네."
"팔 년은 혼자였는데. 그 팔 년이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
성호는 손을 움직였다. 옥주 등을 쓸었다. 위에서 아래로. 옥주가 성호한테 늘 하던 대로.
"기억 안 나면 됐어요."
"……그래. 됐어."
옥주는 한참 엎드려 있었다. 성호 무릎이 저렸다. 저린 채로 있었다. 옥주가 십 년 그렇게 있어준 것처럼. 환풍기가 돌았다. 형광등이 지지직거렸다.
그러다 옥주가 일어섰다. 성호 무릎에서. 그리고 성호를 봤다. 내려다봤다.
"됐다. 이제 내 자리."
옥주가 성호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자기가 앉았다. 달그락. 성호가 앞에 섰다.
"앞치마 입은 채로. 바지만."
성호가 바지를 내렸다. 팬티도. 앞치마 밑에 맨몸. 옥주가 그걸 봤다. 벌써 반은 서 있었다.
"맞은 날이니까 안 때려."
"네."
"근데 이십 년이니까."
옥주가 손바닥을 성호 엉덩이에 얹었다. 그냥 얹었다. 그리고 한 번. 착. 세지 않게.
"하나. 이십 년."
"……하나. 이십 년."
한 대였다. 그게 다였다. 옥주 손이 거기 얹혀 있었다. 뜨끈한 손. 성호가 다 섰다.
"무릎."
성호가 무릎을 꿇었다. 옥주가 몸빼를 내렸다. 발목까지. 다리를 벌렸다. 성호가 혀를 냈다. 옥주 냄새. 이십 년 이 홀에 있었던 냄새. 성호는 그걸 십이 년 알았다. 옥주가 성호 뒤통수를 잡았다. 아프게 안 잡았다. 그냥 잡았다.
"천천히. 오늘은 급할 거 없어."
성호는 천천히 했다. 아래에서 위로. 위쪽 부푼 데를 입술로. 옥주 허벅지가 성호 귀를 감았다. 옥주가 소리를 냈다. 낮게. 그리고 갈 때 발가락으로 장판을 긁었다. 이십 년 된 장판. 성호는 그 소리를 들었다. 지지직 같았다.
"방석."
성호가 방석 두 장을 깔았다. 분홍 꽃. 오늘 택시 기사 열두 명 궁둥이가 앉은 방석. 성호가 누웠다. 옥주가 올라왔다.
옥주가 앉을 때 성호는 숨을 참았다. 늘 하던 대로. 이십 년 이 골목을 버틴 사람 무게. 그게 성호 위에 얹혔다. 옥주가 성호 것을 잡고 자기 안으로 넣었다. 천천히. 다 들어갔다. 옥주가 숨을 뱉었다.
"손."
성호가 손을 올렸다. 옥주가 그 손을 잡았다. 머리 위로 누르지 않았다. 그냥 잡았다. 손가락을 끼워서. 그리고 움직였다.
느렸다. 옥주는 오늘 세지 않았다. 열을 세지 않았다. 그냥 움직였다. 젖가슴이 성호 위에서 흔들렸고, 뱃살이 성호 배에 닿았고, 옥주 손이 성호 손을 잡고 있었다. 성호는 옥주 얼굴을 봤다. 옥주가 성호를 보고 있었다. 눈 안 피하고.
"사장님."
"왜."
"싸도 돼요?"
옥주가 움직임을 안 멈췄다.
"싸. 지금. 나 보면서."
세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성호는 옥주를 보면서 쌌다. 옥주 안에. 옥주가 그 위에 무너졌다. 옥주도 갔다. 성호 위에서. 소리 없이. 손을 잡은 채로.
한참 있었다. 환풍기 소리. 옥주 무게.
"……무거워요."
"알아."
"안 일어나네요."
"이십 년이잖아."
옥주는 안 일어났다. 성호도 일어나라고 안 했다. 옥주가 성호 귀에 대고 말했다.
"성호."
"네."
"내년에도 틀려."
"네, 사장님."
"일부러는 말고."
"……가끔은요?"
"가끔은 봐줄게."
옥주가 옆으로 굴러 내려왔다. 둘은 방석 두 장 위에 나란히 누웠다. 성호는 천장을 봤다. 기름때 낀 환풍기. 십이 년 본 천장. 옥주는 이십 년 봤을 천장.
"사장님."
"왜."
"이 천장 안 질려요?"
옥주가 한참 있다 대답했다.
"질렸으면 안 봐."
옥주가 일어섰다. 몸빼를 올리고, 카디건을 걸치고, 단추를 위에서부터 채웠다. 그리고 주방으로 갔다. 성호는 방석에 누운 채로 그 뒷모습을 봤다. 발뒤꿈치 먼저 닿는 걸음. 왼쪽이 살짝 늦는 걸음.
불이 꺼졌다.
홀이 다 어두워졌다. 유리문 밖으로 골목 가로등이 들어왔다. 그 빛에 종이 두 장과 화환 두 개가 보였다. 이십 년째 같은 고기. 잡혀 사는 동생의 형. 오늘 소주 무료. 고기는 돈 받음.
어둠 속에서 옥주가 말했다.
"올라가자. 무릎 아파."
"제 무릎이요, 사장님 무릎이요."
"둘 다."
"제가 파스 붙여드릴게요."
"……두드리지 말고."
"네."
열아홉 개 계단. 성호가 먼저, 옥주가 뒤에. 계단 끝에서 옥주가 성호 뒤통수를 툭 쳤다. 성호가 돌아봤다. 옥주는 그냥 지나갔다. 방으로.
성호는 계단 끝에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 웃었다. 아무 데도 안 아팠다. 안 아픈 채로 웃었다. 그것도 되는 거였다. 그게 제일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