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
소문은 미용실에서 시작됐다. 골목 소문은 다 미용실에서 시작됐다. 옥이네 옆 건물 이 층, 십이 년 전 성호가 인테리어 현장으로 왔던 바로 그 미용실.
"옥주가 남편을 팬대."
미영이 파마 롤을 말면서 말했다. 목요일 오전이었다.
"뭐?"
"내가 봤어. 화요일 아침에. 우리 셔터 올리는데 저쪽 셔터가 반만 내려와 있더라고. 그 틈으로 보이는데, 옥주가 의자에 앉았고 성호 총각이 그 위에 엎어져 있어. 그리고 옥주가 손을 이렇게."
미영이 손바닥을 허공에 내렸다. 착.
"……진짜?"
"진짜지. 소리도 들렸어. 착, 착. 내가 우리 라디오 껐어. 확인하려고."
"아이고. 그 순한 총각을."
"순하니까 맞지. 옥주가 성질이 어떤 애야. 이십 년 그 집 혼자 한 애야."
파마 롤이 다 말렸다. 소문도 다 말렸다. 목요일 오후에는 골목 반이 알았고, 금요일 아침에는 박사장이 알았다. 박사장이 알면 골목 전체가 아는 거였다. 박사장은 훈수도 팔고 소문도 팔았다. 둘 다 안 팔리는 부동산보다 잘 나갔다.
옥주가 그 소문을 들은 건 금요일 오후 두 시였다. 미자 이모한테서.
"사장, 미영이가 그러고 다닌댜."
이모는 상추를 씻으면서 말했다. 옥주는 장부를 보고 있었다. 성호는 마늘을 깠다. 마늘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뭐라고 그러고 다녀."
"사장이 성호를 팬다고."
옥주는 장부를 안 덮었다. 계산기를 한 번 두드렸다. 딱. 아무 계산도 안 한 딱.
"언제 봤대."
"화요일 아침이라던디."
성호가 마늘을 봤다. 화요일 아침. 셔터 반. 아침 빛. 옥주도 화요일 아침을 생각하고 있을 거였다. 성호는 옥주 얼굴을 봤다. 옥주 얼굴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그게 옥주가 뭘 할 때 짓는 얼굴이었다.
"이모."
"응."
"박카스 한 박스 얼마야."
"한…… 만 오천 원? 미영이네는 만 육천."
옥주가 일어섰다. 카디건을 걸쳤다. 몸빼바지에 카디건. 그 차림으로 옥주는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길을 건넜다. 화끈고기 앞을 지나서. 미영 슈퍼 문을 열었다.
성호는 유리창 너머로 그걸 봤다. 옥이네 유리창에서 미영 슈퍼가 다 보였다. 이십 년 마주 보고 산 두 집이었다. 옥주가 슈퍼에 들어가서 박카스 박스를 집는 게 보였다. 계산대에 올리는 게 보였다. 미영 얼굴이 하얘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옥주가 뭐라고 말하는 게 보였다. 유리창 너머라서 소리는 안 들렸다. 그런데 옥주는 원래 목소리가 컸다. 슈퍼 안에 있던 손님 둘이 돌아보는 게 보였다.
옥주가 나왔다. 박카스 박스를 들고. 길을 건넜다. 화끈고기 앞을 지나서. 문을 밀고 들어와서 박카스를 카운터에 놓았다.
"뭐라고 했어요."
성호가 물었다.
"우리 신랑 허리 디스크라고."
"……네?"
"내가 무릎에 엎어놓고 파스 붙여준다고. 매일 아침. 착, 착, 소리는 파스 두드리는 소리라고. 미영이 너도 니 신랑 좀 그렇게 해줘 보라고. 애가 말을 잘 듣는다고."
미자 이모가 상추를 떨어뜨렸다. 성호는 마늘을 떨어뜨렸다. 옥주는 박카스 한 병을 따서 마셨다.
"디스크는 무슨."
성호가 말했다.
"디스크 있어."
"제가요?"
"니가 아니고 내가. 이십 년 서 있었는데 디스크가 없겄냐."
옥주는 박카스 병을 빈 상자에 던져 넣었다. 딱 들어갔다.
"그리고 성호."
"네."
"다음부턴 셔터 끝까지 내려."
"……네."
"이모도 하나 마셔."
미자 이모가 박카스를 하나 집었다. 따면서 이모가 말했다.
"사장, 나는 파스인 줄 알았는디."
옥주가 코로 웃었다. 성호는 이모가 진짜 그렇게 알았는지 알고도 그러는지 십 년째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예순한 해를 눈치로 산 사람은 그걸 절대 안 보여줬다.
소문은 사흘 만에 뒤집혔다. 미영이 미용실에서 다시 파마를 말면서 "아니 그게 파스였대. 옥주 신랑 허리 디스크래. 내가 잘못 봤어" 했고, 미용실 원장이 "그럼 그 착 소리가 파스 소리야?" 했고, 미영이 "파스 두드리면 그런 소리 나잖아" 했고, 원장이 "그렇긴 하지" 했다. 박사장은 다음 날 와서 "성호 씨, 허리 조심해야 돼. 이 나이에 디스크 오면 평생이야" 하고 훈수를 했다. 성호는 "네" 했다. 옥주는 카운터에서 안 웃었다. 안 웃으려고 안 웃는 얼굴이었다.
그 주에 옥주는 화끈고기에 갔다.
손님으로. 미자 이모랑 둘이서. 성호는 못 데려갔다. 얼굴이 알려져서. 옥주는 얼굴이 알려진 걸 별로 상관 안 하는 사람이었다. 카디건 입고 몸빼 입고 길 건너 빨간 간판 밑으로 들어가서 삼겹살 이 인분 시켰다. 9,900원. 먹었다. 소주도 한 병 마셨다. 그리고 계산하고 나왔다. 카드로.
"어때요."
성호가 물었다. 옥주는 앞치마를 입으면서 대답했다.
"냉동이야. 양념 세고. 불판 얇아. 알바 셋인데 셋 다 고기 소리 안 들어."
"그래서요."
"두 달 못 가."
"두 달이요?"
"오픈 이벤트 끝나면 만 사천 원이야. 냉동 삼겹살 만 사천 원 주고 먹을 사람 이 골목에 없어. 젊은 애들? 젊은 애들이 이 골목에 몇이나 살아."
옥주는 매직펜을 꺼냈다. 그리고 유리문에 붙일 종이에 뭘 썼다. 성호가 어깨 너머로 봤다.
이십 년째 같은 고기. 같은 불판. 같은 사장.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신랑만 바뀜. 한 번.
"사장님."
"왜."
"이걸 붙여요?"
"왜, 틀린 말이야?"
성호는 대답을 못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옥주는 그걸 유리문에 붙였다. 스카치테이프로. 네 귀퉁이 다.
김기사가 그날 저녁 와서 그 종이를 봤다. 한참 봤다. 그리고 들어와서 앉았다. 불판에는 이미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사장님. 저거 내가 사진 찍어도 되나."
"찍으세요."
김기사가 찍었다. 그리고 어디다 보냈다. 개인택시 기사 단톡방이라고 했다. 다음 날 여덟 시에 김기사가 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여덟 명이었다. 다 택시 기사였다. 홀에 두 테이블을 붙여 앉았다. 옥주가 미자 이모한테 전화했다. 이모가 삼십 분 만에 왔다. 주말도 아닌 화요일에.
성호가 고기를 구웠다. 소리를 들었다. 지지직, 그러다 착. 김기사가 동료들한테 말했다.
"이 총각이 굽는 고기가 왜 맛있는지 아나."
"왜 맛있는데."
"나도 몰라. 그러니까 여기 오는 거야."
여덟 명이 웃었다. 옥주가 카운터에서 소주를 꺼냈다. 성호는 그 소리를 들었다. 옥주가 소주 꺼낼 때 병이 부딪히는 소리. 그 소리도 십이 년 들었다. 안 질렸다.
그 주 매출이 지난주 두 배였다. 미자 이모는 다시 평일에 나왔다. 옥주가 그러라고 안 했는데 나왔다. 옥주도 안 말렸다.
셋째 주 목요일에 화끈고기 이벤트가 끝났다. 간판 밑 작은 글씨가 떨어졌다. 만 사천 원. 줄이 없어졌다.
그 목요일 밤 열한 시. 마감. 성호가 대걸레를 밀었다. 옥주가 장부를 폈다. 계산기 소리. 딱, 딱, 딱.
"맞았네."
옥주가 말했다. 성호는 대걸레를 밀었다. 그리고 셔터를 봤다. 끝까지 내려 있었다. 바닥까지. 틈이 없었다.
"성호."
"네."
"셔터 잘 내렸네."
"네."
"근데 오늘은 상 안 줘."
"……왜요."
"디스크."
옥주가 카디건을 걸치면서 말했다. 성호가 대걸레를 세웠다.
"사장님 디스크 진짜 있어요?"
"있어."
"어디요."
"여기."
옥주가 자기 허리 아래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그리고 계단으로 갔다. 성호는 그 뒷모습을 봤다. 발뒤꿈치 먼저 닿는 걸음. 왼쪽이 오른쪽보다 살짝 늦었다. 십이 년 봤는데 오늘 처음 봤다.
"올라가서 파스 붙여줄게요."
성호가 말했다.
옥주가 계단 셋째 칸에서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두드리지는 마."
"소리 나니까요?"
"소문 나니까."
옥주가 올라갔다. 성호는 주방 불을 끄고 따라 올라갔다. 열아홉 개 계단. 그날 밤에는 옥주가 엎드렸다. 성호 무릎에. 성호는 옥주 허리에 파스를 붙였다.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을 얹어놨다. 뜨끈한 손을 뜨끈한 파스 위에.
"이게 뭐야."
옥주가 이불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파스 붙이는 거요."
"……"
"사장님이 늘 이러잖아요. 다 치고 나서 손 안 떼고."
옥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성호 무릎에 얼굴을 더 묻었다. 성호는 손을 안 뗐다. 한참.
"성호."
"네."
"내일 틀려."
"네."
"오늘은 내가 틀렸으니까."
"뭘요."
"셔터."
옥주가 웃었다. 코로. 이불에 대고. 성호도 웃었다. 손은 안 뗐다.